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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9-23 (월) 05:2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    
주님께서 택하여 부르시고 보내신 (눅 6:12-19)

2000여 년 기독교 역사상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보듯이 세상을 보기 시작할 때에, 즉 잃어버린 영혼들, 상한 심령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시는 그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주님의 눈으로 자신들도 바라볼 때에 그들은 주님의 일군이, 제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일군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가 자신은 일군이, 제자가 될 마음이 없다면 그 기도는 위선적이며 진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30살이 되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한 예수님은 여태까지 홀로 사역을 해왔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랐지만, 그 중에 한 사람도 그의 사역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의 사역을 보고 있지 않았으면, 섬김을 받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왕에게 목 베임을 받아 순교한 후 당시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에 상응하는 12제자들을 동역자로, 하나님 나라 일군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원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부르시고 일군 삼으십니다. 그들이 앞으로 주님과 함께 어떤 사역을 하면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0절부터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13절에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하였습니다. 여기 ‘부르사’라는 원어는 ‘얼굴을 맞대어 보도록 앞으로 부르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 자신 앞으로 부르실 때에(행 2:39) 사용되었고, 선택한 자들을 부르셔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사명을 주실 때(행 13:2; 16:10)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불렀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무슨 부탁을 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주의 일을 위임하기 위하여, 맡기기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지난 번에도 ‘제자’의 뜻에 대하여 설명하였듯이 제자로 부르심은 ‘배우는 자’로의 소명이라면, ‘사도’로 칭한다 함은 주의 일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는 자, 사명을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중생의 체험과 주께서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단계에서 3년간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보고 배우는 단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체험하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면서 권능을 주심으로 사도로서의 직분을 끝까지 감당한 것입니다.
한가지 넘겨 짚고 싶은 것은 12제자를 부르실 때에 그들이 내적으로 훌륭하거나 개인적으로 똑똑하고 신실하고 잘 나고 능력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아도 단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 역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주님께서 빚으실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들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가를 그대로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록 3년 간이나 주님을 옆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했던 그들이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기 전에는 믿음의 성숙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제자들과 인내하시면서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하여튼 주께서 12제자를 부르시고 훈련을 시키시는 데에 몇 가지 기본적인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제자들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2제자 중 누구도 자신들이 먼저 주님을 따르며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주께서 먼저 선택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막 3:13)고 하였으며, 주님께서 지상 사역의 마지막에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고 하였습니다. 제자들과 상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상의하셨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하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사야, 다른 모든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12제자들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하여 특별한 목적으로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뭐 그들이 똑똑하고 신앙이 좋고 특별하다는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선택되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하나님게서 구속 역사를 펼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셨듯이, 사사나 선지자를 택하셨듯이 말입니다. 오늘도 몸된 교회의 지도자들과 일군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 나라 일을 하게 하십니다.

둘째는, 기도한 후에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2제자들은 예수님의 선택이며, 예수님의 선택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은 늘 모든 일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했습니다. 모든 일에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선택도 예수님의 오랜 기도 후 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였으니”(12-13절)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철야기도를 하시고 나서, 기도 응답의 결과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이기에 주께서 그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도 12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요 17:6)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제자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훈련 받고 준비되기 위하여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중생함을 입고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따른다 하더라도 주님을 섬기기에 아직 준비가 멀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다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서도 준비가,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던 일들을 버려두고 주님과 함께 3년간을 옆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배우고, 때때로 오해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처음 주께로 나오신 분들에게 이러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니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훈련을 받지 않은 분들에게 훈련이 필요합니다. 