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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11-29 (일) 11:1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42    
기회를 놓치면 영영히 후회합니다 (눅 12:49-59)


어쩌면 우리는 과거에 어떤 좋은 기회를 놓쳐서 후회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금방 잊혀지고 말기에 아쉬움이 별로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아서 나중에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2장에 들어와 예수님께서 감추어진 진리가 어느 날 드러나게 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1-12절). 그리고는 삶의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여 돈이나 재물을 사랑하고 산 인생은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13-21절), 그런 것이 많이 없다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22-34절). 이어서 구약에서 예언된 대로 메시아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한 약속을 믿고 깨어 있어 주님을 다시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35-48절).
이렇게 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계획을 말씀하시고, 오늘 본문에서는 앞으로 있을 일들을 예언하시면서 인생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선용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큰 그림을 보고,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 옳은 결정을 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주십니다. 경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49-50절)고 하십니다. 여기 ‘불’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는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한 후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고 하였습니다. 헌데 이 심판의 불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받을 불 세례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죄 없으신 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는 심판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 시간이 가까이 왔기에 예수님이 답답한 것입니다. 아직도 못 깨닫고 있는 제자들과 무리들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시려는 것과 자신이 받을 고난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우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나중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주로 믿으셔야 합니다. 믿지 않으시면 훗날 영영히 후회하게 됩니다. 불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제자들이 겪어야 할 분쟁, 아픔을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51-53절)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그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4-37) 하였습니다. 아니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사 9:6),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무슨 말씀입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대망하고 살았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을 시켜주고, 의와 평강의 영원한 나라를 세워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메시아를 평강의 왕으로 알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전에 맛보지 못한 주님께서 주시는 내적 평안을 경험하였습니다. 복음은 정말 평화의 소식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과의 평화를 허락하였습니다. 이 평화를 맛본 제자들이 다른 제자들과도 평화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악하고, 타락한 인간의 죄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평화는 계속 배척을 당하고,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까지 미쳐서 때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한 가정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내외, 딸 다섯 사람이 있다면 그 중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분쟁 혹은 불화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분쟁(불화)한다"는 것은 둘로 자른다는 뜻으로 때때로 완전히 영영토록 분리됨을 말합니다. 어떤 때 신자들과 불신 가족 사이의 틈은 평생 화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제자는 고통스럽지만 그 불화의 대가를 기꺼이 치릅니다.
하지만 가끔 남편들이나 아내들이 그들의 배우자와의 틈이 두려워 눈치를 보느라 예수께로 온전히 나오지 못함을 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거슬리는 것이 두려워, 부모는 또한 자녀들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 참 제자가 되지 못함을 봅니다. 물론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어 온 가족을 주께로 인도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 두려움에 대하여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한 사람이 참 제자가 되면 불신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나 부모에게 미움이 되어 오랫동안 고통 가운데 살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한 영혼이 구원을 받고, 제자가 되어 주님의 주권 하에 삶을 맡기는 것이 너무도 큰 일이고, 중요한 것이기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그 어떤 것이라도 치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듯이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라도 주님보다는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참 제자는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 버릴 줄 아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식구들까지 말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가족을 정말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덜 사랑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지 않는 남편을 전도하기 위하여 비록 계속 핍박을 받으며 고통 속에 살지만 남편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헤어지자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고전 7:14-15). 그 성도의 평안을 위하여 갈라져도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땅에 완전한 평화의 나라를 세우시고, 평강의 왕께서 친히 다스리시기에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허나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내적 평안을 주는 복음은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참 제자들은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어떤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주어지지만, 이 믿음이 진실된 것이라면 주께 헌신되어 있음으로 이 세상의 어떤 마귀의 역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성도는 그 가족을 희생적으로 사랑합니다. 참 제자인 남편과 아내는 끝까지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으며, 자식들에게 헌신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자인 자녀들은 부모들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돌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 제자의 주께 대한 헌신은 그런 가족 관계보다 훨씬 더 깊고, 넓고, 뜨거운 것이어서 만약 가족들 때문에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런 가족들조차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옳은 일을 할 기회를 놓치는 자들을 경고합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54-56절)라고 하십니다. 당시 팔레스틴 사람들이 날씨를 예고하는 징조를 알고 있음을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그곳의 비가 오는 경우는 지중해의 습도가 높은 바람으로 오기에 서쪽인 지중해 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비가 올 것을 예상했습니다. 또한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곧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기에 더운 날씨를 예상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지금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구약 성경에 능통하고 오실 메시아의 표적에 대하여 잘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일반 사람들도 일기를 예측 할 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많다고 하는 너희들이 그렇게 영적으로 무지하며 소경이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는지 왜 분별하지 못하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재판을 받기 전에 고소한 자와 화해하는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57-59절)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고소를 당하여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지혜로운 자라면 재판 받기 전에 고소한 자와 화해할 것입니다. 그러면 감옥에 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화해하지 못하고 재판을 받아서 관원이 옥에 가둔다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즉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재판을 받아 둘째 사망의 영원한 불에 들어가지 말고, 지금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옳다’는 뜻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그 전문지식으로 세상 일들을 예측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세태를 판단하고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는 그토록 무지할 수가 없습니다. 주식 시장이 어떻게 될 것인지, 달러화가 오를 것인지 내릴 것인지, 부동산 업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옷의 유행이 어떻게 될 것인지, 교육 정책이나 기타 정부의 정책 들에 대한 예측을 합니다. 병 치료를 연구하는 의학자들도 갖가지 병과 그 치료에 대하여 예측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준비하게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하여서 아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표적을, 징조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 .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6-7, 11-12)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런 징조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계 역사상 아마 오늘날 가장 난리와 전쟁, 기근과 지진, 거짓 선지자인 이단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 불법과 자기 사랑에 극치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딤전 4:1) 라고 말씀하신 외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 3:3-4)라고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마지막 때에 호색과 탐심으로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고,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면서 성도들을 희롱하고 재림이 어디 있느냐고 비난한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종말이 가까올수록 지도자들이 세계 단일정부 구성이라던가, 종교 연합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붉은 용, 적 그리스도의 모습이 등장한다고 합니다(단 2:7; 계 13장, 17-18장). 이런 모든 징조가, 표적이 세상 끝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너무 늦기 전에 결단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0-31)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역사상 살았던,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입니다.
사람들이 일기예보를 듣고 내일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고 하면 준비를 하듯이, 조금만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고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의 징조를 보면 준비를 할 것입니다. 지금 살아있을 때, 말씀을 들고 선택할 기회가 있을 때, 옳은 것을 깨달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정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혹시 아직도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지 않고 미루는 분이 계십니까?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그 시간을 맞으렵니까? 재판장 앞에서 심판 받기 전에 죄를 해결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십시오. 죄가 없는 곳, 눈물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미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로 믿고 사시는 여러분!
제자들은 그 날이 올 때까지 이 세상에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원수처럼 못살게 굴 것입니다. 분쟁과 불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뒤로 물러서면 안됩니다. 그들도 사랑해야 하지만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우상이 됩니다. 제자로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 때문에 그들이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다만 믿음을 지키면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래도 안 된다면 어찌합니까?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주님에게 돌아올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다 아십니다. 눈물을 씻겨 주시며 위로하실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시고 더욱 주님을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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