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2,447,924
오늘방문 : 52
어제방문 : 143
전체글등록 : 3,01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1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5-06 (월) 08:0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3    
우리가 믿는 것(6) (마 16:13-20)


지난 주일에 우리는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과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을 배웠고, 성령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성령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구원운동을 펼쳐가고 있음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거룩한 공회(교회)와 성도들이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교회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믿습니까?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첫째로, 거룩한 교회를 믿습니다.
'거룩한' 공회라고 했습니다. '거룩(holy)' 이란 말은 "구별(consecrated), 갈라 세움(set apart)"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 속한 어느 모임과는 달리 거룩하게 구별된 모임을 뜻합니다. 성도들이 어두운 세상에서 부르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하여졌음을 의미합니다. 곧, 구속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무리가 세상을 떠나 분리됨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살면서 세상의 것이 되지 않고, 주님의 것으로 존재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마치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 가서 일을 할 때에 반드시 우주복을 입고 머물다가 일을 끝낸 후에 다시 지구로 돌아 와서 우주복을 벗는 것처럼, 성도들도 지상(타향)에서 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거룩한 옷을 입고 구별 되이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가서는 완전한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구원 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으로부터 구별 되어 부름을 받고, 양육을 받고, 또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5-2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주의해야 합니다. 속된 말을 삼가야 합니다. 아무리 흥분하고 화가 나도 욕을 하면 안됩니다. 덕스러운 말과 행동이 요구됩니다.

둘째로, 우주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의 영어번역에 '거룩한 공회'를 ‘Holy Catholic Church’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곧 눈으로 볼 수 없는 범세계적인 하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원래 ‘Catholic’ 의 의미는 ‘일반적, 보편적, 우주적(universal)’ 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우주적 교회를 믿는다 함은 내용적인 의미, 질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곧 같은 기초 위에 세워진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그 기초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했습니다. 로마 천주교에서는 이 반석을 베드로 자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반석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절)라고 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을 하는 성도들 모두를 뜻하며, 더 나아가서 우리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닦아둔 것 외에 다른 터를 닦아둘 자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전 3:11)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교회의 기초요, 머리입니다. 그리고, 같은 만유의 한 아버지에게서 부르심을 받은 교회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아래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 4:5-6)고 했습니다. 또한, 같은 성례(성찬과 세례)에 참여함을 믿는 교회입니다. "같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전 12:13)고 하였고, "떡이 하나요, 많은 무리가 한 몸이니 무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7) 고 했습니다. 또, 같은 종말을 맞이하는, 소망이 같은 교회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4)고 하였습니다. 같은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함께 주님을 맞이할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적인 교회라 함은 같은 기초(예수), 같은 부르심(하나님), 같은 성령, 같은 성례, 같은 소망(천국)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결코 지상 교회에서 외적인 형태나 조직적인 기구로서 하나의 교회는 불가능합니다. 이 지상에 산재하는 각 나라와 족속 중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막론하고 차별 없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와 주(Lord)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모두 하나입니다.

