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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8-16 (일) 06:5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371    
더 중요한 것을 먼저 하십시오 (눅 10:38-42)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중요한 것을 먼저 합니다. 덜 중요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먼저 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상식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더 좋은 것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요. 문제는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더 좋은 것인지를 모를 때입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인지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지난 주일에는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게 되는지에 대한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최고의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이야기를 하시고(10:25-29), 이어서 누가 내 이웃이냐는 질문에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야기해 주시면서 모든 인간은 복음이 필요한 것을 강조하셨습니다(10:30-37). 믿음이 없이는, 성령을 받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할 수도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이 있는 주님의 제자라면 오늘도 누구에겐가 참된 이웃으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제자는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12제자들이 한 촌에 들어갔습니다(38절상). 누가는 그 동네 이름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마르다와 여동생 마리아, 그리고 남동생 나사로가 사는 동네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베다니라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1장). 그 동네에 들어갔는데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인이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초청합니다(38절하).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아마도 소문으로 듣고 마음에 존경하던 분이기에 한끼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초청했다고 생각됩니다. 마르다는 맏이로서 책임감도 있고 손님을 섬기려는 열정도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39절)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아래에 앉아 그 말씀을 경청합니다. 당시 랍비 등이 Torah, 곧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칠 때에 여자는 학생으로 받지를 않았습니다.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였기에 여자들이 랍비들로부터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예외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어린아이들조차 다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기 ‘듣더니(h;kouen)’라는 동사는 헬라어 미완료형으로 현재진행형입니다. 계속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상)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집중하는 반면에 마르다는 손님들 대접하기 위해여 준비하느라고 일이 많아서 마음이 분주하다고 합니다. 여기 ‘분주하다(perispa/to, distracted)’는 문자적으로 ‘어떤 일에 끌려가다(dragged away)’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 빗나가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모습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마르다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손님들을 초대한 주인으로서 대접해야 하니 일이 많고 마음이 바쁠 수 밖에요. 절대로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음식 준비에 너무 마음을 쏟느라고 정말 중요한 분인 예수님에게, 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빗나간 것이라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마르다는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0절하)고 한 것입니다. 속으로 동생에게 화가 난 것입니다. 그 화가 예수님에게까지 미친 것입니다. 원망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주님의 일을 하면서 그런 경험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나는 섬기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데 왜 저 사람은 도와주지를 않고, 말씀만 들으며 예배만 집중하는 것이지 생각하며 불평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좀 생각해주면 나 혼자 일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같이 좀 하라’고 할텐데 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마르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혹시 나는 ‘잘하고 있다’고,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나는 열심히 하는데 다른 사람은 나를 돕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은 더 중요한 일을, 더 좋은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마르다의 이런 불평은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불평하며 동생이 자기를 좀 도우라고 해달라는 마르다의 요청에,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41-42절)고 하십니다. 주님은 마르다, 마르다 두 번을 부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그에게 실망했다는 것도 아니며, 그의 말을 인정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충분히 그녀의 성품과 상황을 이해하면서, 열심히 대접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지금 그녀가 염려하는 것을, 화가 나있는 것을 꾸짖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마르다가 많은 일로 고생한다고 하면서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염려하고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가장 필요한 것 하나를 놓치고 있다. 그 많은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의 말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집 안에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말씀에 집중하고 있는데 오직 마르다만 빠진 것입니다.
그녀를 꾸짖기보다 그녀의 섬기는 일을 칭찬하면서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그 일시적인 근심을 내려놓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주님의 말씀에 자신의 마음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육신을 돌보는 일보다 영혼을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고 더 좋은 것입니다. 마리아는 더 좋은 선택을 하였으므로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지난 주일 율법사에게 교훈한 내용과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모든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렇게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그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만왕의 왕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왕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왕자와 공주들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자신을 만나며, 그 말을 듣는 것을 너무 기뻐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Don Whitney 교수는 그의 저서 Spiritual Discipline for the Christian Life 에서 ‘영적 훈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성경의 젖과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을 떠나서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 4:4; 신 8:3)고 하셨고,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전 2:13)고 하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르다처럼 덜 중요한 일에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하는 것을 봅니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또 그렇게 열심히 맡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들 때문에 더 중요한, 더 좋은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을 봅니다. 그 결과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불평하고, 남들을 비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작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을 뒤로 제쳐 두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주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난한 심령으로 무릎을 꿇는 것보다 우선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마르다는 손님 대접하는 일로 분주하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육신의 양식을 준비하는 일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고,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양식을 받아 먹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르다의 모습이 잘못이 아닙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더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복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마르다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직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이 곧 말씀인 것을 알았다면 음식 준비는 나중에 하더라도 말씀을 듣는 일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일에 집중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인생에게든 최고, 최상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일에, 말씀을 먹으며 기도하는 일을 최우선 순위를 두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그 은혜를 누리며 살 때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와 사랑의 섬김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주의 일을 감당하면서 시험이 올 때, 감사 대신 불평이 나올 때 그 기질(temper)이 주의 일을 망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아니 그 기질 때문에 형제, 자매들이 다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그 기질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정도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감정 표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면 안됩니다. 그 때 주님이 생각나야 합니다. 말씀이 생각나야 합니다. 일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영혼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세우고자 주의 일을 하는데, 일하면서 사람을 헤치고 망하게 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또 삶 자체가 복잡해질 때 우선순위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무엇이 덜 중요하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셔야 합니다. 단순하게 삶을 정리하십시오.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을 시간조차 없습니까? 예배와 찬양을 드리며,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까? 무엇인가 대단히 잘못 되었습니다. 덜 중요한 일에 대하여 NO 하시고, 더 중요한 일에 YES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더 좋은 것을 선택하셔야 합니다. 좋은(Good) 것보다는 더 나은(Better) 것을, 나은(Better) 것보다는 최상(Best)의 것을 택하셔야 합니다. 그런 선택을 잘 하는 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도(discipleship)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만나는 것을 뒤로 하고, 그의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거나, 아직 주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기보다, 다른 일에 마음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영혼이 침체되어 있거나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면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지지 않습니다. 억지로라도 영적 양식을 먹어야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분이라면 그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2:2)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영적인 생활에서 영적 양식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에서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고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하나님의 기업을 넉넉히 얻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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