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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4-06 (월) 09:35
분 류 특별설교
ㆍ조회: 974    
자원하여 마시는 고난의 잔 (요 18:1-11)


2020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첫날

성도들 가운데 어려움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반응은 그 어려움 자체만을 보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어려움을 피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 성숙한 성도들은 그 어려움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 속에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이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이루려고 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허락하신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렇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첫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어느 다락방에서 성찬식을 제정하시고(요 13장), 제자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셨고(요 14장-16장),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 주신 후(17장),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셔서 성벽을 따라 기드론 시내를 건너 어느 동산에 들어가십니다(요 18:1). 이제 본격적인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됩니다. 아마도 한 밤중, 자정 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람산 서쪽 겟세마네 동산이라는 곳에 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공관복음서에는 겟세마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마 26:36; 막 14:26; 눅 22:39). 이 동산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는 곳이어서 가롯 유다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2절).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기록되고 있지 않지만 공관복음서에서는 본문 2절과 3절 사이에 예수님께서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한 내용들이 나옵니다(마 26:39-44; 막 14:36; 눅 22:42-44). 제자들에게도 좀 떨어진 곳에서 졸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씩이나 고난의 잔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고 싶지만, 자신의 뜻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지기 원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기도할 힘을 도왔다고 하였습니다(눅 22:43).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누가는 기록하였습니다(눅 22:44).
즉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십자가 고난의 잔을 마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기꺼이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11절 하반절에도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담대하게 가롯 유다와 함께 자신을 체포하러 온 무리들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든지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그들을 물리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을 비워 낮아지기를 원하시면서 속죄의 제물이 되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감당할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가롯 유다가 무장한 로마 군병들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종들을 데리고 깜깜한 밤 중에 등, 혹은 횃불을 가지고 겟세마네 동산까지 왔습니다(3절). 적어도 200명 이상 400명 정도가 왔다고 성경학자들을 말합니다. 아마도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수많은 무리들이 찬양하며 따르던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면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과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여 대제사장들이 무장한 로마 군인들까지 데리고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담대하게 누구를 찾느냐고 묻습니다(4절).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하니 “내로라(I am he)”하시니 저희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다고 합니다(5-6절). 이 말이 그냥 그들이 찾는 이가 자기라는 단순한 의미였다면 저희들의 반응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광채가, 그 능력이 나타나서 그들이 땅에 엎드렸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내로라”하신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인(출 3:14) “스스로 있는 자(I AM)” 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대제사장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유대인들이라도 아무도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를 수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엎드린 그들에게 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니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7-8절)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의 안위를 생각하면서 자신을 잡아가는 것은 좋은데, 제자들은 잡지 말고 가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난을 앞에 두고도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고귀한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말하신 이유는 이미 자신이 예언한 말씀(요 6:37-40, 17:12)을 성취하기 위함이라고 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도 예수님과 같이 체포되어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더라면 어쩌면 그들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비록 제자들이 지금은 다 도망하지만, 나중에 부활하셔서 다시 찾으시는 주님의 은혜로 놀랍게 변화를 받아 복음의 사도들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택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처럼 우리도 주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시면 다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 아닙니까?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자신을 밝히자 체포하려는 대제사장들의 종을 다혈질인 제자 베드로가 검을 빼어 그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어 버립니다(10절). 어부 출신이 베드로가 검을 써야 얼마나 잘 쓰겠습니까? 아마 심장을 향하거나 머리를 향하여 휘둘렀는데 한 쪽 귀만 잘라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검을 집에 꽂으라고 명하셨습니다(11절).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하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베드로가 그 동안 주님 곁에서 수없이 십자가 대속의 죽음에 대하여 들었건만 깨닫거나 믿지 못하고, 지금 혈기를 부리며 검을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지금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손수 잡혀가시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십자가 죽음을 스스로 자청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이를(내 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 10:18)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그들을 다 무찌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어 잡히신 것입니다.
또 한가지 교훈은 혈기를 부리는 자는 혈기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질, 성질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죽여야 할 또 한가지 이유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고의 잘린 귀를 붙여주시고 나서(눅 22:51),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1절하) 하셨습니다. 이 잔이라고 표현한 고난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습니다. 이 잔은 고통의 잔이요, 슬픔의 잔이요, 저주의 잔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공의의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그 죄를 해결해야 하겠기에 인간의 모든 죄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씌우셔서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시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 진리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고 설명하였습니다. 즉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뜻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의 쓴 약을 기꺼이 다 마셨습니다. 저는 믿기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사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주시는 말씀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정도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고난의 잔을 때때로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그 잔을 마시기 싫다고 하나님에게 불평, 불만을 늘어놓으며 원망 속에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처음 하나님의 첫사랑에 흠뻑 빠져 있었을 때에는 참 잘 순종합니다. 그러다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거나 식어지면, 뭐 좀 안다고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뜻대로 신앙생활도 합니다. 더군다나 좀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도 없는 듯 살아갑니다. 자기 머리와 경험을 의지하고 헤쳐 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정말 어리석은 분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뜻에 순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그 큰 사랑을 믿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게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기 위한 조건은 순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능력은 순종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이 왜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는 시작서부터 순종이었습니다.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순종하고 나갔습니다(히 11:8). 그리고 아들 이삭을 바칠 때에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보다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고 하였습니다. 수양의 기름보다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특별히 어려울 때에, 고난이 찾아올 때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를,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그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예수님처럼 순종하십시오.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면 기도하십시오.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라도 힘을 주십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오는 모든 고난의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면 적어도 아는 것 한 가지는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쓴 약이며 우리가 이것을 다 마셔야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혹은 사탄, 마귀들의 조롱이나 빈정거림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믿음이 없는 자라면 베드로같이 칼을 뽑아서 기질대로 싸우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하라고 주시는 쓴 약이라고 생각하고, 믿음의 눈으로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놀라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확실히 믿고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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