셋째로, 권세(권위)있는 교회를 믿습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이 지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천국 열쇠를 받았습니다. 열쇠는 권세(권위)의 상징입니다. 주님 재림할 때까지 갖는 권세입니다. 그 권세는 '매는 것' 과 '푸는 것' 입니다. '매는 것' 은 교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 혹은 이단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푸는 것' 은 교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그 열쇠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고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하고 거리끼는 것이 됩니다(고전 1:18-25).
그러면, 어떠한 권세들입니까? 말씀 전파의 권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며, 전파하는 특권의 공동체입니다. 안으로는 택자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고, 그 영혼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보호하고, 밖으로는 말씀전파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만나게 해주는 권세를 행사합니다(계 11:3, 딤후 4:1-4).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인간과 인간이 주 안에서 형제가 되는 화목의 사역은 교회의 특권입니다(엡 2:12-22). 또 섬기는 권세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것은 예배하는 권세로 나타나는데 실로 성도만이 누리는 위대한 특권이요, 영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교회를 섬깁니다. 각종 은사를 받은 대로 섬기는,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악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세상의 악을 정죄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빛들의 모임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비취는 그 자체가 어둠, 사탄을 다스리며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권세들은 모두 영적인 것입니다. 물리적인 권력이나 물질이 결코 아닙니다. 본문 20절에서도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아무에게도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그 때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영적인 메시아보다 육적인 메시아였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억압에서 해방시켜 자신들의 나라를 이루며 명예를 되찾아줄 구세주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모여 함께 교제하는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란 말의 성경 헬라어 원어 evkklhsia, 는 "밖에서 불러 모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구약의 경우에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모인 회중을 의미합니다. 즉,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밖에서, 세상에서 그의 음성을 듣게 하기 위하여 불러낸 자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음성을 듣고 믿는 그들에게는 새로운 이름들이 붙여졌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성도로, 제자로, 신자로, 형제로, 종으로,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녀로 불리어졌습니다. 또, 모임으로서 하나님의 양 떼, 믿음의 권속, 가족, 하나님의 집, 그리스도의 몸, 새 이스라엘, 진리와 기둥의 터, 신령한 큰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 자체가 세상과 구별된 새로운 하나의 가족임을 뜻합니다.
이런 교회가 가진 생명은 ‘성령이 함께하심’ 입니다. 또한, 성령이 기록한 말씀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성령과 말씀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맺는 성도 간의 교제입니다. 원래 교제(koinw,nia, fellowship) 란 ‘공통점’ ‘함께함’ ‘사귐’ 등을 뜻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에 사업상 협력, 결혼의 경우에 연합, 사회생활의 공동체, 우정의 관계 등에 자주 사용된 말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사귐, 더 나아가 행동의 사귐, 실제 활동에 있어서 연합, 그리고 은혜 받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성도가 교통(교제)하는 것은 먼저 아버지 하나님과의 사귐을 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에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약 2:23)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다"(요일 1:3)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도 더 가까운 부자관계를 뜻했습니다. 또,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뜻합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고전 1:9)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하였습니다(요 15:14-15). 또한 성령님과 사귐을 뜻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 13:13)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신앙을 고백하는 것, 기도, 찬송, 감사하는 것, 의롭게 사는 것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에 성령 체험을 한 후에 사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침 받고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알기를 위했던 것입니다(행 2:42). 그리고는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순전한 마음으로 예배와 찬양을,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삼위의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는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간에 교제란 영적으로, 마음으로 함께함을, 나눔을 뜻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행 2:46) 교제한 초대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함께 가르침을 받고, 함께 성찬에 참여하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함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함께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나누었습니다. 바로 이것을 가리켜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권면이나, 사랑의 어떤 일이나, 성령의 어떤 교제나 긍휼과 자비가 있을 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마음을 품습니다(빌 2:1-2). 주의 떡과 잔에 함께 참여합니다(행 2:46, 고전 12:12-20). 같은 목적을 향하여 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 마음은 주 안에서 중생함을 받은 새 사람의 마음입니다. 믿는 일에, 아는 일에 함께 합니다(엡 4:13). 또한, 실질적으로 그런 마음으로 행동을 함께함을 뜻합니다. 초대교회는 모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는 데에 행동을 같이 했습니다.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일에 일치입니다. 나누는 삶에, 사랑의 표현에 일치했습니다. 그들은 또 예수 이름 때문에 박해 받는 일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영적전쟁에 있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저들은 그 고난에 함께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행 12:5). 함께 기도하며, 함께 싸우며, 함께 기뻐했습니다(빌 2:25-30). 즉, 저들은 말로만 성도들의 교제를,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서로 실천하는 사랑의 교제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핍박과 죽음이라도 저들은 함께 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았을 때에도 부끄러워 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영예롭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마침내 천국을 유업으로 함께 받는 찬란한 미래의 소망까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신앙생활 잘 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주후 3세기 초대교부 Cyprianus 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진다’라고 하였는데,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이 뜻을 되새겼습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인들을 낳고 양육한다는 의미에서 성도의 어머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성도의 삶에 중요한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용서 받은 죄인들이 모여, 구별된 삶을 살려고 애쓰는 교회입니다. 우주적으로 하나된 교회, 세상에서 천국 열쇠를 받아 권세를 행사하는 교회, 거룩한 교제가 있는 유기체적인 공동체인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교제는 곧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도 간의 교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마음의 하나됨이 그 출발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말과 행동이 일치함으로 증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은혜 체험도 함께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마음이 하나이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에 모든 행동으로 하나고, 그 결과로 오는 모든 영광이나, 괴로움도 함께하는 여기에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 집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수를 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이 그것을 보고 자신들도 함께 하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사귐이 날마다 있기를 바랍니다. 모이기를 힘써 말씀을 받고, 찬양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기도에 힘쓰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 간의 참다운 사랑의 교제, 즉 마음을 같이하고 삶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는 우리가 됩시다. 한 마디 따뜻한 말의 위로와 격려를 합시다. 또한 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교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쓰며 불쌍히 여기며 기도해주는 우리가 됩시다. 잘못을 지적했으면 그 다음에 감싸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교회다운 교회, 멋진 교회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먼저 앞서 간 수많은 증인들이 하늘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히 12:1). 이렇게 교회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주님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96 아버지들에게(잠 13:1, 엡 6:4) 한태일 목사 2019-06-17 2
995 주일설교 성령님께서는(요 16:7-15) 한태일 목사 2019-06-10 13
994 수요설교 은혜의 직분(딤전 2:12-17) 한태일 목사 2019-06-07 8
993 주일설교 우리가 믿는 것 (8) (요 11:25-27) 한태일 목사 2019-06-03 13
992 주일설교 우리가 믿는 것 (7) (눅 24:46-48) 한태일 목사 2019-05-27 19
991 수요설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창 39:1-23) 한태일 목사 2019-05-24 14
990 주일설교 어머니의 믿음(딤후 1:3-5) 한태일 목사 2019-05-13 38
989 주일설교 우리가 믿는 것(6) (마 16:13-20) 한태일 목사 2019-05-06 23
988 수요설교 사랑의 징계(데살후 3:6-18) 한태일 목사 2019-05-02 32
987 주일설교 우리가 믿는 것(5) (요 15:26-16:13) 한태일 목사 2019-04-29 44
986 절기설교 우리가 믿는 것(4) (고전 15:3-8) 한태일 목사 2019-04-22 48
985 주일설교 우리가 믿는 것 (3) (마 27:26-36) 한태일 목사 2019-04-15 35
984 주일설교 우리가 믿는 것(2) (요 5:16-23) 한태일 목사 2019-04-08 56
983 수요설교 사역자의 바램(데살후 3:1-5) 한태일 목사 2019-04-05 33
982 주일설교 우리가 믿는 것(1) (계 4:8-11) 한태일 목사 2019-04-01 52
981 주일설교 중보기도(딤전 2:1-2) 한태일 목사 2019-03-25 47
1234567891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