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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11-08 (일) 08:2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2    
염려하지 말라 (눅 12:22-34)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돈, 재물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은 먹는 것, 입는 것 등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허락하실 줄 믿고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주제는 예수님께서 계속 반복하여 명령하시는 “염려(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2, 25, 26, 29절). 우선, 염려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해 주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기에 염려한다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22-23절)고 하셨습니다. 여기 “염려하지 말라(μὴ μεριμνάω)”의 원어적 의미는 ‘이미 되어진 일에 대하여 마음이 혼동되지 말라. 마음을 나누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다된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목숨(ψυχὴ, life)”의 뜻도 지정의와 영적인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이상 삶의 그 어떤 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약속과 돌보심을 믿지 못하는 죄인데, 어쩌면 성도들이 가장 자주 범하는 죄일 것입니다. 영어의 worry 라는 말은 구 독일어의 ‘strangle’ or ‘choke’의 ‘목을 졸라 질식시키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염려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어떤 다른 이유보다 우리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목 조르는 것이 염려일 것입니다. 염려는 성도의 정상적인 정신 상태인 자족(contentment)의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모든 성도는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고 한, 바울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자족은 오직 이 세상 모든 것의 주권자되시며, 다스리시고, 필요한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어지고,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땅의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고 하였고, “여호와의 광대하심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만유의 머리 심이니이다”(대상 29:11)고 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다 주께 속하였고, 앞으로 소유하게 될 것도 다 주께 속한 것이라고 한다면, 주의 것을 가져 간다고 해도 무엇을 염려한다는 말입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주장하십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도의 필요한 것을 다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자족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릴 희생제물을 준비해 놓으심을 보고 하나님을 묘사한 이름입니다(창 22:14).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삶의 필요는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 입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에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너무 풍족한 것들이어서 염려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오늘날 제 3 세계처럼 그 당시 Palestine 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이 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런데 목숨(life)이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며, 몸이 옷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23절).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중요한 것을 모르고, 덜 중요한 것에 온갖 신경을 쓰고 삽니까? 심지어 신자들까지 말입니다. 생명을 비롯하여 삶 전체가 주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고, 적게 주시던, 많이 주시던 모든 것이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안다면, 우리는 허락하신 모든 것을 감사하며, 주를 위하여 지혜롭게 사용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기에 염려는 불필요합니다. 24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느냐?’ 고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세 가지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1)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24절)고 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이 다 그렇듯이 한 마리의 새도 그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먹을 풍성한 자원을 허락하시며 잘 길러 주십니다.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욥 38:41)고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미천한 까마귀 한 마리조차 돌보시며 먹이시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을 돌보시며 먹이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북한에 많은 동포들이 굶어 죽어도 지하 처소교회 신자들은 한 사람도 굶어 죽는 사람을 못 보았다는 평양과기대 김진경 총장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순교는 하여도 말입니다.
물론 새도 가만히 앉아서 먹을 것을 받아 먹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아 다닙니까? 그러나 찾아 먹고 나서 다음에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배 터지도록 먹지도 않습니다. 새 장에 갇힌 새나 그렇게 먹어대지요.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을 가지고, 게으르지 않고 허락하신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열심히 일하여 우리의 필요를 공급 받는 것입니다.
