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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3-25 (월) 04:2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67    
중보기도(딤전 2:1-2)


우리가 예님을 믿고 나서 모든 일다 다 잘되고 아무 걱정 염려가 없는 신앙생활이 결코 아니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이 세상은 영적 전쟁터라고 합니다(엡 6:12). 사탄 마귀의 종들인 악한 영들을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적 싸움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사탄 마귀의 사망 권세를 물리치고 이미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신 것이기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성도들은 질 필요가 없는 싸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전쟁에서 자동적으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전쟁의 무기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만(엡 6:17), 이 무기를 가지고 주님의 전략을 따라 싸워야 약속된 승리가 보장됩니다. 무엇이 승리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특별히 중보기도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함으로,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함으로 우리 모두 함께 무릎으로 싸워가야 할 전쟁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1장에서 진리와 상반되는 거짓 가르침과 은혜와 상반되는 율법주의에 대한 경고를 하면서, 하나님의 진리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을 이루어왔는지를 설명하고 어찌하든지 디모데는 변함없이 믿음의 착한 양심을 지켜 신실하게 목회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2장에 들어와서 공적인 예배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모든 사람을 위해, 특히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1절) 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 기도의 종류 혹은 내용 네 가지가 나옵니다. 이 네 가지 단어의 헬라어 원어 의미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간구(request)”는 ‘무엇이 모자라다’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나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의 부족한 필요들을 위하여 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듯이, 하나님께서 채워주셔야 할 각종 필요를 위하여 간청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prayers)”라 함은 기도의 일반적인 용어인데, 성경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위하는 것에만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드리는 경배와 찬양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높이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 “감사(thanksgiving)”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목들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되심, 즉 그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감사하며, 구원을 감사하며, 일반 은총을 감사하며, 특별 은총도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도고(禱告, intercession)”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의미로 다른 사람의 일에 간여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이 곳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 4:5)에서, ‘기도’로 번역된 곳에만 사용되었는데, 동정(sympathy)과 열정(compassion)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바로 ‘중보기도’를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중보기도로 거룩하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제자훈련에서 가르치는 기도의 요소, 다섯 손가락인 그 내용에도 바로 이 네 가지가 다 포함되지 않습니까? 죄를 고백하는 것까지 하나가 더 나옵니다만.

저는 오늘 이 ‘중보기도’에 대하여 더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원래 ‘중보’란 말은 ‘불화한 두 당사자 사이에 화목을 중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죄인인 우리 인간들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중보의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님께로부터 계시의 말씀을 받아 선포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역할을 한 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의 선지자들(히 1:1), 천사들(히 2:2), 신약의 사도들(엡 3:1-7),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히 1:2)입니다. 2)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의 중보 역할을 한 자들이 있습니다. 아론으로 시작하여 구약의 레위 계통 제사장들과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히 7:11-10:25, 4:14). 3)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백성들을 다스리며 중보의 역할을 한 자들이 있습니다. 구약의 선한 왕들(삼상 13:14, 행 13:22)과 하나님께서 왕권을 위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행 13:23, 계 17:14). 4)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원한 화목을 위한 구원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 14:4, 딤전 2:5-6). 오직 예수님 만이 구원의 중보자이십니다. 5) 기도의 중보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요 17장, 롬 8:34), 성령(롬 8:26-27), 그리고 성도들입니다(행 12:5 외).
