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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7-04 (월) 09:5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23    
교회에서 먼저 산제사로 드리라(롬 12:3-8)




단체 운동경기를 보거나, 직접 할 때에 어떤 선수들은 개인플레이는 잘 하는데 팀플레이를 잘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 팀이 승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나도 한, 두 사람이 잘한다고 이기지 못하지요. Team Work 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사탄 마귀와 치열한 전쟁을 하는 하나님 나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개인플레이로 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팀플레이로, 모든 일을 Team Work으로 해야 무리가 없이 잘 되고 바람직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믿고 함께 일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교회가 문제가 많고,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 생각대로 해야만 한다고 여기고, 내 중심으로 영향을 미치려고 하면 결국 사탄 마귀가 틈타서 교회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독단적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덕이 되지 못합니다. 나 혼자의 생각으로만, 내 힘으로만 절대로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함께 일해야 합니다. 서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겸손히 섬기면 사탄 마귀가 우리를 못 이깁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1-2절).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우리 몸으로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제일 먼저 이 땅의 하나님 나라인 교회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이하 다음 주에 살펴볼 13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물론 가정 교회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남편으로, 아내로, 부모로, 자녀로, 형제, 자매로서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교회에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때 대 원칙이 있습니다. 우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3절하) 입니다. 어떤 생각은 품지 말고, 어떤 생각은 믿음의 분수대로 지혜롭게 하라고 합니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주제파악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과대평가도 하지 말고, 과소평가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실제로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못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 주소를 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개발하여 나아질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 나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니 동일한 분야에서도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야에서는 나보다 못한 교인들도 있습니다. 즉 우리 주위에는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다 똑같이 은혜를,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고 했습니다(6절).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4절) 하였습니다. 우리 몸의 눈과 코와 귀와 입의 기능이 다 다릅니다. 손과 발이 다릅니다. 심장과 허파, 간, 콩팥, 위, 장 등이 다 다릅니다. 받은 은혜, 은사가, 기능이 다른 것을 가지고 서로 비교하면서 시기 질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런 은사를 주권적으로 각자 다르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임을 인정하고 내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고 말하라는 뜻입니다. 그에 맞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설 자리에서 서고, 앉을 자리에서 앉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만큼만 하시면 하나님의 상이 주어집니다. 한 달란트면 한 달란트로 생각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두 달란트면 두 달란트대로, 다섯 달란트면 다섯 달란트로 생각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으로부터의 칭찬은 똑같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

바울은 이어서 교회의 중요한 은사 여섯 가지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고전 12:8-11; 엡 4:11). 물론 성경에 다 기록되지 않은 은사들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바울이 생각할 때 로마 교회 성도들이 꼭 기억해야 할 은사들을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6절하), 섬기는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7절), 권위의 은사와 구제의 은사와 다스리는 은사 그리고 긍휼을 베푸는 은사(8절) 등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성도들이라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은사의 성향들을 약간씩 다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사들이 두드러지게, 탁월하게 나타나는 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예언의 은사는 좁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지자들이나 사도들로서 성경을 기록한 분들이 받은 은사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66권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는 은사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예언 외에 다른 것을 더하거나, 성경의 예언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의 재앙이 내린다고 하였습니다(계 22:18-19). 그런데 넓은 의미의 예언의 은사를 오늘날 적용을 한다면 주어진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이 예언의 말씀을, 복음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풀어 잘 전한다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뿐만 아니라 평신도들 가운데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선지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적하기도 하고, 소망을 심어주기기도 합니다. 다만 3절에서도 강조하였듯이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본인에게 허락한 믿음의 수준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마치 자신이 오늘날의 사도인양 함부로 한다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과 관계 없이 미래를 예언하는 점쟁이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섬기는 은사는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특별히 잘 섬기는 분들에게 주어진 은사입니다. 믿는 자라면 누구나 다 섬겨야 하지만 이 분들은 특별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 넘는 섬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깊이와 넓이가 탁월합니다. 평범한 신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잘 파악합니다. 그런데 이 은사가 없이 섬기는 사람들은 섬기다가도 쉽게 그만두거나 얄팍함이 있습니다. 말이 많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많이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섬기는 은사가 있는 분들은 묵묵히 말없이 잘 섬깁니다. 아무도 인정을 해주지 않아도 말입니다.
