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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4-28 (목) 23:41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765    
벌거벗고야 살리라(암 2:6-16)
우리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의 의미를 알기 원합니다. 요즈음 벌어지는 북한의 핵 도발 사건이나 미국의 대통령 예비선거 결과나 ISIS 테러 사건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관심을 갖습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조차 그 의미를 알기 원합니다. 좋게 생각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안 좋게 생각하면 남의 일에 참견하여 간섭하기 원하고 gossip 거리로 삼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내 영혼이 어떤 상태이며, 내 가정이, 내 교회는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이름뿐인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일 뿐 실제로는 거의 세상 나라 백성으로, 마귀의 자녀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해도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말씀을 붙들고 사랑하고 살면, 그들로부터 나오는 은혜가 세상을 치유할 수,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아 공평과 정의,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도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각한 죄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르고 있기에 그 죄들을 지적하고 있고 고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 수 있는 길이 하나 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6절에서 말하는 서너 가지 죄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물질 문제였습니다.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6절하-7절상)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자기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소유한 땅에 몇 년 동안 비가 오지 않거나 병충해가 들어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남의 빚을 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율법에 어긋나게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난한 자들이 힘들어 하고, 노예로 팔려가곤 했습니다. 노예가 되더라도 7년 후면 풀어주게 되어 있기에 영구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로 삼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율법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7년만에 돌아오니 부자가 자기 땅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부자에게 은을 받고 의인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이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빚을 얻어 쓴 가난한 사람이 이자를 갚기 위해 노력하는 데 신 한 켤레 정도 값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좀 깎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정을 봐주지 않고 노예로 파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사라졌으니 이웃 사랑도 사라진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웃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었어야 합니다. 너무 인색하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신 한 켤레 값 정도는 그만 안 받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탐심, 탐욕이 극에 달하여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머리에 붙은 티끌까지 탐내었던 것입니다. 겸손한 자들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 율법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게 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7절). 믿는 자라면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고 하셨습니다. 소자가 누굽니까? 정말 가난하고 약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악하게 대하여 낙심시키고 실망시키는 사람은 죽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입었으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둘째는, 성적인 타락, 도덕적인 타락입니다.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7절하) 하였습니다. 여기 “부자”란 아버지와 아들을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자를 같이 갖고 논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여자를 아들이 성관계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짐승과 같은 패륜적인 행동입니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본받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창녀와 관계를 갖고, 그것을 보고 아들도 그 여자와 그 짓을 하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이방 신을 섬기는 곳이 바로 그런 성관계를 갖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비일비재 했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 나라도 성적으로 너무 문란하여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자식들이 많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 그래서야 하겠습니까? 셋째는, 위선적인, 형식적인 예배였습니다.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8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제단들이 많았는데 예배를 드릴 때 가난한 자가 전당 잡힌 옷을 깔고 눕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의 빚 연체료로 얻은 포도주를 갖고 와 마셨습니다. 오늘날로 빗대어 말씀드리면, 남의 물건 빼앗은 것으로 교회에 와서 자랑하며 봉사하고, 놀음을 해서 벌은 돈으로, 사기친 돈으로 십일조를 바치고 헌금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봉사를, 돈을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제단을 자신들의 하나님의 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전혀 하나님 사랑의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가 무슨 하나님께 열납이 되겠습니까? 가증스러울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질 문제나 음란한 죄나 예배, 봉사, 헌금 생활이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하지는 않겠지만, 정말 돈 문제에, 도덕적인 문제에, 위선적인 예배의 모습이 전혀 없습니까?

이어서 아모스 선지자는 그들의 뿌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9-10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셔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결국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고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족속 중 대표적인 아모리 족속은 아주 크고 강한 족속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대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뿌리조차 진멸하셔서 그 땅을 차지하지 않았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이방 민족을 다 진멸하시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섬기라고 말씀하셨지만 오히려 그들이 이방 민족의 우상들을 섬기며 가증스러운 일들을 배워 죄 가운데 사는 것이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우상과 싸우고, 음란과 거짓과 싸우며, 죄와 싸워야 할 백성들이 그들과 똑같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으니라”(12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훌륭한 지도자를 주시는데 하나는 나시르 사람(나실인)이며, 하나는 선지자였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서원하여 자신을 세상 사람과 구별하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머리도 깎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왕도 아니고, 장군도 아니고, 무슨 직책을 갖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싸워 나라를 구했습니다. 아무리 크고 장대한 적이라도 나실인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켜 살면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실인으로 하여금 서원을 깨고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한편, 선지자는 율법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언한 사람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입으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들에게 예언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구별된 나실인입니다. 다 성령이 내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면 그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기쁨과 평강이 사라집니다. 또한 다 선지자입니다. 성경 말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식용으로만 갖고 있으면,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승리하지 못합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그대로 선포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막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막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것이 들어오면 안됩니다. 기도를 막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계속 앞서 말씀드린 죄 가운데 살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예언합니다. “곡식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13절)라고 하였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짐을 가뜩 실은 수레가 진흙을 서서히 누르는 것처럼 누르겠다고 하십니다. 금방 죽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 속에 서서히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달리기를 잘하는 자도, 힘이 강한 용사도 도망하거나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14-15절). 하나님의 손에 한번 걸리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손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용사 중에 굳센 자는 그 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16절상)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아를,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투명합니다. 그야말로 벌거벗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살 수 있는 길이기에 말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도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를 삼으신 후에 자유를 주셨습니다. 내 멋대로 사는 자유가 아니라, 마음껏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입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유,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할 수 있는 자유, 기도할 수 있는 자유, 찬송할 수 있는 자유, 사랑할 수 있는 자유, 헌신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뚜렷한 지정의와 믿음의 신앙양심을 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라 살든지, 죄성을 따라 살든지 자유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탐심과 탐욕으로 사용하면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돈의 노예, 정욕의 노예, 사람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벌거벗어야 합니다. 다 포기해야 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 영혼이 살고, 내 가정이 살고, 내 교회가 사는 비결입니다. 점점 타락하는 영혼은, 가정이나 교회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려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믿어도 불행합니다. 참된 기쁨과 평안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벌거벗고, 오늘날의 나실인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선지자의 음성인 말씀에 헌신하여 정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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