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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4-01 (월) 11: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52    
우리가 믿는 것(1) (계 4:8-11)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그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데에는 그 뒤 배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어떤 말과 행동 뒤에 숨어있는 이유를 알려면 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 가를 알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람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동기는 그가 무엇을 믿는 것, 혹은 신념(conviction)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다 신자(信者)입니다. 사실 무신론자도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니까요. 또 어떤 이는 돈이나 힘을 믿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주로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가 똑똑해서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자기를 믿습니다. 이렇게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무엇인가를 믿고 삽니다.

한편, 기독교 신앙에도 2000여년을 내려오면서, 그 믿음의 모양이 가지각색으로 나타납니다. 이단은 물론이요, 초대교회들이 믿었던 신앙에서 곁길로 떠나 비성경적 신앙이 많이 생긴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고 한대로, 마음과 입, 즉 무엇을 믿는 것과 고백하는 것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고백하여야 된다고 합니다. 또한 고백하는 자는 고백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들 가운데 참된 그리스도인들, 진짜 성도들에게 필수적으로 암송되고, 또 마음으로, 입으로, 행동으로 고백되어지는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과,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우리들의 행동 강령으로, 기독교 윤리 헌장이라고 할 수 있고,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의 본(model)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주일 예배 때마다, 새벽기도 때마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초대교회 사도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까지 역사상의 참된 주님의 교회가 변함없이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 내용입니다. 신경(Creed)이란 말은 라틴어의 'Credo' 에서 나온 것으로 '내가 믿는다' 하는 뜻을 갖고 있는 신앙의 선포를 말합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는, 성경말씀에 기록된 기본진리를 올바르고 간략하게 그 중심내용을 간추려 준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신경 혹은 신조는 교회 안에 들어오는 이단을 물리치고, 교회를 보호하는데 필요했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부들도 그러한 목적으로 교리(doctrine)를 간추려서 신앙고백을 만들었습니다. 지상교회는 온전하지 못하기에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라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고백이 바르지 못하면 교회가 흔들리고, 구원의 확신이 흐려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신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들에게 주신 신, 구약 66권의 기본 뜻을 집약해놓은 교회사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처음에는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것보다 더 단순한 것으로, 초대 12사도들의 신앙고백이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주후 140-150년 경 로마교회에서 사용한 '로마신조'를 원형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로마천주교회가 타락하기 전 5세기경 이래 확인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라는 질문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그 믿음이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주어, 말과 행동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은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믿든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성경의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것을 믿고, 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한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그를 추구하면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주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말 우리는 옛적으로 돌아가서, 초대교회 사도들이 믿었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어렴풋이 피상적으로 알고 믿고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성령님에 대하여 실제적인 앎이 중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몸에 어디엔가 염증이 생겨서 점점 곪아가며 열이 펄펄 끓고 있다고 합시다. 항생제를 먹으면 몸에 저항력이 생겨서 그 병균을 죽이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또 믿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결국 못 고치고 죽고 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제적인 산 믿음과 죽은 믿음의 차이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이 혼란한 시대에 흔들리지 않도록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바로 알고,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순종하는 믿음,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참된 성도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을 몇 주일에 걸쳐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은 그 첫 부분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는 신앙고백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19세기 공산주의 철학자였던 칼 막스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했고, 그를 따르는 유물론적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또, 19세기 말 철학자 니이체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했고,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활동이 왕성했던 사르트르, 야스퍼스 등의 이성주의 철학자들은 ‘고대의 신은 자연이요, 중세의 신은 하나님이요, 현대의 신은 인간이다’ 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을 비롯한 인도, 일본, 한국 등 아시아에는 많은 범신론자들이 세상의 피조물들을 신으로 섬깁니다. 일본에는 8000만의 신이 있다고 합니다. 20세기 말에는 New Age Movement 으로 사람도 신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Post-modernism 의 사상으로 상대주의가 득세하면서 절대적인 진리를 부인합니다. 그래서 절대적인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해 보이려고 했던 신학자들, 즉 변증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몇 사람 예를 들면 중세시대 안셀름 교부는, ‘사람이 위대한 것을 인식할(conceive)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즉 이 위대한 것을 인식한다면 분명히 그 실체(necessary being)가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논리를 폈고,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만물에는 반드시 그 원인과 결과가 있다. 어떤 결과에 그 원인이 없는 것은 없다. 그러면 맨 시초의 원인(a first cause)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했고, 또 여러분들이 잘 아는 C. S. 루이스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도덕성이 있다. 그래서 잘 잘못, 정의, 평등 등에 대한 도덕적 관념이 있다. 그것은 어디서 왔느냐? 그 도덕, 정의, 의 등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변증학자들의 논리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 이성적 논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성적인 논리에 특별계시인 성경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세상의 그 만드신 만물(일반계시)들을 보아서도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하였고(롬 1:20),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무수히 많은 시편(8편, 89편, 104편 등)은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바로 신구약 성경은 이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들에게 먼저 자신을 나타내신 특별계시인 것입니다. 자그마한 손바닥에 바닷물을 떠놓고, 바다에 대하여 알고 이해한다고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더 알도록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특별계시를 받은 후 내가 하나님과 관계(relationship)를 맺는 것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계시의 말씀을 이해하며 하나님을 안다고 하여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으면, 그 분과의 만남의 경험이 없으면, 교제가 없으면 그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바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첫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 함은 그의 스스로 존재하심과 변할 수 없으심과 그의 지식, 선하심, 사랑하심, 의로우심, 거룩하심, 주권과 능력에 있어서 무한하심을 뜻합니다. 영원하심을 뜻합니다. 성경에 수없이 많은 부분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서도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를 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장차 있을 일들을 계시하시는 가운데, 먼저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2장-3장), 4장에서는 앞으로 마땅히 있어질 일들을 보이시되 하늘의 보좌를 보이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리키는 이십 사 장로들의 모습과 천사들을 상징하는 네 생물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특히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면이 보입니다.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8절)고 찬양을 드리며, 온 교회들이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11절)하며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스스로 영원히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출 3:14),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만물을 다스리심을 찬양합니다.
