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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4-22 (월) 09:25
분 류 절기설교
ㆍ조회: 74    
우리가 믿는 것(4) (고전 15:3-8)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살펴보는 가운데, 지난 주일에 우리는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님를 믿고, 로마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주님, 그리고 장차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주님을 믿고 있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고백합니다. 우리를 부활절로, 승천일로, 그리고 종말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장사 지낸바 되었다 함은 예수께서 확실히 죽으셨음을, 숨을 거두셨음을 증거하는 겁니다. 그 증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옆구리를 창에 찔린 후 물과 피가 쏟아진 사실(요 19:32-34)과 빌라도가 예수님 죽은 사실을 백부장교를 친히 불러 확인한 것(막 15:44),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주님의 시신이 장사된 일입니다(요 19:40). 또, 로마의 군병들이 예수 무덤을 파수한 일입니다(마 27:62-66). 이러한 성경말씀은 자유주의 신학자나 불신자들이 주장하는 예수님이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을 뿐이라든지, 그를 사랑하던 제자들이 시체를 몰래 가져갔다 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를 알려 줍니다.
그렇게 분명히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구속역사에 있어서 그 절정입니다. 요나의 표적을 예로 주님 스스로 예언하신 대로(마 12:39-40) 주님의 부활은 그 자신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였습니다(요 11:25, 롬 1:4).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유명한 변증학 교수였던 Van Til은 ‘기독교에서 부활과 같은 기적을 빼면 기독교 전체를 없애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부활은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빈 무덤(눅 24:30, 요 20:6-8)이 증거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와 같이 부활 후 직접 나타나 보이심과 40일간 세상에 계셨음이 증거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체험적인 증거(행 4:17-30), 천사들의 증거(눅 24:4-6), 바울 자신의 증거(고전 15:8), 그리고 초대교회의 탄생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잘 나타나듯이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 사도들의 주된 메시지는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그 진리를 믿는 성도들이 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의 세력 앞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마호메트도 63세에 죽고, 공자도, 맹자도, 석가도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심으로, 사망 권세의 아래 있는 피조물이 아니라 만유의 창조주로서 권위와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죽음을 이기신 유일하신 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우리를 위하여 고통 당하시고 버림받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더 잘 알게 하였습니다. 옛날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키셨던 하나님, 예수님을 죽은 지 사흘 만에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믿고 예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믿는 자의 내세 소망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고전 15:20-24). 죽음이 우리를 이길 수가 없음을,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새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된 성도들은 죄에 대하여는 장사 지낸바 되었고, 의에 대하여 산다고 하였습니다(롬 6:11). 물론 기억해야 할 것은 고통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을 받으려면 이 땅에서 주님처럼 고난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 살더라도 세상을 때때로 경멸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세상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훗날 주님과 함께 할 영원한 세상과 비교할 때, 이 세상이 우리를 사로잡아 죄에 복종시키려고 하려고 한다면 경멸해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말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단순히 생명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니라 하나님이 훗날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게 하실 한 과정으로 깨닫고 믿는 것이 내세의 소망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부활 후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사명을 주시고, 저들을 축복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시니 . . . "(눅 24:5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자신이 하늘로 올리워 가실 것을 자주 예언하셨습니다(요 6:62, 14:2, 12, 16:5, 10, 17). 사도 바울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록하고 있고(엡 1:20, 딤전 3:16), 히브리서 저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히 1:3, 4:14). 사도행전에는 더욱 명백히 많은 사람 가운데서 올리워 가심을 밝히고 있습니다(행 1:9). 예언하신 대로 승천하신 것입니다. 승천은 불신자들의 생각처럼 그를 따르던 제자들의 착각이나 환상이 아닙니다. 올라가실 때에 많은 사람이 자세히 보았고, 주님과 함께 있던 천사들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본 그대로 오신다고 했습니다(행 1:10-11).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의 의의는 하늘에 우리의 본향이 실제로 있음을 가르치시며 장차 우리가 영원히 있을 곳을 예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요 14:1-3). 창세전에 인간을 향한 구속사역의 완성을 뜻합니다. 칼빈은 ‘예수님의 승천은 그가 진정 왕으로서의 통치를 시작한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심으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다고 한 약속이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그 권세가 하늘과 땅을 초월하여 널리 퍼지고 전파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승천은 주님이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세세토록 살아계심을 나타내며 우리에게 천국을 향한 소망을 더욱 확신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 삶임을 말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따로 있음을 말합니다. 불신자들이야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으니, 내일은 없다고 믿으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며 살지 몰라도 사도 바울처럼(고전 15:32)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자들은 '천국은 좋은데 이 세상도 좀 즐겨야 하니 죽음은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타향을 본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우리는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시편 기자의 예언(시 110:1)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주님의 반복된 말씀(마 22:44, 막 12:36, 눅 22:69)처럼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순교자, 스데반 집사도 숨을 거두면서 최후에 증거하였으며(행 7:52), 히브리서 기자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중거했습니다(히 1:3, 12:2).
