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6,827,240
오늘방문 : 17171
어제방문 : 65154
전체글등록 : 3,905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10-31 (월) 09:4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86    
거짓증거 하지 말라(신 5:20; 약 3:1-12)




솔로몬은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아 8:6) 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사랑은 강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경험한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의미는 우리 신약의 성도들에게 더욱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잘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 두 번째 돌판에 쓰여진 제 5계명부터는 우리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살펴볼 제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신 5:20)는 말씀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법정에서 증인으로 설 때에 진실을 말하라는 뜻입니다. 법정에서 증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거짓 증언을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증인의 말은 판결과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에야 DNA 등 증거물에 대한 조사가 중요하지만, 그 때에는 그런 기술이 없었기에 증인의 말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 19:15) 하셨습니다. 따라서 증인의 증언은 치명적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증인의 증거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9계명은 단지 법정에서의 증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도덕적으로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합니다. 이 계명의 넓은 의미는 우리의 말에 대한 계명입니다. 입으로 짓는 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참된 것을 말하며, 사랑의 말만 할 수 있었지만, 타락한 이후로 저주하며, 비방, 중상, 거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계명은 우리의 이웃들에 대하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들의 신용을 떨어뜨릴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웃들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거나 비방하면 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 같아도 하나님은 그것을 거짓 증거로 간주하며 책망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 말한 것이 사실은 사실이지만 전체(Context)를 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것도 거짓 증언이 됩니다. 즉 전후 문맥을 다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단편적인 것만 이야기하면 중상, 험담이 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25)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불신자들이 쉽게 하는 거짓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주와 험담, 비방하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가 죄를 전혀 안 짓고 살 수 없듯이, 고의적인 거짓말이 아닌 연약하여 한두 번 실수로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거짓은 고의적인, 습관적인 거짓말, 거짓된 삶을 가리킵니다. 이웃을 속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짓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가 참 성도라고 하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마귀의 헬라어 원어(diaboloj)의 뜻은 ‘비방하고, 중상 모략하는 자’ 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 생명, 죽음, 천국, 지옥, 성경, 선한 것이나 악, 모든 것에 관해 거짓말을 합니다. 또 직접적인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부풀려 말한다든지, 진실로 시작했다가 없는 이야기를 더합니다. 왜곡하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사탄의 역사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다만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truth)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라고 하였으며, 성령을 가리켜 "진리의 영"(요 14:17) 이라고 하였고,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니이다"(요 17:17)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자가 될 때에 그는 거짓의 영역에서 참된 것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모양의 거짓도 새 사람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에 이웃이라는 것은 교회의 다른 성도, 형제, 자매들을 가리킵니다.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여야 하는 이유가 서로 한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에는 진리인 그의 말씀과 그의 몸인, 즉 교회를 사용하시는데,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용하실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세상 밖에서도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더욱 진실을 말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지요. 우리의 육체도 서로 진실되이 연결되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거짓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며 진실하게 사십니까?

사도 야고보는 성령의 감동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약 3장). 하나님께서 말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심판을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고 합니다.
실제로 말 실수를 하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도 이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horses)과 배(ships)를 예를 들면서(3-4절) 우리의 입에 굴레를 씌울 것을, 통제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horse)은 정말 입에 굴레를 씌워야 통제가 됩니다. 그래야 말(horse)이 유순해 집니다. 또 아무리 큰 배라 하더라도 항해사가 쥐고 있는 키로 배는 통제가 되고, 어디로든지 갑니다. 또 우리의 혀는 불과 같아서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우리 온 몸을 더럽히며 마치 지옥 불처럼 불사를 수 있다고 합니다(5-6절). 그만큼 말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서 함부로 내어 뱉은 한마디 부정적인 말이 가정이나 교회에 엄청난 파괴력이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세상의 다른 짐승이나 새들은 사람이 길들이면 잘 길들여지는데, 사람의 혀는 길들여지기가 힘들다고 합니다(7절).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8절)고 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하여 우리 말이 길들여지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자신과 싸워 길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내 말이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고 파괴적일 때 아무도 고쳐줄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도,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못 고칩니다. 결국 자기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통제된 말일까요? 김서택 목사님은 1)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하되 대화의 목적에 맞는 표현과, 2) 상대방의 마음, 정신을 읽으면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공감을 할 수 있지요.