3년 동안 제자들이 별로 주님을 도운 것도 없고, 주께서 하시는 일에 동의를 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방해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주님의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다 ‘훈련과정’이요 ‘준비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배우지 않고는 좋은 일군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가까이 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헌데 12제자들의 훈련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 3년간이나 동거 동락하면서 훈련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교실에서, 좋은 책으로, 개인적인 경험으로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성장은 경건한 삶의 본을 보면서 직접 가까이 배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존경할만하고, 사랑과 인내가 넘치며, 순결한 삶,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경건한 삶만큼 좋은 선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한 경건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그가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마음을 옆에서 느끼는 것만큼 좋은 훈련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르심을 받는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많고, 부적절한 사람들이었으나 스승 되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의도는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고가 되도록 가르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때때로 실수가 있어도 예수님은 참고 계속 그들에게 기본적인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지막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까지도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영적 무지는 대부분 교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서로 누가 더 낫고 더 높은 자리에 앉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께 종종 꾸지람을 들은 것을 우리는 압니다(막 9:33-34; 마 20:20-21).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막 9:36). 혹은 믿음의 부족으로 연약함이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으로 믿었지만 그 능력이나, 그의 선하심, 진리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는 연약한 모습을 보였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겸손과 믿음의 부족은 헌신하는 데에도 연약을 보였습니다. 쉽게 주님과 약속하고 어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계속 참고 가르치셨습니다. 실제 겸손의 본을 보이시면서 겸손을 가르치셨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면서 믿음을 가르쳤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헌신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승천하신 후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 능력으로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진리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시는 분, 생각이나 행동에 한 점도 흠이 없으신 분, 한번도 성질을 부려본 적이 없으신 분, 악에 대한 것이 아니면 화를 내 본적이 없으신 분과 함께 보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절대로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으시고,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은 죽기까지 고난 당하신 분,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깨끗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려 내시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 분이 자신을 닮게 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결국 그 제자들은 가롯 유다를 제외하고 대신 사도가 된 맛디아를 비롯하여 모두 그렇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냄을 받기 위하여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2제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선택되었고, 기도 후에 선택되었고, 훈련을 받아 주의 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선택되었을 뿐 아니라 서론에도 언급하였듯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기 위하여 선택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13절에 사도로 칭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제자들을 부르신 까닭이 보내기 위함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부르신 것입니다(마 28:19-20). 우리가 훈련 받고 준비하는 이유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아 주의 일을,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여 제자를 삼으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상한 심령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을 도우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고 하였습니다. 권능은 권세(authority)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들, 곧 말씀을 가르치고, 병을 고치시고,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치시고 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17-19절). 사도행전을 통하여 우리는 그 권능을 보았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행 3:2-8; 참고 14:8-10).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행 5:12) 하였으며, 귀신도 쫓아 내고(행 5:16), 다른 병들도 고쳐 주었습니다(행 28:8-9). 이렇게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예루살렘은 물론이고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14-16절까지 12제자들의 이름이 나타납니다. 특이한 것은 시몬이 두 사람, 야고보가 두 사람, 유다가 두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별하려고 누가는 베드로라고 이름 주신 시몬이라고 설명하고, 다른 시몬은 셀롯, 곧 열심당원 중 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라고 구별했고, 유다도 예수를 파는 자가 될 가롯 유다라고 구별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선택된 제자들 가운데 이 가롯 유다가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12제자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마치 교회 안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음을 말씀하신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알고 훈련 받은 사람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신앙이 좋고 완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심이 전혀 자격 없는 부족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부르시고 준비시켜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께서 자격없는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신 역사 아닙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를, 아브라함을, 이삭을, 야곱을, 모세를, 여호수아를, 기드온을, 삼손을, 다윗을, 엘리야를, 요나를 아니 오늘 본문의 12제자들을 보십시오. 심지어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그들에게 부족한 면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다만 그들은 부르심에 순종하고 기꺼이 훈련을 받아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당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여러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요 부르심입니다.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그저 감사하고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허락을 받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격이 있어서, 믿음이 있어서 부르신 것 아니었습니다. 다만 순종하고 훈련을 받아 준비하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감당하는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부모인 다른 사람에게 여러분을 소개할 때에 ‘저 사람들은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내 생활 중에 필요한 돈만 대는 물주들이야’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을 가지겠습니까? 매일 하나님을 그저 여러분의 필요나 채워주고 복이나 주시는 분으로만 대하고 사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만 생각하고 산다면 심각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종으로, 일군으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 상한 심령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시는 그 사랑의 열정을 가진 추수할 일군들을 찾고 있습니다. 동역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부족한 종을 통하여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일군들은 세상에 보내어 추수를 해야 할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생활을 통하여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주님 맞을 준비를 하시면서 훈련 받으며 일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모두가 추수하는 일군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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