성경에 나타난 성도들의 중보기도의 예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려 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려서 롯이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창 19:20이하).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출 17:8-16). 또 그는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그 백성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출 32:32).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에 도전하다가 문둥병이 걸린 누이 미리암을 위하여(민 12:13) 중보기도를 하여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린 백성들을 치유해 주실 것을 구한 중보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민 21:4-9). 그 백성들을 위한 자신의 후계자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여 응답 받고 여호수아를 세웠습니다(민 27:15-23). 사무엘도 블레셋이 쳐들어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함으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승리를 주셨었습니다(삼상 7:7). 엘리야도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림으로 살렸고(왕상 17:20-21), 엘리사도 사환의 눈을 열어주실 것을 구한 중보기도를(왕하 6:17), 다윗도 자신의 죄악으로 인한 그 백성들의 재앙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대상 21:17), 히스기야도 그 백성의 죄 사함을 위하여(대하 30:18), 욥도 그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렸었습니다(욥 42:10). 에스라(스 9-10장), 느헤미야(느 1:5-11), 다니엘(단 9:3-19)도 중보기도를 드려 응답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죽은 다비다의 회생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려 응답을 받았고(행 9:40), 한편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그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함으로 기적이 일어나 풀려났었습니다(행 12:5).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의 믿음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린다고 했습니다(엡 1:16). 또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9).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모든 믿는 자들은 다 제사장이라고 하는, 만인제사장의 진리를 외쳤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의 사역은 중보자의 사역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만인제사장으로서의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가 중보기도의 사역입니다.
이러한 예들을 살펴보면 얼마나 중보기도가 중요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보통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를 정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귀를 기울이며 말씀을 드리면서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보기도란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믿지 않는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며, 다른 신자들의 필요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시다면, 주님을 본받기 원하는 우리는 얼마나 더 그렇게 중보기도를 하고 살아야 합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주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복을 나누어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 성막이나 성전을 보면 입구가 가장 화려한 청색, 자색, 홍색 등 여러 가지 색실로 수를 놓은 아름다운 휘장으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영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교회에 온 것은 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딤전 2:4).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는 하나님의 복이 부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셔서 그가 믿음의 조상, 축복의 근원이 되었는데, 이 복이 모세와 다윗, 그리고 우리 예수님을 거치면서 엄청난 축복으로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우리는 이 복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복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복을 주십니다. 만일 그 사람이 도저히 그 복을 받을 사람이 되지 못하면 그 복은 기도한 우리들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위한 기도가 내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더 빨리 응답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복은 남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나누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남들이 복을 받으면 우리에게도 부스러기가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성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든지 안 들어주시든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고,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 악한 자나 선한 자, 별로 친하지 않은 자나 친한 자, 심지어 원수들까지도 위하여 기도해주면 좋습니다. 병든 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가 병을 기도로 고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뜻 안에서 고쳐주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병자를 위하여 기도를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중보기도를 해야 할 제목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도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도 교인들에게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고 했는데, 본문에서는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로 황제와 같은 악한 임금이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그들이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사탄 마귀는 이 세상 권력자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자기 수하에 두고 부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사람이 바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인 것입니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요, 우리들의 일인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주 선한 것이라고 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 목회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해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 곳곳에서 자신과 동역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엡 6:19, 골 4:3 등). 바로 그들이 사탄 마귀의 공격 1차 대상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쓰러지면, 약해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엄청난 피해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설교자와 예배하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면, 그냥 왔던 사람들도, 낙심하고 있던 자들도 마음 속에 성령의 감동이 임하면서, ‘오늘 내가 정말 예배 참석하기를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주의 종들 뒤에는 이렇게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처럼 교회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복음이 전해지고, 훈련받는 주님의 제자들이 왕성하여 더 큰 사역을 하도록 말입니다. 그 외에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얼마나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습니까? 더 이상 중보기도 사역의 당위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위에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사용하여 그 뜻을 펼치시고, 그 하시는 일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성경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의 개인기도에는 중보기도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에 꼭 필요한 중보기도 사역은 아무렇게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보기도 사역은 훈련을 받은 성도들이 체계적으로 분담함으로 중보기도를 효과적으로 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또 한 사람이 그 모든 기도제목을 가지고 매시간 한꺼번에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교회 중보기도 사역을 하고 있지만, 보다 활성화하도록 함께 이 사역을 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사역훈련을 오는 금요일부터 오후 8시부터 세 번에 걸쳐 실시하기 원합니다. 관심을 가지시고 체계적으로 중보기도 사역에 대하여 배워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효과적으로 쓰임을 받고, 축복을 받는 여러분들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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