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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4-08 (월) 06:3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77    
우리가 믿는 것(2) (요 5:16-23)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살펴보는 가운데, 지난 주에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믿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성경은 복음(Gospel), 좋은 소식(Good News) 즉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소식입니다. 그것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게 패하여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는 소식이나 미국 군대가 ISIS 테러분자들을 다 격퇴했다는 정도의 소식이 아닙니다. 아니,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고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 해도 그것이 영원한 뉴스, 복음의 소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일시적인 좋은 소식이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소식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만이 영원한 복음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2000여년 전에 오셨건만, 시대를 초월하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지속적으로 영원한 복음의 소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2000여년 전 사람들에게나 현대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백인들에게나 다른 유색 인종들에게나, 저 북극의 에스키모에게나 아프리카의 나라들에게까지 예수님은 저들의 생애와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는 생명의 뉴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탄생과 그의 일생은 마침내 그의 이야기(His Story)가 아닌 바로 역사(History) 그 자체가 되어 역사의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세계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짤막한 문장 안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로 믿습니다.
외아들이라 함은 수학적 개념의 표현이 아닙니다. 첫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 등등의 개념이 아닙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한 아들(a son of God)이 아니고 하나님의 그 아들(the Son of God)입니다. 또, 육체적인 관계 개념도 아닙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육체적 관계에서 출생한 아들이 아닙니다. 여기 '외(monogenh,j)' 라는 말은 '본질상 아버지와 같은, 독특한, 고유한' 이란 뜻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the One and Only Son)를 뜻합니다(요 1:14).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보다 조금 낮은 분도 아닙니다. 읽은 오늘 본문 18절 중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예수님을 핍박하자,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일하시니 나도 그와 동등하게 일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요 10:30). 19절에서도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상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실 이 주장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신성모독죄로 고소를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자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임신한 마리아에게 증거하기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눅 1:32, 35). 성부 하나님 자신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와 변화산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증거했습니다(마 3:17, 17:5). 심지어 원수 마귀도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했고(막 5:7),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던 로마의 백부장교와 그의 군인들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사건을 체험하고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증거했습니다(마 27:54). 예수님의 제자였던 나다나엘도 말하기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9)라고 했으며, 베드로도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마 16:16). 한편,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와의 구별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의 양자로 표현했지요(롬 8:23, 9:4, 엡 1:5).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할 때(요 3:16),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만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요 14:6; 행 4:12).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외아들이라 함은 하나님의 분신, 삼위 중의 한분으로, 하나님 자신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로,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이슬람교 신자, 즉 모슬렘, 여호와의 증인들을 비롯한 많은 이단들은 그렇게 믿지를 않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불교처럼 무슨 철학 사상도 아니고, 이슬람교처럼 도덕적 계율도 아니고, 천주교처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식들에 얽매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믿습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권세, 악령들을 물리치는 권세, 죄를 용서하는 권세, 피조물과 사람들, 죽음까지도 이기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으로 믿습니다. 아니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까지 가지신 하나님의 외아들로 믿습니다(요 5:27).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 로 믿습니다.
"주(ku,rioj)" 라는 말은 신약에만 600번 이상 나오는 말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한 신앙고백의 표현입니다. 구약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LXX) 역에서는 하나님 자신을 뜻한 여호와(YHWH, or Adonai)를 '주'로 번역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몸을 확인했던 의심많던 제자 도마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하)고 사도 베드로는 말하였던 것입니다.
즉 "주(Lord)"라 함은 절대적인 소유권을 가진 분을 뜻합니다. 포도원의 주인(마 21:33 이하), 나귀새끼의 주인(눅 19:33-34)의 경우처럼, 예수님은 나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소유주란 뜻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입니다. 오늘 본문의 20-22절을 보십시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를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하셨고,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를 때에 우리는 이런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가 되시고, 우리가 그의 종이 된 더 큰 이유는 이러한 권세를 가진 주님께서 우리를 그의 피로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 6:19-20, 벧전 1:19, 계 5:9). 그의 피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된 우리 편에서는 절대적인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미국의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이었습니다. 링컨은 한 불쌍한 노예소녀를 샀습니다. 그 소녀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러나, 링컨에게 팔려온 노예소녀는 그 고귀한 뜻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링컨은 그 소녀에게 자유증명서를 건네 주었습니다. 링컨은 그 노예소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배권이 있었습니다. 그녀를 돈을 지불하고 샀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녀에게 자유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된 후에도 링컨을 위해서 한평생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링컨이 베푼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노예의 몸으로 묶여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의 몸으로 링컨의 사랑의 끈에 묶여 즐겁게 헌신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그녀에게는 두 주인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께서 죄의 노예가 되어 얽매어 살던 우리를 그 아들 예수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사셔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음대로 살 수도 있지만 그 사랑에, 은혜에 감격하여 주를 위하여 한평생 즐겁게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상 많은 성도들이 우상숭배의 강요에서 핍박을 받더라도 굽히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섬기었던 것입니다. 다른 주는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에 반대함으로 12사도를 비롯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위에서, 기름 끓는 가마 안에서,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제물로, 혹은 불에 타 순교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에 일본 소화 임금을 천조대신, 즉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신자들이 우리가 경배해야 할 대상은 오로지 주님 밖에 없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1)고 했습니다. 정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해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님, 삶의 주인으로 믿습니까? 우리 교회의 주인으로 믿습니까? 그리하여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하십니까?

