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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4-21 (목) 23:4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94    
승리한 백성들에게는 (계 7:9-17)
아마 여러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좁을 길을 가다 보면 만나는 어려움들 말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기다가 오해를 받거나, 남들의 시기 질투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물질을 거의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전도를 하다가 수치를 당하거나 타락해 가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를 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을 받아 읽었던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거나, 극한 가난으로 환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짐승에 물어 뜯겨 죽거나 불에 타서 죽거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비참한 죽음 같아 보여도, 그런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좁은 길을 살았던 사람들은 훗날 궁극적인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점점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그래서 죽은 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눈 앞에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데에 전전긍긍합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생활고가 눈 앞에 있는데 죽은 다음에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찬양한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정말 모르는 것이 있는데 죽음은 현실(reality)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람은 죽게 되어 있고, 죽은 후의 삶이 현재의 삶보다 엄청 길다는 것입니다. 아니 영원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 이스라엘 12지파의 종들이 대환란을 피하여 선 것을 본 후에(1-8절),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9절)라고 하였습니다. 144,000 명의 또 다른 표현인 온 세상의 믿는 자들이 흰 옷을 입고 있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흰 옷은 순결을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즉 순결을 지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죄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신앙양심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손해는 자신의 양심을 더럽혀 가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심을 속이면 하나님 앞에 담대할 수가 없습니다. 양심을 지킨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지만, 양심을 속인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늘 신앙양심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든 사람들은 선으로 악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면 우리는 복수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마 7:1; 롬 14:13). 나는 부족해서 사람을 온전히 판단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죽고 난 다음에 반드시 실제 삶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삶도 현실이지만, 죽고 난 다음의 현실에 비하면 너무 짧고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생각한다면 믿음을 지키십시오. 순결하십시오. 양심을 속이지 마십시오.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내가 왜 지금 세상을 사는지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무조건 사랑하십시오.

본문에 대 환란을 피하여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최후의 순간에 큰 소리로 외치는 성도들을 보십시오. 뭐라고 합니까?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10절)! 여러분은 최후의 순간에 어떤 소리를 외칠 것 같습니까? ‘하나님 내가 왜 이렇게 가야 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라고 하실 것입니까? 그렇다면 여태까지 산 것은 여러분의 힘으로 산 것입니다.
그러나 ‘날 구원하심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예수님의 사랑입니다’라고 한다면,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자신들이 살아온 것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참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승리한 것이 내 힘이 아니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겨냈다는 고백입니다. 성도들은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하나의 통로일 뿐입니다. 도구일 뿐입니다.
이 고백을 들은 모든 천사들이 보좌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12절)! 성경에 아멘으로 시작해서 아멘을 끝나는 찬양은 여기 한 곳입니다. 우리의 찬송(praise)과 영광(glory), 지혜(wisdom), 감사(thanks), 존귀(honor), 능력(power), 힘(strength)은 오직 다 하나님께 돌려져야 하기에 그렇게 찬양합니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것들이 주어진다면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이 모든 선물들이 다 위로부터 보좌의 계신 하나님께로 온 것이기에 말입니다(약 1:17). 물론 때로는 어떤 사람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할렐루야!

장로 중 하나가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고 묻습니다(13절). 그러자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리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14절)고 합니다. 즉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말합니다. 교회입니다.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교회를 살펴본 자들이 말합니다. 교회 안에 더럽고 추한 모습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교회를 비판합니다. Anti-Christianity 세력들로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욕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비록 흰 웨딩드레스를 입었으나 여기 저기 더러움이 묻었고, 너덜너덜한 옷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그 신부를 본다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마귀가 조롱합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의 신부는 환난 가운데서도 누가 보아도 자랑스러운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였습니다. 정말 하얗고 깨끗한 웨딩드레스를 입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정합니다.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양심은 눈과 같이 흽니다. 그들은 실수로 거짓말을 하고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애통해 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회개의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심령이 어린 양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져 있었습니다.
이런 대조적인 신부들의 모습은 오늘날 교인들의 모습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라고는 하면서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깨끗하지 않습니다. 더러움이 묻어있습니다. 탐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 환란 가운데 연단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보혈의 능력으로 살아온 분들입니다. 주님이 그들의 삶의 전부입니다. 비록 그들의 눈에 눈물이 있지만, 마음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평강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가 보아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신부들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모습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그런 참된 그리스도의 신부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15절)라고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또 성전에서 하루종일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께서 장막을 쳐 주십니다.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곳에서는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16-17절)고 합니다. 즉 그들에게는 다시는 고통이 없습니다. 배고픈 것이나 목마른 것이나 뜨거운 불의 고통이나 다른 어떤 고통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목자가 되어 주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모든 눈물을 다 씻어주시기에 다시는 눈물을 흘릴 일도 없습니다. 정말 이 땅에서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지 않는 교인들에게 이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주는 달콤한 맛에 취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게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것들을 다 누린다면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이 없습니다. 김서택 목사님의 말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의 이 세상 삶은 마치 미완성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위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자라는 것이 많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사랑한다고 해도 너무 작은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하나님 보좌 앞에서 위로 받을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지혜롭고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훗날 하나님께 위로 받을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양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입니다. 순결하게고 믿음의 지조와 절개가 있는 사람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믿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힘든 고통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그 후의 영원한 세상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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