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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7-29 (월) 08:4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36    
병을 고치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주님(눅 4:38-44)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분입니까? 성경에서 계시하는 분입니까?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계시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이 계시된 이스라엘의 메시아임을, 왕임을 나타내고 있고, 마가는 주로 이방인들, 특히 로마인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이 고난의 종으로 오심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오셔서 그의 생명을 주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막 10:45). 누가는 예수님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인자(Son of Man)로 오셔서 인간의 필요를 채우시며 소망이 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 보다 훨씬 후에 기록된 것으로 그 부록과도 같이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요 20:31).

그렇기 때문에 어느 복음서보다도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며, 그 필요를 채워주시는 사건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지난 주일에 살펴본 것처럼 인간에게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훼방하는 귀신들을 쫓아 내십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 권세와 능력에 복종할 수 밖에 없기에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지각색 병도 고쳐주십니다. 도움이 필요한 인간들을 향한 사랑, 열정이 넘치십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38-39절)고 하였습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나가셔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회당뿐만 아니라 각 가정을 심방하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아마 시몬 베드로의 가정에 도움이 필요한 줄 아시고 들렀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은혜입니다.
우리 주님은 중보기도를 간과하지 않습니다. 들으십니다.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고통 당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하여 중보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가 다 응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그 뜻에 따라서 응답하십니다.
사람들의 간구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 가까이 서십니다(39절). 하나님의 영광이 죄인에게, 특별히 고통 중에 있는 죄인을 향해 가까이 다가서신 것입니다. 이제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병이어서 고열로 고통 중인지 모르나 그 병을 꾸짖으십니다.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병이 떠났습니다. 낫게 되었습니다. 열병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은 악한 영들을 쫓아내며, 그 악한 영들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오는 모든 고통도 쫓아냅니다. 베드로의 장모뿐만 아닙니다. “해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40절)고 하였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만 아니라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기적에 대하여 살펴보면 그 특징들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안수하심으로, 만지심으로 고치셨습니다. 그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그 능력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병자는 즉각 고침을 받았습니다. 천천히 고쳐진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고쳐졌습니다. 부분적으로 고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금새 일어나 수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고 다시 병들었다는 적은 없습니다. 또 40절에 의하면 누구는 고치고 누구는 못 고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 고치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 무리들은 거의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일일이 모인 모든 병자들에게 안수하시면서 고치셨습니다. 오늘날 신유의 은사가 있다는 분들이 병을 고친 것과는 무언가 다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면 예수님처럼 고쳐야 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때의 사도들처럼 말입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말씀으로, 안수함으로 예수님처럼 병을 고쳤습니다(행 9:34; 28:8). 안수함으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번에 완전히 고쳤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그 병이 다시 생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신 후에 각지각색 병들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우리 말에는 40절과 41절이 연결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두 문장이 끊어져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줄 앎이러라”(41절)고 하였습니다. 앞 단락의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듯이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니, 그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머리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존중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꾸짖었습니다. 그런 말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진실로 믿지도 않으면서 입으로 고백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귀신들의 증언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누가는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42절)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에서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해질 때부터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나서 잠시 잠을 청하신 후에 날이 밝자 한적한 곳을 찾아 새벽기도를 하십니다. 홀로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교제를 나누십니다. 예수님도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기도 없이는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해야 할까요?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일이 올바로 되게, 사역이 가능하게 합니다. 교회의 어떤 사역도 기도 없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기도 없이 하면 오히려 마귀가, 악한 영이 역사를 합니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자기 뜻대로 열심을 내면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게 합니다. 교인들 사이에 다툼과 분란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든지 반드시 기도하고 하셔야 합니다. 중요한 일은 더 오래, 더 많이 기도하고 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머물게 하려 합니다(42절하). 어제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서, 저녁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욕심은 계속 예수님이 그 동네에 머물면서 베푸시는 능력을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스케줄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큰 박수소리가 나는 곳, 놀라운 결과가 있는 곳에만 머물기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과 박수를 받으며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바로 믿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로서 죄를 사하시며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메시아로만 원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들과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43-44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람들이 소리치며 기적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나갔습니다. 복음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어느 한 지역에게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각색 병을 고침과 귀신들을 쫓아내며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보고 듣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기회를 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잠시 머물렀던 갈릴리 외에 유대 전역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아니 이방인들에게도 전하기 원하셔서 사마리아 지역까지 가셨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그러했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주님의 사랑과 그 열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는지 잘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쉽게 병들어 아프고, 상처 받는 존재인지 아십니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부분이 약해지고 노쇠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실 뿐만 아니라 치유해주시기 원하십니다. 돕기 원하십니다. 마치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의 필요를 알고 도와주려고 하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죄인들을 위하셨습니다. 그 몸도 죄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자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만나주셨습니다. 고쳐주셨습니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예수님께서 모든 가지각색 병들을 고치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당시와는 다르게 역사하십니다. 교우들이 합심하여 병 고침을 위하여 기도하면 역사하십니다. 일반은총인 의술을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약을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 5:14-15)고 하였습니다. 여기 ‘장로들’은 오늘날 목사와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주의 이름에 권세와 능력이 있으니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름을 바르며’라고 한 것은 당시 약으로 쓰이던 감람유(olive oil)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은총인 의술이나 약을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사용하십니다. 물론 때로는 그런 것 사용하지 않고 고치실 수도 있으십니다.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그 섭리 아래서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언제나 고쳐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선하신 뜻 안에서 우리는 잘 모르지만 무슨 일을 하시려고 고쳐주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더 큰 일을 위하여,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말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신적인, 영적인 병은 더욱 기도가 필요합니다. 악한 영의 장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육체적인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신적인, 영적인 병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에 하시든지, 밤에 하시든지 기도해야 합니다. 모임에 빠지지 말고 함께 하여 합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일일이 죄인들의 병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라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그런 열정, 사랑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과거에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았다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다면 예수님처럼 형제, 자매들을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의 장모도 고침을 받고서 금방 거기 모인 사람들의 수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섬겼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당연히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고 하였고, 이어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라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믿음이 작아서 목숨을 다해 사랑하지 못한다면 실제로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어야 정말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 형제, 자매가 도움이 필요한데 모른척 한다면 내가 정말 형제, 자매가 아니지요. 형제, 자매가 아프다는데 ‘나 몰라라’ 한다면 아닌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더 나아가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조차 사랑의 손길을 펴서,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 성령님의 권세와 능력이,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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