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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7-12 (금) 01:1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918    
교회 질서를 위하여 (딤전 2:8-15)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주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복을 나누어주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죄인들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4절).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교회의 질서, 예배의 질서를 위하여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역사의 역할을 설명합니다. 우선 남자들에게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8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남자들’은 인간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고, 구체적으로 남성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 남자 성도들은 분노하거나 혈기를 부리며 다투지 말고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앞 문맥에서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면서 이유는 성도들이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해야 복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2절). 전도대상자들을 생각하고 교회의 남자들이 효과적인 기도를 해야 하는데 화를 내고 다투어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을 내려놓고 다른 성도들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거룩하도록 힘써야 전도가 되지, 믿어보려고 교회에 왔다가 남자들이 화를 내고 다툰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원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부터 하라는 뜻입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항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들 주님께 항복하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 곧 거룩한 무리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면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됨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분입니다.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성도들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맺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여자들에게 교훈합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하니라”(9-10절)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경건한 태도를 요구합니다. 사치스러운 옷이나 비싼 보석으로 치장하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오면서 자기 옷이나 보석을 자랑하면서 자기를 과시하며 나타내려고 한다면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주님이 드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일부러 추한 옷이나 아무렇게 보기 싫은 옷을 입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아예 귀걸이나 목걸이를 보석으로 치장하면 안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싼 옷이 아니라 아담한 옷, 단정하고 정숙한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남자들이 쉽게 방해를 받거나 유혹을 받는 옷차림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여 치장하라는 뜻입니다. 부담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외적인 것이 아니라 속사람의 아름다운 성품으로, 선행으로 치장하라고 합니다. 여기 ‘염치(decency)’는 말이나 행동에 절제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절(propriety)’는 예의가 바르고 정숙함과 순결을 뜻합니다. 이런 인격으로 단장하여 사람들이 자신 안에 거하시는 주님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에게 당연히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아내들에게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교회에서의 영적 리더십을 말하고 있습니다(11-15절). 교회의 질서를 위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자유주의자들로 인하여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입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11-12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종용하다’는 단어는 평화를 좋아하기에 논쟁하지 않고 조용하게 있는 것을 뜻합니다. 즉 영적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예의 바르게 잠잠히 배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권위를 남자에게 주었으니 기꺼이 그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든지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화평을 구하고 차분히 자신을 부복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결코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다. 얼마든지 여자가 더 똑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나 가정에서의 역할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여자가 남자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교회나 가정에서는 아닙니다(엡 5:22-33, 골 3:18-19, 벧전 3:1-7).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거나, 다스리지 못합니다. 위계질서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 내에 있어야 할 질서와 존경과 좋은 평판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논리를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인간에게 임한 원죄의 문제로 증명합니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13-14절)고 하였습니다. 태초에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기 전부터 위계질서는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하실 때에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게 하시면서, 남자를 리더로 여자는 돕는 자로 그 역할을 다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고린도교회에 설명하기를 “나는 너희가 알기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고 하였고,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고전 11:8-9)고 하였습니다.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고, 여자는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고 난 후에 남자들이 사랑으로 섬기는 리더의 권위를 남용하여 학대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돕고자 하는 자발적인 순종이 마지못한 추종으로 바뀌게 되거나 불복종하며 자신이 리더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질서가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이 세상에서 여성의 인권이 무너지다 보니, 그것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다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여성인권운동이 큰 영향을 끼치다 보니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교회 안에서도 여자가 리더가 되어서 남자를 가르치고 다스릴 수 있다고 하면서 지도자들이 되는 교회도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성경의 가르침과는 위배됩니다. 복음서나 서신서에 일관되게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남자나 여자나 다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시대에 여자들을 돌보시고 가르치시며 고치셨습니다. 서신서들도 인간은 누구나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였습니다(갈 3:26-29). 그러므로 사실 기독교 역사상 참된 교회 안에서는 질서를 지키면서도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했습니다. 여자들도 얼마든지 교사로 수고하면서 청소년이나 유년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쳐 왔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년 남자들을 가르치거나 다스릴 수 없습니다. 드보라 사사도 당시에 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만한 남자 사사가 없어서 드보라를 사용하였지만, 자신이 나서지 않고 바락 장군을 앞세워 가나안 왕 야빈과 시스라 군대를 물리쳤습니다(삿 4장).
또 어떤 분은 이 문제를 문화의 차이로 치부하는 분도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문화는 여자가 그런 위치가 아니어서 그랬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문화로 풀고, 상황화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성경의 권위가 사라집니다. 예를 들면, 동성애 문제도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오늘날 동성애도 죄가 아닌 것입니다. 옛날에는 몰라서 그랬다. 이제는 동성애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한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인정해야 한다. 남성,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성, 양성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 사탄 마귀의 궤계입니다. 성경은 1세기에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성경이 그렇다 하면 그런 것이고, 아니라 하면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1세기의 교회 안의 질서문제를 태초에 천지창조 때의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풀고 있습니다.
한편, 14절 말씀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잘못하면 아담은 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가정의 리더로서 아담의 죄가 더 큽니다. 원죄를 모두 하와 탓으로 돌리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바울의 요점은 하와가 먼저 뱀에게 유혹을 당하여 죄를 범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교회 안에 지도자의 권위를 무시하고 거짓과 혼란, 방종을 조장하는 여자들에 대한 염려에서 한 말씀입니다. 첫 여자 하와가 먼저 죄를 지은 것을 기억하고, 여자들은 조용히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여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평안하도록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15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영원한 영혼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를 낳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한다, 치료한다, 건진다, 자유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는 여자들이 아기를 낳고 그 훌륭한 믿음의 자손으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본을 보임으로 영적으로 믿음의 자손들을 낳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생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현숙한 여인들이(잠 31장) 교회를 어려움에서 건지고, 치유하고, 자유하게 합니다. 사실 기독교 교회 역사를 보면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의 여인들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흥된 적이 너무 많습니다. 조용히, 묵묵히, 참고 인내하며 순종함으로, 단정하고 정숙한 여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부흥을 경험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교회나 가정이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한 대로 질서가 유지되려면 각자가 그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잘 감당해야 합니다. 분명히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다릅니다. 남자는 영적인 리더로서 책임이 막중합니다. 쉽게 화를 내거나 다투면 안됩니다. 화평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겸손히 자신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영적 리더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을 내리고, 사랑으로 다스리고 섬겨야 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적 리더십에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듯이 말입니다. 겉으로 치장하는 것보다 속마음, 인격을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으로 치장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적 자손들이 그 아름다운 인격에 감동을 받고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살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영적 지도자들과 성숙한 믿음의 여인들이 각각 그 맡은 바 역할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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