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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10-15 (목) 07:5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792    
입을 막을 것이라 (딛 1:10-16)


암세포가 무서운 것은 그대로 두면 건강한 세포까지 암세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암세포를 속히 제거해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암세포와 같은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 디도에게 1장 6-9절에서 그레데 섬의 교회들을 돌보면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의 자격에 대하여 말한 후에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 안에 있는 영적인 암과 같은 존재들을 제거하라고 합니다. 어떤 자들이 영적인 암과 같은 존재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디모데 목사에게도 경고한바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정통 교리가 아닌 다른 교훈을 가르치거나 율법의 선생이라고 하면서 신화와 족보, 전통에 목메는 자들 때문에 교회가 너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그들을 물리치라고 하였습니다(딤전 1:3-4, 6-7).
아시다시피 원래 사탄 마귀는 먼저 입과 혀를 사용하여 악한 짓을 합니다. 말로 개인적으로만 아니라 공동체적으로도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고, 헛된 말로 교인들을 속이는 자들의 입을 막으라고, 물리치라고 합니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10-11절상)고 하였습니다. 여기 ‘할례당’은 유대인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을 한 자들로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행 15:1, 5; 참고- 롬 2:25-29). 이렇게 진리의 복음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헛된 말로 교인들을 혼란하게 하며 속이는 자들의 입을 막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11절하) 한 것처럼, 여기 ‘집들’은 교회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들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유대 율법주의를 주장하는 할례당뿐만 아니라 아마 기독교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흔드는 인본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가르침으로 속이고 조장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까닭은 더러운 이익을 취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딤전 6:5)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사역을 하면서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 5:2).
이어서 바울은 그런 자들의 적나라한 특징을 말합니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이 증거가 참되도다”(12-13절상)고 하였습니다. 물론 어떤 선지자가 과장해서 말했겠지요. 그레데 사람들이 다 그렇겠습니까? 다만 위에서 언급한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교인들을 속이는 자들을 일컬어 하는 말이겠지요. 그들이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하수인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니 항상 거짓말을 하며, 또, 여기 ‘악한 짐승(wild animal)’은 망나니 같이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를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배만 채워지면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입을 막을 것이니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디도에게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13절)고 하였습니다. 그냥 권면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여기 ‘꾸짖으라(ἀποτόμως, rebuke)’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칼이나 도끼로 잘라 내어버리라’ 입니다. 그래야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13절하-14절)고 한 것처럼, 교인들의 믿음이 온전하게 세워지고 그들의 허탄한 이야기에 속아 넘어가서 진리를 배반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 6:14-15) 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며 거짓 교리나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은 아예 믿지 않는 자로, 의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교회 지도자들은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누가 정말 믿는 자로 의의 종인지, 믿지 않는 자로 죄의 종으로 마귀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에 언급한 이런 자들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아가페 사랑’으로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분별합니까? 우선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15절)고 합니다. 첫째로, 속 사람 이야기를 합니다. 겉 모양은 우리를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속내가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과 생각의 사람인지, 원죄로 인한 더럽혀진 양심이 회복이 되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속 사람이 깨끗하다는 것이 율법을 잘 지키고 안 지키고, 무슨 의식이나 예식을 잘 하는 것과 다릅니다.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채로 얼마든지 율법의 의식이나 예식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겉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예배도 그럴듯하게 드리고, 찬송이나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 사람이 깨끗하게, 정결하게 하게 되어 변화를 받은 사람이 드리는 예배나 찬송이나 기도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으로 변화 받은 자들은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한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과 양심이 성령의 인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본문에서는 성령을 받지 못하여 전혀 변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으면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5-26; 눅 11:39절이하)고 하셨습니다.
제가 늘 강조합니다. 사람은 겉보다 속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그래서 속이 깨끗한 사람은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한 것입니다. 영적인 표현입니다. 사실 참으로 중생함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는 겉은 좀 부족한 것이 있어도 여전히 세상과는 구별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만왕의 왕자와 공주들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겉으로도 드러나는 저들의 실상을 지적합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16절)고 하였습니다. 분별할 수 있는 둘째 사실는, 저들의 삶을 잘 살펴보면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딤후 3:5절상)인 것입니다. 즉 경건한 척, 믿는 척 할 뿐입니다. 삶의 열매를 보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증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적 그리스도에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 24:15) 라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감람산에서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를 설명하시며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등장할 것을 예언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에 교회 안에 멸망의 가증한 자,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진리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고, 모든 선한 일 즉 하나님의 뜻을 버리는 행동을 하는데 저들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 믿음의 공동체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깨뜨리려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징계, 권징 정도가 아닙니다. 출교시켜야 합니다. 진리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잘못된 교리를 퍼뜨리며 허망한 가르침으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헛된 말이나 거짓말로 속이는 자들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예배도 잘 드리고 하지만, 속 사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로서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채 교회를 온통 흔들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경계해야 합니다. 특별히 목사와 장로 등 영적 지도자들은 더욱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들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삶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믿지 않는 자입니다. 아니 어쩌면 마귀의 조종을 받고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을 꾸짖고 쫓아내며 버리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탄 마귀까지 받아주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고 한 것처럼, 진리의 말씀을 잘 알아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그 뜻을 분별하여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믿는 사람이라면 속 사람이 깨끗하게 된, 마음과 양심이 청결한 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순수합니다. 아니 순수해야 합니다.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믿는 교리와 생활이 일치합니다. 입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믿는 자로서 하나님께 복종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진정한,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찾습니다. 마치 어두운 가운데 빛을 찾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는 믿지 않는 타락한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능력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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