오른편이라 함은 존엄과 권위의 자리요 통치하는 자리를 의미합니다(벧전 3:22). 예수님의 무궁한 왕권을 의미하며 존귀와 심판 권세를 행사함을 뜻합니다.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또한 우리 교회를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고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거기서도 제사장의 직무인 성도들을 향한 중보 기도와 필요한 복을 내리시고 계심을 말합니다(롬 8:34, 히 7:25). 그리고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지금도 필요에 따라 충만하게 부어주십니다. 은사와 함께 주십니다. 이유는 연약한 우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어떤 어려움에서도 건져 주시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끊임없이 우리를 도와 주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를 믿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진리입니다. 이 위대한 종말의 진리는 성경에 무려 1,518번이 나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증거로부터(요 14:1-3), 성부 하나님과 천사들을 위시하여 모든 성경에 가득한 마지막 날에 대한 진리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약속입니다. "내가 실로 속히 오리라 "(계 22:20). 이 진리가 교회들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다시 오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택하신 성도들의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서 입니다(눅 21:28). 죄와 상관이 없는 영화로운 몸으로 변케 하셔서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며,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둘째,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데살후 1:7-8). 백보좌 심판입니다(계 20:11-12). 산 자와 죽은 자, 영생할 자와 영벌을 받을 자를 구분하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심판은 이 세상 종말과 관계됩니다. 예수님 재림 시에 살아있는 경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 육체가 영화로운 몸으로 홀현히 변화하여 주님과 함께 영광 중에 이를 것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산 채로 영원한 음부에 떨어질 것입니다(데살전 4:17, 빌 3:21). 주님 재림 전에 이미 무덤에 이른 자들의 경우 믿었던 자는 생명의 부활로, 믿지 않았던 자는 사망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요 5:28-29, 고전 15:50-54, 데살전 4:15-18). 한번 죽는 것은 아담의 원죄 이래 사람에게 정해진 법칙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불변의 법칙입니다(히 9:27). 셋째, 공의와 평화가 가득찬 주의 영원한 통치를 확립하기 위해서 재림하십니다(단 7:13-14). 악한 사탄, 마귀는 완전히 없애 버리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완전한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상 주시기 위하여 오십니다(고후 5:9-10). 성도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이 세상에서 잘못한 것을 벌하기 보다, 착하고 충성되었던 그들에게 상을 주고, 그렇지 못했던 이들은 그 자리에서 상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요점은, 이 땅에서 신실하게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았던 성도들을 상 주시기 위하여 다시 오십니다. 우리를 온전히 아시는 주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주실 정도로 헌신되신 주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날 교회들의 강단에서 천국이니 내세이니, 영생과 영벌, 심판과 같은 주제로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자들도 그런 설교를 싫어하고, 축복설교나 도덕설교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교회의 타락을 설명하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내세에 대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신앙이 없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은 마치 그런 세계는 없는 것 모양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지옥이 없는 것같이 정욕을 따라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잘 죽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주님 만나서 감격적인 눈물을 흘리며, '내가 세상에서 이렇게 주님 위하여 고생하며 살다 왔습니다' 라는 고백을 드리리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17세기 경건한 설교자 Jeremy Taylor는 그의 저서 "거룩한 죽음의 규칙과 실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훌륭하고 행복한 죽음을 바라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안일하며 줏대없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히려 엄숙하고 거룩하게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사려 깊은 행동을 따라 살며, 세상에 대하여 투쟁적이고 부지런하며 늘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까? 여러분들도 부활하실 것을 믿습니까? 사망이 우리를 이길 수 없음을 믿습니까? 하늘로 오르신 주님처럼 천국으로 향하는 소망이 확실하십니까?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이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습니까?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주님을 확실히 믿습니까?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물론, 저와 여러분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그 권세를 인정하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더욱 주님 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야 될 이유를 발견하십니까?
오늘 주신 말씀들이, 우리가 고백하는 이러한 기본적 교리들이 여러분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이 땅에서 살지만 하늘의 진리를 붙잡고 저 천국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모든 죄와 탐심의 출발은 내세를 현 세상에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은 이 세상은 순례의 여정 길이지 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종착역의 소망이 있기에 이 세상의 즐거움을 기꺼이 버릴 수 있지요.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지요. 고린도전서 마지막 57-58절에서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시는 권면을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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