셋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예수"란 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름입니다(마 1:21). 그 뜻은 구약의 히브리어 "여호수아"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들의 영혼 구원에 영원히 헌신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히브리 말의 구원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갖고 있는 깊은 의미는 '방 혹은 공간'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구원이 주는 개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공간을 준다,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우리가 종이라고 해서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하나님의 원래 창조 목적대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모든 죄로부터의 사함의 은혜입니다.
사실 이 예수라는 이름만큼 널리 알려진 이름은 다시 없습니다. 이 이름만큼 미움을 당한 이름도 없습니다. 또, 대대로 이 이름만큼 영원한 사랑과 지지를 받은 이름도 또다시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는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그의 직무가, 직책이 '그리스도' 입니다
그리스도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세월 기다리던 히브리어의 구세주, "메시아(Messiah)"의 헬라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 기름은 선지자(예언자)에게 부어졌습니다. 제사장에게 부어졌습니다. 또, 이스라엘 왕에게 부어졌습니다. 1)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람을 향하여 찾아 오시는데 그 계시를 선지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로 받은 말씀을 가지고 사람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때로는 경책하시고, 때로는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2) 제사장의 역할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보 사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사람에게로 인도하는 것이었다면, 제사장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죄라는 장애물을 없애고, 그들로 하여금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도록 인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3) 왕의 역할은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지도하고 인도하는 목자로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다스리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라 함은 예수께서 선지자(예언자)로, 대제사장으로, 왕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사역자로 오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눅 13:33, 히 1:1-3, 10:12). 쉽게 설명하면 주님께서 '내가 바로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자로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로,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고, 지도하며 다스리는 자로서 2000여년 전에 이 땅에 왔고 지금도 하나님과 함께 있어 그 일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선지자로 죄를 지적하셔서 회개케 하시고, 때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힘을 주시고, 대제사장으로 속죄제물이 되셔서 기꺼이 우리가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오늘도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며(롬 8:34), 만왕의 왕으로 우리를 통치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을 이러한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시고 경책하시고, 또한 위로하시며, 그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우리의 영적인 왕으로서 다스리시고, 장차 진정한 왕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메시아)로 믿습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어떻게 믿습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로, 우리의 주로,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본문 23절에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지요. 기독교가 이 세상의 사람이 만든 다른 종교와 크게 다른 점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이 땅에 와서 자신을 분명히 계시하심으로 우리는 구체적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섬기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믿음을 주위 사람에게 나타내면 핍박을 엄청 받았기에 서로 물고기 사인으로 주 안에서 형제, 자매인 것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물고기(ivcquj)는 헬라어로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구세주(Savior)의 첫 글자입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동일한 신앙고백으로 확인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온 세상의 주로, 여러분 개인의 주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의 예수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신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예수님이 주전(B.C.)과 주후(A.D.)로 세상역사를 바꾸어 놓는 분기점이 되셨듯이, 우리 개인도 삶의 분기점이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성도마다 주전 옛 사람 곧 불신앙의 삶, 멸망의 삶이 있고 주후 새 사람 곧 신앙의 삶, 영생의 삶이 있습니다. 아직도 확실히 그렇게 믿지 못하시는 분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리면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계 3:20).
이미 그렇게 확실하게 믿으시는 분들은 오늘 우리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뜻을 분명히 다시금 깨달은 것처럼, 우리 '주님'에게 감사하며,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놀라운 예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고 위로하실 줄 믿습니다. 또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신다면 우리도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찬양하며, 제사장으로서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며, 왕의 권세로서 이 세상의 사탄, 마귀와 싸우며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게 됩니다. 할렐루야!
어느 독일의 무명 화가의 글을 소개합니다.