가르치는 은사는 말 그대로 누군가를 가르칠 때 탁월하게 잘 가르치는 분이 받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는 분들에게 있는 은사입니다. 교회 안에 교사로 봉사하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은사입니다. 배우는 사람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서 가르칩니다. 잘 참습니다. 그런데 이 은사가 없이 가르치려는 사람들은 배우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해 하면서 쉽게 화를 냅니다. 논쟁이 벌어지면 열을 내면서 싸우려고 합니다.      
권위하는 은사는 권위를 주장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면하고 위로하는 은사를 말합니다. 권면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온유하게 잘 권하고 위로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어떤 일로 침체되어 있는 사람이 그 분에게만 가면 위로를 받고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잘 들어주면서 상담을 잘 합니다. 이런 분들은 입이 무거워서 상대방의 사생활에 대하여 비밀을 지켜줍니다. 그런데 이 은사가 없는 분들이 누구를 권면하고 위로하려고 하면 종종 부작용이 나서 오히려 더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제하는 은사는 그야말로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을 잘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 구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구제를 잘 합니다. 자기는 어렵게 살아도 말입니다. 기쁘고 즐겁게 합니다. 성실하게 합니다. 그리고 구제를 하고 나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정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합니다(마 6:4).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구제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해 놓고 자기가 했다는 것을 밝혀야만 하는 사람은 구제의 은사를 받은 분이 아닙니다.
다스리는 은사는 지도력, 리더십을 말합니다. 유난히 교인들을 잘 인도하는 분이 가진 은사입니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기꺼이 즐겁게 따라갑니다. 교인들을 잘 듣습니다. 따라오는 교인들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잘 지킵니다. 교인들은 그를 신뢰합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순종합니다. 그런데 다스리는 은사가 없는 사람이 다스리면 따라오는 사람과 불협화음이 일어납니다. 자신은 권위를 가지고 다스리려고 하는데, 교인들은 그의 다스림을, 지도를 받기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따라오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긍휼의 은사는 특별하게 교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은사입니다.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한 분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작은 일에도 긍휼을, 자비를 베푸는 분입니다. 함께 울어주는 분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즐겁게 합니다.
이러한 모든 은사의 기본은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은사가 없다 하더라도 가장 최고의 은사인, 은혜인 사랑은(고전 12:31; 13:13; 14:1) 믿는 자라면 마땅히 사모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비록 정도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하였지만 모든 신자는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은사가 하나도 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 이상의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개발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사용하지 않으시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숨겨 놓고 난 후에 주인에게 야단 맞은 것처럼 나중에 꾸지람 듣습니다. 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려 할 때 또 다른 대 원칙은 우리가 다 다른 은사를 가졌으나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unity)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5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은사는 다 다르지만, 믿음의 분량은 다 다르지만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으며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처럼 한 지체가 문제가 생기거나 떨어져 나가면 온 몸이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2:1절하-3절)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를 이미 하나가 되게 하셨다는 진리를 잊으시면 안됩니다. 어느 한 사람도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힘써 지켜야 합니다. 부부도, 가정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와 은사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자라난 환경도 다릅니다. 교육수준도 다르고, 생활 형편도 다릅니다. 잘 하는 것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가정을,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다양한 가운데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니 다르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치 지휘자의 지도로 각양 많은 악기들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말입니다. 만약 다 똑같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못 살 것입니다. 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떨어져 나가면 둘 다 고통을 받습니다. 안 필요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은사를 아주 조금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 존중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조차 말입니다.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 몸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 주님의 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분들이라면 교회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기대에 부합되는 우리의 삶이 되려면 우선 가정과 교회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특히 믿는 자로 구성된 가정교회는 물론, 우리 지역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을 부르실 때 성령으로 인치시면서 각자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것을 인정하고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일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모두 다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분들입니다. 서로 필요합니다.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떨어져 나가서도 안됩니다. Team Work, Team Ministry 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며, 서로 양보하며, 서로 배려하며, 서로 사랑하며,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한 몸으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하나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떨어져 나가면 안됩니다. 한 몸에 붙어있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의 개인플레이 때문에 몸을 망치면 안됩니다. 오히려 나 한 사람 때문에 몸이 건강하게 잘 유지가 되어서 사탄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힘쓰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교회에, 우리 모든 교유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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