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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10-26 (월) 08:3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53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롬 8:26-27)


지난 주간 부흥회를 통하여 무엇보다 기도에 대한 도전을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강사 목사님은 시간마다 기도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이라고 몇 번씩 강조하셨습니다. 그 동안 중단되었던 로마서 강해 설교를 이어가는 오늘 본문도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고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영혼이 있기에 육체로만 살면 안됩니다.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었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창 3:19). 또 질그릇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쉽게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별 의미없이 문득 내뱉은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곤 합니다. 영혼이 없는 개나 고양이와 다릅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쉽게 두려워합니다.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이렇게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사 42:3) 하셨습니다. 상한 갈대란 예를 들면 건강을 잃은 사람,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 마음에 상처를 받아 힘들어 하는 사람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꺼져가는 등불이란 과거에는, 젊었을 때에는 열정도 있고, 비전도 있어서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열정도, 비전도 없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듯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그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4:7)고 하였고,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하)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성령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한 때 갈멜산에서 이방의 우상 선지자 850명과 단독으로 싸워서 이겼던 엘리야도, 그 후에 그를 죽이려는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의 노여움 앞에 두려워 떨며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했던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지 않았습니까? 베드로도 주님을 보호하며 칼을 빼어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잘랐던 용기를 보였고 죽기까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고서도, 결국 세 번 부인하면서 어린 계집종에게 거짓말을 하고 주님을 저주까지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베드로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후에는 부활의 증인으로, 대 사도로 사명을 감당한 후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런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연약함’이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 면에 연약함이 있는 우리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돕는다’는 말의 의미는 붙잡아 준다, 번쩍 들어올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돕는다’라는 동사는 현재형입니다. 즉 지금 현재, 계속적으로 우리의 여러 연약함을 붙잡아 주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지금 도우실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돕지 않으시면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기고 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약한 우리들은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도우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연약함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 긍휼로 찾아와 주십니다.
성령님의 또 다른 이름은 보혜사입니다(요 14:16). 보혜사(Comforter, Counselor)의 의미는 ‘옆에서 함께 돕는자, 함께 담당하는 자, 위로자, 상담자’ 라는 뜻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고, 기도도 하지 않는데 성령님이 다 해주시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전혀 기도도 하지 않는데 도우시는 분은 아닙니다. 왜 성령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도를 돕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약해지면 기도하는 힘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육적으로 약해지면 기도도 잘 못합니다. 영적으로 침체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너무 성공하여 모든 일이 잘 되어도 기도 잘 안하고, 너무 실패하여도 기도를 잘 못합니다. 누구를 너무 사랑해도, 아니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외로워도 기도할 마음이 사라집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이 복잡하고, 어려워지면 기도를 못하게 됩니다. 사탄, 마귀의 장난이지요.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우리의 약함을, 문제를 극복할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도 성령님을 붙들며 기도해야 하지만, 우리 인생에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면 더욱 성령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앞에 골리앗이 서 있습니까? 골리앗보다 더 강하신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건강 문제로, 돈 문제로, 자식 문제로, 비자 문제로, 혹은 인간관계 속에서 연약해져 있습니까? 강한 척 하지 마시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하는데 포기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나의 약함을 주께 내어 놓고 전심으로 주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렘 29:13)고 하였습니다. 만나주시고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구하십시오. 부르짖으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26절하).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잘못 구할 때도 있지만,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7절)고 하였습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못하기에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해 주십니다. 여기 ‘탄식’이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함을 말합니다. 앞서 22절에서 피조물이 온 세상이 죄 가운데 타락함을 보고 탄식한다고 했으며, 23절에서는 우리의 속 사람도 연약한 몸이 온전히 구속함을 입을 그날을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6절에서는 성령 하나님이 탄식한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말씀을 거역하고 내 마음대로 살 때 안타깝게 한숨 쉬며 탄식하십니다. 물론 우리은 연약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 때마다 성령님이 탄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우리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넘어지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가 알만한 데도 끝까지 떼를 쓰고 반항하면 사랑하기는 하지만 탄식이, 한숨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은 우리가 단순히 실수하고 말씀에 불순종한다고 탄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만한데도 고집을 피우고 억지를 부리거나, 계속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까칠하게 굴면, 오래 침체 상태로 있으면 탄식하는 것입니다. 왜지요? 사랑하기에, 그 영혼이 불쌍해서 말입니다. 너무 하나님의 뜻에 멀리 가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뜻대로 간구하심을 믿으며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지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과거에 지은 죄, 지금 짓는 죄, 앞으로 지을 죄에 대한 벌이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대가를 다 치르셨습니다.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고, 깨끗이 지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복은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영으로 내주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삼위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죄가 파괴시켜 놓은 아름다운 형상들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성령님을 슬프게 하면 안됩니다. 소멸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내 자신를, 자아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자라고 하면서도 전혀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저 식사기도만 잠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하루에 5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면 틈만 나면 기도해야 할텐데, 틈만 나면 비데오나 인터넷을 보시는 분들은 있습니다. 틈만 나면 전화를 붙드는 분이 있습니다. 틈만 나면 자는 분도 있습니다. 틈만 나면 먹는 분도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때로 쉬면서 비데오도, 인터넷도 볼 수 있습니다. 때로 전화도 해야 합니다. 잠도 자야 합니다. 먹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리고 틈이 나면 종종 말씀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기도가 막힐 때에 우리를 위하여 대신 기도하시는 성령님이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누군가 내가 기도할 때 나와 함께 성령님이 기도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나는 안전하다, 나는 편안하다, 나는 괜찮다 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만약 여러분의 환경이 그렇다면 감사하시면서 더욱 기도하셔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매일 무서운 위험과 사탄, 마귀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못 감당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시마다 때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성령을 거역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시험과 환란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믿고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만족하지 마십시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늘 성령님의 새로운 은혜, 기름 부으심이 필요합니다. 충만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의 세밀한 부분까지 일일이 만져주셔서 상처 나고 병든 부분을 치료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안의 열등감이나 의심, 분노, 쓴 뿌리가 치유될수록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달라집니다. 술 기운이 그를 주장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도 하고, 담대해 집니다. 그래서 아무 하고나 시비를 겁니다. 그런데 이 기분, 이 용기는 가짜입니다. 착각입니다. 술이 깨면 다 사라집니다. 술 취하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자기 몸 하나 가누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충만하게 되면 사람이 진짜로 변하게 됩니다. 신비하고 새로운 능력이 그를 주장하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용기가 생깁니다. 그런데 성령의 이런 충만한 은혜는 지속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거나, 죄로 인하여 은혜가 마릅니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성령의 부으심을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도 믿음이 자라는 것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 믿을 때에는 그릇이 작기 때문에 작은 은혜로도 금방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성경 한 구절에도 은혜를 받고, 찬송가 한 절로도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런데 믿은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그릇은 커지게 되는데 담기는 은혜는 옛날 처음 믿을 때와 같다면 그 영혼은 메말라 집니다. 침체하게 됩니다. 그럴 때 더 많이, 더 깊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성령 충만함을 체험할 수 있으며, 처음 믿을 때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기도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사람들은 떠나도 우리 주님께서는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낙심하지 마시고, 오히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을 붙들고 더욱 의지하십시다. 간구합시다. 주께 도움을 구하면 우리 앞에 놓인 홍해가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능력을,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고 정말 기도 많이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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