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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18 (토) 20:12
분 류 주일설교
첨부#1 20200419_이번_주_설교.doc (82KB) (Down:31)
ㆍ조회: 942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눅 8:26-39)


우리 믿는 성도들은 누구나 과거에 한번쯤은 영적인 신비한 능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번도 없다고 하시면, 머리로만 믿는 것이기에 믿음의 역동성이 없습니다. 살아 역사있는 믿음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기도하고 사모하셔서 꼭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죄 사함의 은혜는 물론 성령체험이나 자신의 변한 모습, 혹은 기도응답을 받거나 등등 말입니다. 이미 그러한 성령 체험을 하신 분들은 그 후에 어떻게 했나요? 주위에 계신 분들과 나누셨나요?

누가는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우리 예수님이 죽을 병을 고치시거나 초자연적인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마귀의 능력을 초월하시는, 더 큰 능력의 주님이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주님은 인간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묶어 놓는 사탄 마귀와 그 악령들을 물리치는 분이십니다.
악령들은 오늘날도 사람의 정신을 빼앗고,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게 하고, 우리 자신이나 가정들의 평강과 기쁨을 빼앗기 위하여 병들게 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기게 하거나, 영적으로 이단의 무리나 마귀에게 굴복하게 하여 우리를 가정과 이웃, 사회로부터, 교회로부터 자꾸 분리시키려고 합니다. 그러한 마귀의 능력을 물리치는 길은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바로 전 40일 금식을 하신 후에 광야에서 사탄 마귀에게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그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면(마 4:1-11), 오늘 본문은 사탄 마귀가 부리는 악령들을 굴복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보이십니다.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9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사탄 마귀의 역사를 무너뜨리려 함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갈릴리 바다의 폭풍이 몰아쳐서 물이 가득하게 되어 파선하게 되었을 때에 제자들의 요청을 듣고 폭풍을 잔잔케 하신 후(24절),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건너편 데가볼리 지역 이방인의 땅 거라사, 혹은 가다라 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때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27절)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에 의하면 한 사람이 아니라, 귀신들린 두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마 8:28). 여기 “귀신 들린(demon-possessed)”이라는 단어의 원어 의미는 말 그대로 ‘악령이 들어가서 그 악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마귀는 사람을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영적으로는 거짓 종교를 만들거나, 사탄 마귀를 경배하게 하고, 이단(occult)에 빠지게 합니다. 정신적으로는 미치광이가 되게 합니다. 우울증에 걸리게도 합니다. 지적으로는 잘못된 교리, 거짓을 조장합니다. 마가복음서에서는 본문의 귀신들린 자가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고(막 5:5), 혹은 입에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게 하기도 하고 불과 물에 제 몸을 던져 자살하게 한다고 합니다(막 9:17-22). 본문 27절에서도 귀신들린 자는 옷을 입지도 않고, 공동묘지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아 인간성을 상실한 채 비참하게 짐승처럼 지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귀신들린 자를 비난하거나 나무라신 적이 없음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을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마귀에게 당한 희생자로 여기며, 구원이 필요한 자로 생각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보다시피 악령들은 사람 속에 들어가서 의지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악령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즉,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즉각 알아보고, ‘여기서 도대체 무엇 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를 괴롭게 합니까?’라고 합니다. 또한 마가복음에서는 귀신들이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막 5:6) 하였습니다. 두려움으로 경외하면서 예수님을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악령들이 하나님을 미워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방해하지만, 주 예수님을 대면한 자리에서는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 2:10)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더러운 귀신들은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우두머리 사탄 마귀를 따르는 무리들로 삼위의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영물들이기에 예수의 영을, 성령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앞서 귀신들린 다른 사람을 대면했을 때에도,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눅 4:41)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멸할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알았기에,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29절) 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셔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29절). 그래서 그 사람을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였던 것들이 끊어지게 되고 귀신들이 광야로 몰려 나갔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마지막 때가 되면 전부 심판을 받아 영영히 지옥, 음부, 혹은 무저갱(abyss)에 떨어지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줄을 알았기에, 지금 그리로 가게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합니다(31절).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히냐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주님 앞에서 벌벌 떠는 것입니다(약 2:19).