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말하지 않고, 한 마디 한 마디 생각 좀 하면서 말을 하면 실수가 적을텐데 말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고 TV, 인터넷, 영화 등의 영상 문화 속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생각하는 훈련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냥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버리지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도 모르고 정리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어떤 말 뒤에 감추어져 있는 사고와 정신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또 내가 이 말을 했을 때에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일까 하며 그 표현의 방법까지 신중하게 한다면 정말 실수가 적을텐데 말입니다. 문제는 한번 내뱉은 말은 엎지른 물을 주어 담을 수 없듯이 주어 담을 수가 없다라는 것이지요. 물이 엎지러질까 조심하듯이 주의하여 말하면 잘 통제된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평소에 평온하고 아무 일이 없을 때 말에 실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화가 날 때, 마음 속에 분노가 있을 때에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상처가 있고, 분노가 들끓을 때, 흥분될 때에 올바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때는 대부분 말의 실수를 하게 되어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에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때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나오는 대로 퍼붓게 되면 그것이 바로 사람을 죽이는 독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말에 쏘인 사람에게는 그 독이 쉬지 않고 퍼져 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래서 말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절제된 말, 통제된 말, 유순한 말은 정말 은혜스럽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덕을 끼칩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한 입에서 찬송가 저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가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9-10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저주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미워해서 그가 망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마음에 분을 품을 때에 그런 말이 나오지요.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결정적인 위치에 두고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저주가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가 말해준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저주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는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저주하는 말도 하지 않고 언제나 찬송만 부르고 축복의 말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완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한 입으로 찬송이 나가기도 하고, 또 더러운 욕설이 나갈 때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기에 회개하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실수를 줄여가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결국 마음이, 생각이 중요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본문 11절과 12절도 결국 마음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한 샘에서 쓴 물과 단 물이 나올 수 있으며, 무화과 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향하여 나쁜 생각이, 좋지 않은 마음이 들면 ‘내가 나쁘구나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좋지 않은 일을 해도 그 사람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의 마음이 생기면, 좋은 마음이 생기면 ‘나의 믿음이 조금 성장했구나, 주님을 닮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사탄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2, 4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거짓의 결과는 심판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시 5:6절상)라고 하였으며,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고 하였고, “모든 거짓말하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거짓 증거나 비방이나 험담, 중상하는 죄를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 말의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면 회개하고, 찾아가 사과해야 합니다. 또한 사탄 마귀에게 사로잡혀 헛된 소문을 퍼뜨리거나 불평하는 사람들을 피하셔야 합니다. 말이 많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셔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의 말로 내가 상처를 입으셨다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늘 다른 사람을 비방하기 전에, 나에게는 잘못이 없는지 돌아보는 것은 나의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어찌하든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성령님께서 지키셔서 우리의 말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무시로 위하여 기도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제 9계명을 지킬 수 있는 열쇠도 사랑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은사를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짓 증거를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이웃들에게 거짓말이나 험담, 비방, 중상하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덮으려고 합니다. 비난하기 보다는 용납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혀를 귀하게 사용합니다. 칭찬과 격려, 사랑의 말로 대신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820 수요설교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는 주(계 11:14-19) 한태일 목사 2016-12-29 1870
819 주일설교 성탄과 성찬(막 10:45) 한태일 목사 2016-12-26 1868
818 주일설교 소망의 성탄(눅 2:8-14) 한태일 목사 2016-12-19 2041
817 수요설교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와 영광(계 11:7-13) 한태일 목사 2016-12-15 1838
816 주일설교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연합(3)(롬 15:1-13) 한태일 목사 2016-12-12 2085
815 수요설교 더 큰 영광의 직분(고후 3:7-11) 한태일 목사 2016-12-08 1942
814 주일설교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연합(2)(롬 14:13-23) 한태일 목사 2016-12-05 1853
813 주일설교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연합(1)(롬 14:1-12) 한태일 목사 2016-11-28 1997
812 주일설교 기도하며 감사하였더라(단 6:1-10) 한태일 목사 2016-11-21 1948
811 주일설교 정말 사랑하십니까?(마 22:34-40) 한태일 목사 2016-11-14 1759
810 주일설교 탐내지 말라(신 5:21; 골 3:5-6) 한태일 목사 2016-11-07 1819
809 주일설교 거짓증거 하지 말라(신 5:20; 약 3:1-12) 한태일 목사 2016-10-31 1786
808 주일설교 재물에 대하여 신실하라(신 5:19; 눅 16:10-13) 한태일 목사 2016-10-17 2101
807 주일설교 몸과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신 5:18; 마 5:27-30) 한태일 목사 2016-10-10 2061
806 주일설교 영혼과 생명을 존중하라(신 5:17; 마 5:21-22) 한태일 목사 2016-10-03 2102
805 주일설교 네 부모를 공경하라(신 5:16) 한태일 목사 2016-09-26 2115
1,,,3132333435363738394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