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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11-26 (목) 06:5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785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17)


아마 제가 목회하면서 가장 질문을 많이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개개인 마다 또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은 다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공통된 하나님이 뜻이라고 한다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 5:16-18)고 한 것처럼, 성도는 언제나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고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매순간, 매일 아니 일년 내내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내일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지난 주일 추수감사주일로 지냈습니다. 잠깐 언급하였듯이 1620년 청교도(Puritans)들이 성경적 신앙의 자유를 찾아 May Flower 라는 배를 타고 이 미국 땅으로 이민 와서 메사추세츠 주의 Plymouth 에 도착하여 정착을 했습니다. 그들이 그 해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가을에 처음 얻은 수확물을 놓고 감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곡식과 과일들을 가지고, 처음에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 인디안들을 초대하여 축제를 벌이며 하나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그러나 본래 감사절의 기원은 청교도들에게 있지 않고, 감사절을 명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택하신 백성들을 수많은 원수로부터 보호해 주시며(시 44:8), 궁핍한 자를 구원하시고(시 109:31), 죽음에서 건져주시고(시 142:7), 그리고 공의로 판단하시어 행악자를 심판하시는(시 52:9) 하나님은 야곱에게 단을 쌓으라고 명하셨었습니다(창 35:1). 물론 감사의 제단입니다.
또한 출애굽한 후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세번씩 꼭 감사의 예물을 바치도록 명령을 내리셨습니다(출 23:14).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세번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맥추절뿐만 아니라, 첫 번째의 감사는 유월절에 행해졌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감사가 바로 오순절(칠칠절)이라고도 불리는 맥추절에 행하여졌습니다. 이는 보리와 각종 곡식을 추수하고서 드리게 되는 감사제였습니다. 또한 세 번째 감사는 수장절(장막절)이라고도 불리우는 초막절에 행하여졌습니다. 이는 출애굽 당시의 초막생활을 기념하여 가나안 땅에서 기거하면서 이 절기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 7일간 머물면서 수확한 예물을 드리는 감사제로 모든 과실을 거두어 들이고 나서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늘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자입니까? 물론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실감하면서 절로 감사가, 찬양이 나오지요. 그럴 때에도 감사치 못한다고 한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이지요. 짐승만도 못하지요. 그런데 아무런 좋은 일이 없을 때,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는 감사가 조금 어려워집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평범한 것들을 잊기 쉽지요. 그런데 더욱 감사가 어려운 때는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경우입니다. 환란을 만날 때입니다. 이런 때에는 감사는커녕 오히려 불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는데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절대주권을 믿으며 감사하는 자가 참된 성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은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헌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면서, 옛 사람과 옛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라고 강조합니다(골 3:10). 그리고는 그 새롭게 입은 옷을, 새 성품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함께 읽은 15절부터 시작하여, 16절, 17절에 이르기까지 감사하는 자가 되어 감사하라고 합니다.  감사하는 자의 특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자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안이 마음을 주장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고 합니다. 성도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다(롬 5:1).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기에 위로부터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잠깐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또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안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주위 환경이 혼란한 속에서도 내면의 고요함을 뜻합니다. 환란 중에서도 주님을 신뢰함으로 마음과 정신이 차분해지고 침착한 상태를 뜻합니다.
이 평안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될 때에 근심도 사라지고,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우리의 태도와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다른 형제, 자매들과 평안의 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과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 몸인 줄을 알고 그들과 늘 화목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하)고 한 것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하였습니다. 염려와 근심, 두려움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말씀하였습니다.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아뢰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까? 그 평안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그 평안이 여러분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다스리게 하십시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풍성히 거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절) 하였습니다. 즉 우리 안에 주님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자가 감사하는 자입니다. 여기 ‘거하여(ἐνοικέω, dwell in)’라는 단어의 뜻은 마음에 자리잡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우리가 집을 구하여 거기 살듯이 말입니다. 그 크신 사랑과 자비, 은혜와 긍휼의 말씀, 좋은 소식의 구원의 말씀이, 약속의 말씀이 심령에 풍성한 자리잡은 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그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함께 시와 찬미(hymns)와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 시는 시편을 비롯한 구약에 나오는 수많은 시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찬미는 하나님의 높이는 송영으로 초대교회 때에 주로 불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송축하는 빌립보서 2:6-11 이나 골로새서 1:15-20 등 말입니다. 신령한 노래는 간증을 강조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들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로 이런 종류의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다는 것을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말씀이 그토록 귀중하고 보배로운 보석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귀한 말씀이 나를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 말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중세 암흑시대에 평신도들에게는 성경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난기 전까지 그들은 무지몽매(ignorant)하여 잘못된 천주교회의 가르침에 짓눌려 살았던 것입니다. 아니 그 이전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약성경 밖에는 없었기에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영적으로 얼마나 큰 축복의 삶을 사는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에게 성경이 없다면, 어찌 주님의 구속사역과 그 놀라우신 성품들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성도로서 삶의 지침서가 없다고 한다면, 자동차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차를 사고서 Owner’s Manual 이 없이 차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불안하게 타고 다니며, 고장이 나면 속수무책인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혹은 지도, 네비게이션이 없이 어디를 가야한다면 얼마나 방황하겠습니까? 그래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충만의 뜻은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여 그 말씀이 여러분 속에서 주장하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자주 읽고, 듣고, 공부하며, 묵상할 때, 잘 분별할 때에(딤후 2:15), 그 말씀을 굳게 잡을 때에(빌 2:16)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동행하게 됩니다(요 15:5).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말씀을 많이 알고 적게 알고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성경 한 구절을 알아도 그 말씀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더욱 하나님에 대하여 점점 더 깊게 알아간다면 감사하는 자입니다.

셋째는,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자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고 하였습니다. 즉 성도들은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죽고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지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입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나의 말과 행동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비슷하게, 주님을 닮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원본을 복사한 것처럼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진짜 믿는 자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함께하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십니까? 그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름 앞에 세상 모든 것이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빌 2:10). 사탄도 지고 맙니다. 그 이름을 의지하면 승리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감사하는 자로서 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까? 오늘 말씀은 감사하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에, 약속하신 대로 허락하신 평안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평안이 교우들과 한 몸으로 부르심의 은혜를 깨닫고 화평함을 이루며 감사하는 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거함으로 서로 말씀을 나누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알게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그 성품들을 인하여 감사한다고 합니다. 또한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하면서, 그 이름을 인하여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늘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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