2) 예는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25-26절)고 하십니다. 키가 더 커야 할텐데 혹은 오래 살아야 할텐데 염려한다고 키가 커지거나 오래 사는 것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 “키(ἡλικία, height or years)”라고 번역된 것은 년 수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건강을 유지하여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보려는 데에 온갖 신경을 씁니다. Exercise도 하고, 잘 먹되 조심하며 diet도 하고, 각종 영양제나 비타민도 섭취하며, 의사를 찾아가 정기검진도 하고, 상식적인 육체 관리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몇 년이라도 더 살려고 염려하며 한다면 쓸데 없지요. 물론 그런 노력이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지만, 하나님을 밀어 붙여서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염려한다고 오래 사는 것 아닙니다. 오히려 염려하기 때문에 생명에 지장이 있지요. 미국의 유명한 Mayo Clinic의 Charles Mayo 박사는 ‘염려는 혈액 순환과 심장, 선(gland)과 전체 신경조직에 영향을 준다. 나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죽은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염려로 인하여 죽은 사람은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3) 예는 들의 꽃을 비유로 옷 입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27-28절)고 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무리들 대부분은 아마 옷이 한 벌 정도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던 모양입니다. 야생화 중의 백합을 비유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관심과 돌보심, 예비해 두심 등을 말씀하십니다. 백합화가 자신 스스로 그렇게 아름다운 색깔을 내며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역사이심을 말하면서, 그 화려했던 솔로몬의 영광도 그것에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또한 금방 시들 꽃, 아궁이에 던져져 없어질 들풀도 그렇게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영생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관심과 사랑을 쏟으시며 입히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그런 염려를 하는 사람 가운데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신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작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28절)라고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구원 받는 믿음(faith)은 있는지 몰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지는(trust)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탄을 물리치시고,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심을 믿으면서도, 매일의 삶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허락하신다는 것을,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사소한 작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그 신실함을 믿지 못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며, 문제를 삼는 죄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내 주위 환경과 내 자아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강조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염려는 자동적으로 사라지게 되니 오직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0-31절)고 하셨습니다. 31절을 마태복음에서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였습니다. 이방인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염려한다면 이해가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염려한다면 말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소망을 이 땅에서 즐기는 일시적인 것들에 둘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 만을 생각할 뿐입니다. 물질주의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영적,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하나님이 없기에, 자기 자신을 위해 눈에 보이는 것 만을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들이 기껏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사탄이 조종하는 사람이 만든 신이기에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지라"(빌 3:19)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염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성도는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30절하)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입니다(빌 4:6). 성도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며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기 원합니다(롬 12:2). 바로 그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까닭은 이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 함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일에 우리의 삶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젠가 말씀 드렸지만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세가지 밖에 없는데 곧 하나님, 성경 말씀, 사람의 영혼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불쌍히 여겨 전도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또 그의 의라 함은 하나님의 의로우심, 거룩하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이 나타나야 합니다(벧후 3:11하). 사람들 앞에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마 6:1).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구체적인 예로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33-34절)고 하셨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염려하면서 돈,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쌓아놓는 보물은 낡아지지 않고, 도적질 당하지도 않고, 좀도 먹는 일이 없으니 하늘나라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돈, 재물을 어디에 사용하는가 보면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하여 전혀 신경 쓰지 말고, 일하지 말라’ 라는 뜻이 아닙니다. 게을러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후 3:10)고 하였습니다. 다만, 염려(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 같이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들 더 가지려고 애쓰고 염려하지 말고, 더 중요한 것들,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필요한 것은 채워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무슨 염려를 갖고 오신 분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주(Lord), 주인으로 믿습니까? 그러면서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신뢰하는 그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염려하시면 정말 쓸데없는 불필요한 염려입니다. 다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믿음과 염려는 같이 가는 단어가 아닙니다. 염려와 같이 가는 단어는 두려움입니다. 염려하는 사람은 두려워하게 됩니다.
문제는 신뢰입니다. 정말 믿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내 죄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 분으로 믿습니까?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분으로 믿습니까?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오늘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으로 믿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온 우주의 주재, 주권자입니다. 여러분의 주인이십니다. 아버지되십니다. 내일을 책임질 영원한 분입니다. 모든 것을 맡기세요. 오히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세요. 모든 것 다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생명은,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 땅의 육체를 위하거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선하신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이자 신학자이신 John Stott 목사님은 말씀하시기를 ‘마치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야망(ambition), 곧 자신을 위한 것과 하나님을 위한 것이 있듯이, 결국에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사는 사람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합니까? 무엇을 위하여 사십니까?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또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 모든 것을 더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확실히 믿고 신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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