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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8-22 (월) 06:2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97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신 5:1-7)


여러분들 가운데 율법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 말라, 하라 등으로 우리에게 멍에를 지우는 법으로만 여깁니다. 하지만 율법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우리를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사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주님 밖에서의 자유는 사실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올무입니다. 죄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언제 율법을 주셨습니까? 모세 이전에도 넓은 의미의 율법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생령을 불어 넣으신 후에 에덴 동산에서 자유롭게 무엇이든지 먹으면서 누리고 살도록 했습니다. 다만 하나의 법을 주시고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셔서 ‘위하여’ 주신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사탄, 뱀의 말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면서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셨습니다(창 3:15).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족장시대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가 지난 후, 430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롭게 살도록 구원해 주시고 나서, 모세를 통하여 다시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2절). 그 백성들은 애굽에서도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살도록 구출해 주신 것입니다. 즉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로 주신 것입니다. 구원 받은 백성이니까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그의 십계명 강해에서 살아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며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사실 너희와 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무한한 거리가 있는 것처럼 나는 너희와 아무런 합의도 없이 너희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 그런 자격과 권리가 있는 내가 다 내려놓고 너희의 구주가 되기 위하여, 인도자가 되기 위하여 너희 곁으로 왔다. 나는 너희를 다스리기 원한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맺은 것이 너희로부터 무엇을 얻어내기 위함이라고 여기면 안된다. 내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그리고 도대체 너희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나는 그저 너희에게 구원을 주고, 축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지금 계명을 정해가며 너희와 언약을 맺고 너희를 향해 맹세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와 똑같이 새 언약에서도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은혜, 선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거저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율법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가 되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모세의 율법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의식법(Ceremonial Law), 시민법(Civil Law), 그리고 도덕법(Moral Law) 입니다. 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율법이 성취되었기에 의식법과 시민법은 오늘날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도덕법은 신약의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에 다 그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켜야 합니다. 이 도덕법의 대표가 바로 십계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계명이 옛날 옛적 4000여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말씀이어서 지금은 맞지 않는다고, 안 지켜도 된다고 합니다. 그저 도덕, 윤리로만 생각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십계명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살펴보기 원합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어디다 써 주셨는지 아시는지요? 파피루스 종이가 아니라 돌판에 써 주셨습니다. 왜 종이에 써 주지 않으시고, 돌판에 써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인 Arthur Pink 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돌판에 써서 주신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돌 같이 단단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단단히 굳은 마음에는 하나님의 손 외에 어느 누구도 글을 쓸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손수 십계명을 쓰셨다고 말입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요단강 서편 모압 평지에 출애굽 2세들을 모아 놓고, 다시금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상기시켰습니다(1-5절). 40여년 전에 주신 말씀(출 20장)이 현재 말씀을 듣고 있는 2세들에게 해당하는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과 시내산에서 그 말씀을 주실 때에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나타나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4절). 불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죄인인 인간이 감히 대할 수 없기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는 말씀을 듣고 읽을 때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모세는 그 백성들에게 십계명 말씀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그들의 존재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축복하시고 모든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는 자들이 존재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방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최고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을 만드셨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인간들이나 피조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 멘!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죄를 짓는 가운데서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지를 나타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단지 그들의 변화된 모습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나타내어야 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끝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으며 자유로운 새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언제든지 이스라엘이 만났던 그 능력의 하나님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로 있다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것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들은 또한 앞으로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자기 힘이나 우상을 믿는 힘으로 아무리 복을 받고 잘 살아도 그런 것을 부러워하면 안됩니다. 우리들의 축복은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바로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 계명은 “나 외에는 위하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7절; 출 20:3) 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영혼 깊은 곳에 하나님을 찾는 본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혹자는 종교심이라고 합니다. 