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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10-05 (월) 06:2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35    
가든교회(사 58:1-12)
‘가든(garden)’ 혹은 ‘정원’, ‘동산’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아름다운 꽃들과, 푸른 나무들을  떠 올리실 것입니다. 이 지역 가까운 곳에도 유명한 가든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아름다운 가든을 찾는 이유는 마음의 쉼이 아닐까요? 이 세상의 각종 먼지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자 할 때가 아닐까요?
사실 역사상 태초의 첫 번째 가든은 정말 좋았습니다. 에덴동산(Garden of Eden) 말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는 바람에 그 아름다운 동산에서 쫓겨 났습니다. 그 이후에 죄인인 인간들이 사는 곳에는 그런 가든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 땅에 다시금 아름다운 가든을 회복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주전 700여 년경 이사야 선지자로 예언되어진 아름다운 가든이 나옵니다. 문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이며, 이기적인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그들이 참된 신앙생활을 함으로, 즉 구별된 거룩한 삶으로 보여지는 신앙생활을 하여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되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11절)고 약속하셨습니다. 가든에 물이 마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꽃들이 시들고 나뭇잎들이 누렇게 되겠지요. 그런 가든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얼마나 보기 흉하게 되겠습니까? 하지만 물댄 동산(well-watered garden), 즉 물이 끊어지지 않는 가든이라면 항상 꽃들이 만발하고, 나무들이 늘 푸를 것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어도 이해관계 속에서 믿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응답을 해 주시겠지,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과 거래를 한 것 같습니다. 내가 금식을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내 소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식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종교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3절상)라고 항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제는 금식을 하면서 온갖 오락을 하고, 노예들에게 일을 시키고, 서로 다투며 싸우는 것이었습니다(3절하-4절상).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도 답답해서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5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죄와 허물을 고하는 것이었습니다(1절). 형식적으로 금식하는 모양만 갖춘다고 하나님이 모를 줄 아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금식이라 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마음을 괴롭게 하며, 내가 만난 어려움을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즉 나는 하나님 앞에서 굶어 죽은 목숨과도 같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한다면서 베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쓰고서는 오락을 하며, 사람들과 다투고 있으니 형식적인 금식일 뿐입니다. 금식한다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행여 자기 돈을 갚지 않은 빚진 사람을 만나면 다투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굶주려 죽을 것 같은 사람이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기뻐하는 금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을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6-7절) 하였습니다. 즉 참된 금식이라면 긍휼의 마음으로 주위에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탕감해 주고, 종살이 하는 사람은 풀어주고,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도와달라는 사람을 피하지 않고 도와주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빛이라고, 치료라고, 의라고 표현하면서 그렇게 할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지켜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8절)! 또한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9절상)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면 응답하시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여기 있다 하시니 말입니다.
즉 우리의 삶에서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 드러날 때, 주님 사랑에 감격하여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9절하-11절)!
물이 끊어지지 않는 가든, 그래서 늘 꽃들이 만발하고 나뭇잎들이 푸른 가든이 되려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모습이, 진실한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서로에게 멍에가 없어야 하고, 서로 손가락질 하며 비방하는 헛된 말이 사라져야 하며, 주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괴로워하는 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면 그 빛이 어두움을 비추게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인도하며, 우리의 영혼도 만족하게 하고, 육체도 강건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외에도 이런 가든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복이,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12절)고 하였습니다. 바로 부흥의 역사를 말합니다. 황폐된 곳, 무너진 곳이 다시 세워지는 복입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회복입니다. 무너진 교회의 회복입니다. 무너진 가정의 회복입니다. 다음 세대가 더욱 부흥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예언은 바벨론에게 무너졌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 성벽의 회복입니다. 앞으로 메시아가 오셔서 일으켜 세우실 새로운 영적인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우리에게는 이미 메시아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로, 아니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생수가 흐르는 가든,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는 가든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복입니다.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금번 저의 한국 방문은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정말 한국 교계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큰 교회들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쓰러져 있기에 전도의 문이 많이 막혀 있었습니다. 1990년 대까지만 해도 천만의 성도를 자랑하던 기독교계는 믿는 자의 수가 더 늘기는커녕 지난 십여 년 사이에 ¼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제는 교회 개척이 힘들어서 점점 신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칭찬 받기 보다는 비난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교회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이기적인 종교생활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나 교단이 사랑으로 하나되기 보다는 서로 비방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40년 전에 분열되었던 우리 교단이 통합한 일은 교계에 좋은 모습으로 비추어졌습니다. 형제가 다투었다가 화해를 하고 하나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이라고 해서 한국보다 나을까요? 이민교포 사회는 어떤가요? 결코 낫지 않습니다. 더 열악한 상황입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2세들의 영적인 상황입니다. 영적인 상태가 1세들보다 오히려 더 좋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부모들의 강요에 못 이겨 고등학교까지, 혹은 대학교까지는 신앙생활하는 것 같다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2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이 어두운 시대의 우리 교회의 사명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말입니다. 가든교회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누구든지 와서 아름다운 꽃들과 푸른 나무들 사이로 거닐면서 심령이 회복이 되는, 상처가 치료되는 가든이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죄의 멍에를 벗어 던지도록, 그 멍에를 풀어주며, 압제에서 자유 하도록 하며,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버리고, 오히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괴로워하는 자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면서 빛을 발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 가든에 나비와 벌들이 몰려들지 않겠습니까? 아니 벌레들이 몰려와도 몹쓸 벌레조차 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사랑입니다. 지난 주일에 임 목사님께서도 사랑장을 설교하시면서 강조하셨듯이,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슨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거래하지 마십시오. 아니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친히 내어 주셨는데,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께 아들을 내어 줄 수 있습니까? 어느 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 큰 사랑을 깨닫고, 그 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면 그저 몸과 마음을 하나님을 위하여 내어 드리십시오.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여러분의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 관계로 사람을, 특히 교우들을 사귀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잘해 주시는 것이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미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을 믿고 잘해 주었는데 피해를 당할 때, 예를 들면 돈을 빌려 주었는데 갚지 않는다든가, 보증을 서 주었는데 잘못되어서 내가 피해를 당하게 되면 서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아니라 손해가 오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듯이 멍에의 줄로 압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모인 가든에는 물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사십시오. 그러면 생수가 끊이지 않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날마다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진실한 사랑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을 부어 보십시오.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형제도, 친구도, 자녀들도 그 사랑에 감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바로 ‘사랑’에 있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들은 그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 주위엔 사랑하고 싶어도 여건이,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루지 마세요. 지금이 사랑할 때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어서 우리 교회에 생수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늘 꽃들이 만발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들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나무들이 푸르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와서 쉴 수 있는 곳, 영혼이 만족을 얻는 곳, 뼈가 견고하게 되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세대들까지도 부흥을 맛보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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