예수님께서 30절에 귀신들린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에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도망하려고, 예수님께 간구하기를 “그 돼지들에게로 들어가게”(32절)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군대’라는 원어는 오늘날 하나 혹은 두 연대의 숫자를 가리킵니다. 당시 로마 한 ‘군대’는 약 5000명이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2000여 마리나 되는 돼지 떼라고 하였습니다(막 5:13). 그러니까 귀신들린 두 사람 속의 악령의 수는 4000여나 되는,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돼지들에게 들어가게 해달라는 것은 황당한 요청이지요. 바로 지옥으로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였는지, 아니면 돼지는 유대인들이 장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그리로 들어가 돼지들을 control 해도 상관하지 않으시겠지 생각하였는지, 아니면 그렇게 많은 돼지를 죽이면 그 주인이 화를 내고 고소할 테니 예수님이 죽이시지는 않겠지, 만약 죽이면 그 일로 예수님께서 주인들에게 심판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냥 그대로는 예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알았기 때문에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은 귀신들의 소원대로 다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는데,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33절) 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마 8:32절상)고 하였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들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시면서 세상에 보내셨을 때에 그들이 귀신들을 쫓아내려면, 그 능력을 나타내려면 기도와 금식이 필요했고, 시간도 필요하였습니다(마 17:20; 막 9:29).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수많은 귀신들을 상대하면서 단 한 마디의 말씀을 하십니다. “가라”! 그러자 즉각 귀신들은 돼지 떼 안에 들어가서 바다 속으로 빠져 몰사합니다.
여러분! 앞서 말씀드렸듯이 마귀가 부리는 귀신들은 지적으로 뛰어난 영물들입니다(겔 28:3-4). 초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막 5:4; 행 19:16). 하나님에 대하여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의 본질과 그 약점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영물이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창 3:15),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만 무저갱에 던져지게 되고 영원히 지옥의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계 20:3,10). 지금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것과 같은 수많은 귀신들을 물리칠 수 있으려면 엄청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한 순간에 말씀 한 마디로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편, 어떤 사람은 묻기를, ‘왜 예수님께서 돼지들을 몰사시키지 마시고 그냥 내버려두시지, 아무 죄도 없는 돼지 수천 마리를 함께 죽이셨냐?’고 합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돼지는 정말 쓸모가 별로 없는 동물이었기에 당연히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불결한 짐승입니다(레 11:7; 신 14:8). 예수님께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그 귀신들린 자들이었습니다. 한 영혼이 돼지 수천 마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거라사인들은 이방인들이라 돼지를 기르고 먹고 하였습니다. 돼지 떼를 치던 자들이 수천 마리가 바다에 빠져 몰살하는 것을 보고 놀라 도망하여서 성내와 촌에 가서 고합니다(34절).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 보러 나왔는데, 다들 알고 있는 귀신들린 사람이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옷을 입고 예수님 발 아래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35절). 그것을 본 그들의 반응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명하여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하고 돼지들이 바다에 빠져 몰사하는 것을 본 목격자들이 그들에게 설명하였더니(36절),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기를 구하더라”(37절상)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이전에 예수님께서 그런 기적을 베푸시면 대게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치유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방 거라사인들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에게 떠나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배에 올라 돌아가신 것입니다(37절하).
이유는 거라사인들에게는 세상에서 먹고 사는 생계가, 재산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인 죄 사함 받는 것보다 생계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소유와 안정된 삶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으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전능하시며, 그들을 사랑하시는 분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쫓아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정말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죽고 나서 영원히 지옥에, 무저갱에서 악령들과 함께 고통 중에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으면 죄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그 사랑을 경험하고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배에 도로 타시고 돌아가시려 할 때에 구원을 받은 자, 귀신들로부터 자유함을 입은 자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38절).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를 보내시며,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39절)고 하였습니다. 고침을 받은 후에, 구원을 받은 후에 그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고 그냥 쫓아내버린 거라사인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간증을 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곧 순종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온 성내에 증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심은, 구원을 받게 하심은,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하심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부르심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기신 지상사명에 대한 헌신에로의 부르심입니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본문의 초점은 예수님의 능력과 증인의 삶에 있습니다. 수많은 귀신들조차 주님의 권세와 능력 아래 굴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참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귀신들린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 오셔서 그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온전하도록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아직 사탄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그 어두움의 세력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주장하려고 합니다(엡 6:12). 이 악한 세력은 무질서와 파괴를 조장합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멸망시키려 합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에게조차 말입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터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굳게 서서 싸워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 어두움의 세력을, 악의 세력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5:7)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우리 예수님이 마귀를 쫓아낼, 악령들을, 귀신들을 멸할 능력이 있으심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주로 삼고,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우리가 마귀를 쫓아낼 능력이 있으심을 믿습니까? 그런 체험이 있으십니까? 사실 처음 예수를 영접하고 회심하여 믿음을 가질 때 여러분을 주장하던 사탄 마귀가 쫓겨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부르시는 목적은 우리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고 난 후부터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기도로, 찬양으로, 말씀으로 마귀들을 물리치며 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만약 없으시다면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런 성령 체험을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능력으로 치유하신 경험, 회복케 되신 경험이 있어야 정말 우리 주님은 전능하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러한 경험이 계속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했으면, 은혜를 받았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증거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행하신 큰 일을 입을 열어 일일이 말해주어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도 평강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마귀가, 귀신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음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나타내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사명 때문에 우리를 아직도 이 땅에 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 부르실 때까지 사명 잘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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