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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4-29 (월) 05:3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56    
우리가 믿는 것(5) (요 15:26-16:13)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 가가 중요하기에 그 동안 살펴본 사도신경의 내용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창조사역,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사역이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성령 하나님과 그의 사역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은 "성령을 믿사오며" 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바로 전 어느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본을 보이시며, 가롯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예언하시고, 또 베드로가 저를 세 번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후(요 13장), 주옥 같은 설교를 14장과 15장에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며 그 성령이 하실 일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에 사용된 헬라어 원어 성령(para,klhtoj,)의 원래 뜻은 "위로자", "돕는자" 혹은 "변호인"의 의미로 법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우리말 번역의 "보혜사(保惠師)" 즉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 번역이 잘된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서 사용된 성령을 뜻하는 이름은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신(창 1:2), 여호와의 신(사 11:2), 주의 성신(사 63:10), 대언자(마 10:20), 진리의 영(요 14:17), 성결의 영(롬 1:4), 그리스도의 영(롬 8:9), 하나님의 영(롬 8:14), 양자의 영(롬 8:15), 주의 영(고후 3:17), 은혜의 성령(히 10:29), 영광의 영(벧전 4:14) 등 입니다.

그러면 우선, 성령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하나님 아버지(성부)로부터 옵니다. 오늘 본문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15:26) 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은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또,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 . .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6:7)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성령은 성부의 영이며 성자의 영입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을 떠날 때, 그 분 대신 자리를 차지하는 분이 성령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의 영적인 임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오늘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둘째로, 성령은 원래 성경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성령(a`gi,ou pneu,matoj, Holy Spirit)은 ‘바람(wind), 숨(breath)’ 등으로 비유되었습니다. 태초 천지창조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생령, 즉 영혼이 있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요 20:23). 오순절에 세찬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제자들이 앉은 온 집안에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행 2:2). 바람은 기운, 곧 생명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또 성령을 기름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양약처럼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약 5:14). 또, 성령을 불과 같다고 했습니다(행 2:3). 그것은 뜨거운 생명의 능력으로, 죄를, 더러움을 태우는 정결의 힘을 상징합니다. 성령은 죄에 대하여 우리들의 잘못을 시인하게 하여 소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요 16:8). 이유는 거룩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의 거룩한 삶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령은 또한 비둘기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강림하시더니 . . ."(눅 3:22) 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온유와 겸손, 사랑과 순결, 영원한 평화의 상징입니다. 성령님의 속성, 즉 성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셋째로, 성령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우리를 거듭나게(중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5)고 하셨습니다. 즉, 말씀을 상징하는 물과 성령이 아니고는 그 영혼이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구원의 보증으로 우리를 인치시고 우리 마음에 주셨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22; 엡 1:13, 4:30). 이를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행 1:5, 11:16). 그리하여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를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이 믿어지고 참맘으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자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 성령에 의하여 신앙고백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해 준다는 말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보혜사의 역할을 합니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변호하시며 도우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또 다른 보혜사"(요 14:6)라는 말로 자신도 이 땅에 계실 때에 보혜사의 역할을 하였으나(요일 2:1) 이제 부활 승천함으로 그 역할을 성령님이 하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의 역할을 합니다. 성령께서는 진리를 가르치시며 진리를 생각나게 한다고 했습니다(요 14:26). 오늘 본문에서도 성령은 진리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며, 진리를 말해주며, 장래의 일을 알려준다고 했습니다(요 16:13).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 줍니다. 속이는 거짓된 악령들을 구별해 줍니다. 진리되신 예수를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15:26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했습니다. 이 권능(power)은 바로 전도의 능력입니다. 사탄 권세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즉,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전도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성경을 기록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고 했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벧후 1:21)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시대를 향한 주님의 복음운동에 가장 중대한 성령의 결정적인 사역입니다. 성령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요 20:21).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하였듯이, 본문에서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고 하였습니다(요 16:8). 즉 신자에게는 변호인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검사로 그들의 죄를 고소합니다. 성령은 죄 곧 불신앙을 깨닫게 하여줍니다(요 16:9). 성령은 "의"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을 가르쳐 주며 세상이 맞게 될 심판을 알게 해줍니다(요 16:10-11).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 택함을 입은 자들은 회개하고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역할은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한, 치명적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충만이 받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는 성령을 이미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구세주로, 주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12:3).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14-15). 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고전 6:19)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것만으로는 능력 있는 삶, 거룩한 삶, 열매 맺는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발전소에서 전깃줄을 통해 전력을 보내어 전선에 전기가 흐르기에 Line 이 꽂아 있다 하더라도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전기 기구들처럼,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도록 부어주실 때, 우리 자신이 죽고 성령께서만 우리를 다스리시도록 내어둘 때, 온전히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할 때 성령 충만하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성도들이 성령이 충만했을 때에 큰 일들을 해냈음을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이름으로 얻는 구원을 말했습니다(행 4:9-12). 그럴 때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이 충만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행 6:10), 하나님의 영광과 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시고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행 7:55). 바울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여 사역을 감당했습니다(행 13:52).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행 6:3, 5). 성령께서 빌립을 주장하여 최초의 선교사역을 추진시켰습니다(행 8:29). 성령님은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행 10:19-20). 이렇게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교회운동의 주된 핵심이었습니다. 활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우선 모든 크고 작은 죄를 진실로 회개하고, 자신을 부인하면서, 간절히 사모하며 성령충만을 간구하고 기다리는 자는 받습니다. 사도행전 1장과 2장의 기록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 마음을 같이하여 성령의 임함을 간절히 사모하며 오직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때에 성령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있어 저희 집에 가득했습니다. 신약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성령충만을, 은혜충만을 사모하며 갈망합니까?
또, 성경을 듣고 읽고, 전할 때에 성령 충만하여 집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왔다고 했습니다(행 10:44, 11:14).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데살전 1:5)고 했습니다. 즉, 말씀에 거할 때에 성령의 충만이 임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이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또한, 겸손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의 일을 하는 자에게만 충만이 임합니다. 은혜를 더하십니다. 스데반 집사가 극심한 박해 속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주께서 바울을 쓰시려고 할 때에 성령으로 충만케 했습니다(행 9:17). 결국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일하려고 하는 자에게 계속해서 성령은 충만이 임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그 열매를 거두어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실천할 때에 성령은 충만해집니다. 참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에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보혜사께서 도와주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최근에 언제 성령의 역사를, 성령 충만을 체험하셨습니까? 기도하다가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울어본 적이 언제입니까? 혹은 성경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가슴이 뭉클하여 지며, 성령께서 주장하심을 느껴보신 적이 언제입니까? 아니면 찬송을 부르다가 눈물 때문에 더 이상 부르지 못한 경험을 한 때가 언제입니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메마른 신앙생활로, 성령의 역사를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말과 행동에 성령의 열매를 찾아보기 힘들지는 않습니까?
성령님은 이 세상에서의 주님 자신의 활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에 예수님을 대신하여 일하시는 분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구세주와 주로 믿어집니까? 성령 받으셨습니다. 이제는 성령 충만을 위해, 온전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을 위해 힘쓰셔야 합니다. 진정으로 모든 죄를 회개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함으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전도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들을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거두고 능력 있는 삶을,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갈 5:22-23).
우리는 신비스러운 기적만을 찾아 다니는 신비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신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계시고,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한 성령의 체험은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부어주시는 초자연적인 은혜입니다. 믿는 자라면 자주 이러한 체험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신비한 체험 속에, 성령과 더불어 살 때에 진정한 축복, 기쁨의 삶인 것을 기억하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 온전히 맡기고 순종하며 사는 성령 충만한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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