<한 외로운 사람의 생애>

여기 어느 한 외로운 사람의 삶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시골,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 어느 이름 없는 여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삼십세가 될 때까지 그의 아버지의 목공 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는 가정을 이루지도 않았고, 그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한 권의 책을 쓴 일도 없고, 사무실을 가진 적도 없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공부한 일도, 화려한 큰 도시에서 자신의 사업을 벌린 적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부터 이 백마일 이상 여행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는 세상이 말하는 위인이나 영웅들이 이루어 놓은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병들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는 그 자신밖에는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전통적 썩은 종교 틀에 미움을 사고 배척을 받게 되자,
그를 따르던 친구들도, 그가 사랑했던 제자들마저도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들 중 하나는 그를 배반하여 그를 죽이려는 종교지도자 대적자들의 손에 그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굴욕적인 심판대 위에 섰습니다.
마침내 두 강도가 처형될 때, 그는 그들 사이에서 두 손에 못 박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가 처형되던 날, 이 땅에 살면서 몸에 지녔던 유일한 소유물까지 처형자들의 도박감으로 넘겨졌습니다. 그것은 그의 유일한 겉옷이었습니다.
그의 시체는 그를 동정했던 사람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빈 무덤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처형되어 죽은지 2000여년이 지난 오늘, 그는 그의 이야기 "His Story는 HISTORY"가 되어
인류역사의 중심이 되었으며, 모든 문화, 문명의 진보의 선두에 서 있습니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모든 육, 해, 공군의 군대를 다 합한다 할지라도, 인류역사의 모든 왕들의
권세를 다 합한다 할지라도, 모든 국회의원의 권력을 다 합한다 할지라도, 이 한사람의 고독한 생애가 끼친 영향을 넘보지 못합니다.

그는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세계의 모든 도서관마다 그에 관하여 쓴 책들은 다 보관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작곡을 해본 일이 없으나, 세계 작곡가들의 주제가 되었으며, 위대했던 작곡가는 그를 위해
노래를 지어 바치고 있습니다.

그는 학교를 세워 본 일이 없지만, 세계 모든 학교의 학생 수를 다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날마다 그를 배우며 따르고 있습니다.
그는 군대를 조직하거나 병사를 모집한 적도 없지만, 인류사의 어느 왕, 어느 황제의 군대보다
더 많은 군대가 그를 위해 충성과 열정과 사랑과 목숨을 바치고 싶어합니다.
그는 의학공부를 한 적이 없지만, 어느 의사 보다 많은 환자를 고쳐주었고,
상한 마음까지도 그 앞에 가면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불우했던 모든 사람들을 그가 죽기까지 사랑했습니다.

로마제국이 그를 꺾지 못했고, 죽음까지도 그를 무덤 속에 가두어 둘 수 없었던 사람.
인류의 위대한 정치가도 그 이름이 왔다가 사라지고, 위대한 과학자, 철학자, 사상가,
신학자들의 이름도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이름은 날로 날로 퍼지고, 더욱 유명해 지고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 사건은 2000여년의 세월이 지나 갔으나, 그는 아직도 우리들 가운데
더욱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사람처럼 살았던 하나님, 하나님처럼 살았던 사람.

그는, 곧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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