바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신을 만들거나 종교를 만듭니다. 무엇인가를 믿고 삽니다. 무신론자들도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이 없다는 것을 절대화하여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하나님 외에 자신들을 위하여 다른 신들을 믿고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신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보아왔고, 자신들도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애굽에는 태양신 Isis, 죽음의 신 Osiris, 다산(多産)의 신 Amen-Re 등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들(개구리, 이, 파리, 메뚜기 등)이 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는 것들과 관계있었습니다. 한편 가나안 땅에는 비와 우뢰의 신 바알과 성(sex)와 다산의 신 아스다롯 등이 유명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미신(Shamanism)을 비롯한 수많은 신들이 있는데 그 배후에는 사탄, 마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을 아노라”(고전 8:4)고 하였으며,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19-20)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신들은 다 마귀의 종들, 영물들, 즉 귀신(demon)입니다. 주로 제 3세계 후진국일수록 우상 숭배가 더 합니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돈, 명예(인기), 권력, 쾌락, 과학 혹은 지식(철학)이 우상이 되어 섬깁니다. 하나님을 대신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재물이 그들의 신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건강으로 우리의 수고하고 땀 흘려 얻어지는 대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게 번 돈은 귀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돈을 다스려야 하는데, 돈이 우리를 다스리게 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신이 된 것입니다. 주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첫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히려 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결국 망하게 됩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인기를 끌려고 하는 것이, 유명해 지려고 하는 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자체는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에 목을 매는 것입니다. 인기를 끌고 유명해 지고자 하는 것이,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닌데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진정한 만족과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말입니다. 세상적으로 부족해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면 참 만족과 기쁨이 오는 것인데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권력에 목을 매는 분들이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삶의 목적인 사람들입니다. 그 권력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권력을 손에 넣더라도 언젠가 내려올 날이 있는데 말입니다. 세상 역사 속에 지나갔던 수많은 왕들이 증명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욕을 채우는 쾌락이 우상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Sex 에 중독이 된 사람들입니다. 마약처럼 말입니다. 자꾸 더 자극적인 욕망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쾌락을 금지한 것이 아닙니다.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부부 사이로 제한 하셨습니다. 부부가 성적인 기쁨을 나누는 것은 전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적인 욕구 자체가 우상이 되어버리면, 아무리 마셔도 자꾸 갈증이 나는 Soda 나 술처럼 그것이 결국 불행하게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과학이 우상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발견한, 혹은 발명한 과학, 문명이 우상이 되어서 그것만 믿는 사람들입니다. 과학, 문명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 것이 될지언정 그것을 신봉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를 편리하게 해줄 뿐 결코 영혼의 만족을 주며, 기쁨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심령의 영원을 사모하는 갈증이 채워져야 행복합니다. 철학이나 다른 지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우상들의 배후에는 다 마귀가 있습니다. 악한 영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빠져들게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추한 모습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깨어  경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십계명의 첫 계명,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에서 강조되는 것은 “나 하나님 외에는”, 그리고 “네게”라고 단수를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인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개인 앞에 하나님만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결합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 다 믿고 섬기며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분 앞에는 그 어느 것도,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보다는 더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하셨으며,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돈이나 인기나 권력이나 쾌락이나 지식이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키지 못할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감당할만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영역에 있어서 만큼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나 1:2).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5, 신 5:9-10)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결국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누구이냐는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인생을 주장하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연주합니까? 사람입니까? 돈과 인기, 명예, 권력, 욕망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사탄, 마귀입니까? 의의 종입니까, 아니면 죄의 종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아니라면 결코 하나님의 축복은 받지 못합니다. 사람이나 다른 것이라면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못 됩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라 살 것인지, 아니면 육신을 따라, 마귀를 따라 살 것인지 선택하십시오. 물론 여호수아처럼 내와 내 가족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실 줄 믿습니다(수 24:14-15). 성령을 따라 살겠다고 결단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주님만을 의지하고 말씀을 붙들고 사십시오. 기도하면서 도움을 구하십시오. 사탄, 마귀의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마십시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정말 그렇게 삶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분은 물론 자손 대대로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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