이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이 진리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의 신뢰와 평안과 기쁨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응답에, 오늘도 지켜 보호하심에, 궁극적인 구원의 완성에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그 진리를 가르치시고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실제로 보여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는 존재의 시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우주의 존재가 시작되었다,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된 사실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천지가 우연히 발생했다고 하고, 진화론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지극히 작은 미생물이 성장, 발전하고 진화하여 마침내 고등생물,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현대의 과학자들은 Big Bang Theory 를 주장하여 오래 전에 갑자기 우주에서의 일어난 큰 폭발로 인하여 천지가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과학 자체가 신이 됩니다. 이러한 가설(theory)이 과학의 기초가 되어 철학으로 발전하고, 세상 사람들을 모두 인본주의 철학과 사상으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땅과 하늘들과 바다와 모든 생물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창 1장). 시간이 있기 전에, 공간이 있기 전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셨기에 하나님만이 만물의 소유주임을 알려줍니다. 존재하는 피조물(creatures)은 그것들을 만든 창조주(Creator)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창조주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도 교회들이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고 하지요.
우리는 또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창 2:6-7).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27). 짐승과 달리 양심, 도덕성을 허락하시고, 뚜렷한 지정의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아담이라 이름하였고, 하나님이 그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창 2:23)고 하였습니다. 그를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의 ‘하와’라고 이름하였습니다(창 3:20). 참으로 사람은 하나님 창조 역사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들을 축복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창 1:27).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께 종속되도록(dependent) 만들었기에 자유의지를 허락하셔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함으로,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과 대등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요, 그의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도 다스리심을 믿는 것입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 사도신경 서두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사랑의 아버지, 심판과 공의의 아버지, 신실하신 아버지, 자비하신 아버지를 뜻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너무도 다른, 높은 권력과 권위를 생각하게 한다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심은 아주 가까운 관계를 의미합니다. 앞서 언급한 인격적인 관계를 뜻합니다. 곧, 나 개인의 아버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영적인 아버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결코, 절대자의 권위를 가지신, 초월하신(supernatural) 분만이 아니고, 나와 아주 가까이, 친히, 함께 하시는 아버지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성품을 잘 나타내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종종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 혹은 아바라고 부르셨습니다(눅 23:46). 우리를 양자로 삼으셔서 성령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고 말입니다. 이는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방인이 예기하는 추상적인 신이 아닙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여러 다른 종교에서의 신이 아닙니다. 또 어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온 세상 만민의 아버지도 아닙니다. 오직, 믿는 자, 중생체험을 한 자,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아버지를 뜻합니다(요 1:12, 3:5-7).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물어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느냐고, 어떤 하나님이냐고 말입니다. 그 때 여러분이 믿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 첫 문장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하나님을 ‘내’가 믿는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 . . " (딤후 1:12) 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올바로 되어 전능하신 주권자,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합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수없이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개인 구원이 먼저요, 근본입니다. 정확하고도 확실한 개인 구원이 없이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2:38)고 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우리 개개인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자신 스스로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던 룻소가 영국으로 배를 타고 가던 도중 대서양에서 풍랑을 만나 파선 위기에 처해있을 때에 ‘하나님이여! 당신이 계신다면 나를 구원해 주소서!’ 라는 기도가 터졌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도 임종 시에는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구나. 오! 예수 그리스도시여!’ 라고 부르짖으면서 운명하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들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 분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진리를 하나님 자신 편에서 먼저 나타내 보여주심으로, 계시하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을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진실로 고백하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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