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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10-04 (일) 09:5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2    
심령에 무엇이 있습니까? (눅 11:24-28)


지난 주일 앞 단락에서(눅 11:14-23) 살펴본 대로, 예수님께서 많은 군중들 앞에서 더러운 벙어리 귀신이 들린 자를 만나서 귀신을 쫓아 내셨더니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바알세불이라고 이름하는 사탄 마귀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하며 고소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귀가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집을 허무는 것과 같은 불합리한, 가당치 않다고 하면서, 이렇게 비방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편이 아니라 마귀의 편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그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임한 것을 증명한다고 하시면서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양들을 모으지 않는 자는 곧 헤치는 자, 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더러운(악한) 귀신이야기를 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24-26절)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어떤 사람에게서 더러운 악한 귀신이 나갔다가, 다녀보니 마치 사막과도 같은 물 없는 곳처럼 불편하여 쉬지를 못하다가 다시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보니 이전보다 더 있기가 좋게 되어 있어, 자기뿐 아니라 더 악한 귀신 일곱과 함께 그에게 들어가 거하게 되니, 그 사람은 이전보다 더욱 타락하여 악하게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오신 메시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더러운 귀신이 나갔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어 예수님에게 속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인간적으로 노력하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보려고 애쓴다 하더라도 잠시 후에 마귀는 다시 그에게로 들어가 더 악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센병 환자(문둥병자)가 신경이 마비되어 손가락이나 발에 상처를 입어도 아픈지 모르듯이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이 또는 어떤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에 나와있는 도덕이나 윤리를 강조하기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 십자가의 복음으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여 속 사람의 변화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겉으로 드러난 생활을 고친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탄 마귀에게 속하여 더욱 귀신들의 악영향을 받으며 사탄 마귀의 하수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사도 베드로는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것 같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배교하는 것을 속담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겉을 고치는 것과 중생함, 구속함을 입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 속 사람이 변화를 받는 것과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아는 것과 다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겸손히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고, 삶의 주인으로 영접할 때에 예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27절-28절에 정말 그렇게 예수님에게 속한 자녀는 어떤 사람인지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벤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27절) 하였습니다. 무리 가운데 한 여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임신하고 낳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얼마나 복된 가를 히브리적인 표현으로 소리를 친 것입니다. 마치 임신한 마리아가 친족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에 그가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눅 1:42)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를 축복하는 이 여자의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전혀 뜻 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28절) 하셨습니다. 동문서답 같습니다만, 그저 예수님을 임신했다가 낳아 기른 사실만으로 정말 복이 있는 하나님에게 속한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야 정말 복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에서는 어떤 사람이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에게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마 12:47)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12:48절하-50)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 속한 참된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눅 8:21)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은, (1)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2)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3)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기꺼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합니다. 말로만 주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내 심령에서 더러운 귀신이 나간 자체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 상태로 있다면,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더 악한 귀신들이 들어가 자리잡게 됩니다. 빈 상태로 두면 안됩니다. 사람은 마음을 그냥 비운 채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그냥 두면 죄성으로 인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세상적인,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시기와 질투가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하고 양육하듯이 그러한 생각과 마음을 거스리는 교육을, 양육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한 것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영적으로 주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우리의 심령을 성령으로,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이 하나님에게 속한 자녀들이라, 하나님 나라의 가족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말씀이셨습니다. 도덕군자라고 자처하는, 율법을 지키며 전통을 고수하며 나름대로 부모를 공경하던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은 혈연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자랑하며, 무슨 지파에 속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러한 그들 앞에서 어머니 마리아나 동생들보다 주님의 제자들을 가리켜서 참된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하시니, 마리아를 축복하는 여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니, 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초점은 육적인 관계보다도 영적인 관계가 훨씬 중요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선한 의도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한 가족으로 초대하려는 것입니다. 99마리 양을 찾았어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눅 15:1-7).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하였고, "주의 약속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고 하였습니다. 백인이던 흑인이던 스패시쉬든 동양인이든,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무식한 사람이던 유식한 사람이던 차별 없이 누구나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여 주님을 영접하고. 주로 섬기는 제자들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한 가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런 가족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편에 속한 주님의 제자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한 가족입니까? 참맘으로 주님을 영접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까?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영원한 표어인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십니까? 저희 장로교 교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 문답 중, 제일 먼저 가르치고 있는 인간의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사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한 가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요, 자매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복 있는 자이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 편에 속한 자녀가 되었다면 심령에 성령과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있어야 하나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목사님, 성경 말씀은 너무 많고, 모르는 것도 많은데 어떻게 다 지킬 수 있나요?’라고 물으시는 분이 있다면, 신구약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집약해놓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절)라고 하신 지상 대명령을 지키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요 13:34-35).

이런 사랑은 어떻게 합니까? 구체적인 것 두 세가지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우리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도 배웠듯이 우리에게 잘못하는 사람들을 참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 유명한 예수님의 산상수훈 설교 가운데도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도 돌려 대며(마 5:19)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마 5:44)고 하셨습니다. 용서가 사랑의 기초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를 가 주라고 하신 말씀들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6:38-44).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마 18: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한다면 어찌 제자라,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요즈음은 손해보고는 못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좀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갚아 주실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나눌 줄 아는 삶 이었습니다(행 2:42-47). 슬픔을, 아픔을 나누어야 합니다. 기쁨을, 좋은 일을 나누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들의 교제입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그 삶이 건강하지 못합니다. 빛은 어디든지 비추입니다. 다만 방해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깁니다. 죄입니다. 적어도 여러분의 목사와는 정말로 모든 것을 나누고 기도를 부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과 같이 여러분을 섬기고 위하여 살려고 하는데, 여러분이 숨기시면 사랑의 교제는 없는 것입니다. 양과 목자와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바람직하기는 모든 성도들과 무엇이든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있는 삶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웃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받는 것만 좋아하지 마시고 주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행 20:35). 잘 아시다시피 아가페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입니다. 성도들 사이에 빌려주거나 빌려 받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심령(마음)을 비우기만 하셨습니까? 더러운 귀신이 나간 것으로만 만족하지 마십시오. 선한 것으로 채우셔야 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못하시고,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셨습니까? 지금도 우리 주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음 문을 열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죄 사함을,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영접하신 분은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합니다. 기도로, 말씀으로 심령을 채우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주님의 제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한 가족입니다.

이미 주님을 영접하시고,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에게 속한 자녀로 사시는 주님의 제자가 되신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삽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영광을 돌립시다. 무엇보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한 몸입니다.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당연히 사랑하고 사랑 받아야 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줍시다. 용서하고 삽시다. 삶을 나누고 삽시다. 주고 삽시다. 세상에 믿지 않는 자들과는 좀 다른 삶을 삽시다. 거룩한 삶입니다. 구별된 삶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증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적어도 겉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려고 하는 어떤 종교인들이나 자유주의자들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여!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게 하소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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