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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12-06 (일) 06:3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88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눅 13:1-9)


무신론자들에게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악(evil)에 관한 것입니다. 왜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하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선하지 않던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않느냐? 진작에 악을 제거해서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믿는 자들, 선한 자들,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이 사탄 마귀에 의하여 그런 고통을 받을 때는 말씀을 잘 몰라서 하나님을 의심하며 그렇게 물어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답하기를 1)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테스트하기 위하여(벧전 1:6-7), 2) 우리 믿는 자들이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하여(고후 1:8-9), 3) 하늘의 소망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롬 5:3-5), 4)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히 12:5-11), 5)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을 보여주기 위하여(시 103:13), 6) 연단을 통해 더 크게 쓰임 받도록(약 1:2-4), 7)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고후 1:4-6)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헌데 무신론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롬 3:23). 그리고 죄에 대한 결과가 고통과 죽음이라는 것입니다(창 3:17-19; 롬 6:23).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 살펴본 내용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서쪽 지중해 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비가 올 줄 예상하고, 남쪽 아라비아에서 바람이 불면 심히 더울 것을 예상하듯이, 오늘날 일기예보를 듣고 내일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고 하면 준비를 하듯이, 조금만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고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의 징조를 보면 마지막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준비를 한다고 하였습니다(눅 12:54-59).
이 말씀을 하실 때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물이 섞었다고 예수님에게 고합니다(1절). 유대인들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던 빌라도 총독이 아마 유월절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사를 드리려고 찾아온 갈릴리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죽여서 제물에 그 피를 섞은 모양입니다. 아마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떠들썩 하였겠지요. 물론 이 질문을 하는 그 사람의 동기는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한 갈릴리 유대인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그렇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의 상식은 남다른 재앙을 당하는 사람은 죄 때문이라는 인과응보 사상이었습니다. 마치 욥이 엄청난 재앙을 만났을 때에 그의 세 친구가 욥에게 이야기했듯이 말입니다. 욥이 숨겨둔 죄가 있어서 그런 재앙을 당했다고 말입니다(욥 4:7, 8:20, 22:5-10). 생각이 그러니까 죽은 갈릴리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죄가 많아서 그렇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은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2-3절)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죽은 자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데, 앞으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들도 죄인이라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이 선언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사건 하나를 언급합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4-5절)고 하셨습니다. 실로암 연못이 있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치어 죽은 사고를 말씀하십니다. 앞서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질문의 답을 또 반복해서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도” 입니다. 자신들은 살아있어서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너희도 마찬가지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한다. 심판은 반드시 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눅 12:59)고 하신 말씀처럼,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결코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예를 든 것뿐입니다.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갈릴리 사람들이,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이 꼭 죄 때문에 그렇게 죽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갑자기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마치 9. 11 사태로 죽은 사람들이나, 갑자기 쓰나미가 밀려와, 태풍이 불어 죽은 사람들이나, 지진이나 대형 화재로 인하여 죽은 사람들이나 무론하고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그렇게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의 징조를 보면서, 마지막 심판이 있음을 생각하고 회개하지 않았으면 지금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선포한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4:17)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받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아 그렇게 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예기하면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늦추시는 이유와 기다려도 회개의 열매가 없으면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6절)고 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과수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는 이유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열매가 안 열리는 것입니다. 사실 팔레스틴의 무화과 나무는 높이가 35ft까지 크게 자라며 손바닥 크기의 잎사귀를 갖고, 1년에 3번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6월에 열리는 여름 무화과(사 28:4, 렘 24:2)와 늦가을 무화과(렘 8:13, 29:17), 겨울에 열리는 초록색 무화과(아 2:13)가 등장합니다. 때때로 무화과는 싱싱한 채로 먹거나, cake 를 만들어 먹거나(삼상 25;18, 30:12), 피부병에 약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사 38:21). 그래서 주인이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7절)고 하니, 과원지기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8-9절)고 한 것입니다. 3년을 기다렸는데도 열매가 없었건만 그래도 과원지기가 자비를 베풀어 시간을 1년을 더 준 것입니다. 과원지기가 그 주위를 두루 파서 거름을 주면서 한 해를 더 기다려보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열리면 그때는 찍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땅이 낭비이니까요.
실제로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종려주일에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셨다가 베다니에 가셔서 하루를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다가 시장하셔서 길가의 무화과 열매를 따먹으려고 했다가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저주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21:18-20).
 
이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지금 회개하지 않는 죄인일지라도 당장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더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하였고,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고 한 것처럼, 인자하신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는, 그렇다고 해서 마냥 기다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다만 잠시 심판이 보류되고 있을 뿐, 무한대로 기다리시지 않습니다. 그 한계가 무화과 나무에게는 4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은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죽고 나서 회개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게는 30년, 40년, 50년, 60년, 70년, 혹은 80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죽음이 찾아오고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과거에 나라를 잃어버렸던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회개하지 않아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했건만, 솔로몬 죽음(주전 930년경)이후 나뉘어진 북왕국 이스라엘은 200여년을, 남왕국 유다는 300여년을 기다려주었지만 회개하지 않아서 나라가 주전 722년, 586년에 각각 망했습니다. 그 후 70년 만에 본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지만 여전히 나라는 페르시아, 헬라 제국 아래 있다가, 로마제국 아래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도 회개를 촉구했지만 듣지 않자, 주후 70년 유대인들이 독립하고자 혁명을 일으키며 싸우던 그들이 디도 황제의 로마군에게 패하여 헤롯에 의하여 단장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고, 주후 135년에 두 번의 전쟁에 패하여 완전히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택했던 이스라엘 나라도 그렇듯이 개인적으로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만약 내가 만나는 재앙이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요, 심판이라고 생각하시면 회개하십시오. 서론에도 언급하였듯이 사실 인간이 만나는 재앙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회심)해야 합니다. 회개할 시간이 앞으로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미루지 마십시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인자하신 하나님은 회개할 시간을 주십니다. 그러나 길지 않습니다.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자를 향해 바울은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롬 2:4)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회개(회심)하지 않으셨다면 하십시오.
올바른 회개는 죄와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반쪽 회개만 하면 회개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죄를 사하시는 구세주임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나서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로 참된 회개의 열매입니다. 이전에도 예수님께서 여러 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마 3:8, 눅 3:8). 새로운 피조물이 된 후에 삶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성령의 열매들이 있어야 정말 회개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변화된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무화가 열매가 전혀 없다면 주인이 찍어 내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죄를 지적하며 편지를 보내었더니 교인들이 근심을 하자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후 7:9-10)고 하였습니다. 처음 구원 받을 때에 회개(회심)하여 돌이켰다면, 인생의 항로를 바꾸셨다면 이미 영생을 받아 누리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도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성으로 인하여,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여 죄를 짓게 되면 즉각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처음 믿은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습니다만,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깨어집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면 우리의 삶은 힘들어집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평강과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만나는 재앙이, 고통이 다 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위하여 당할 수도 있습니다(요 9:3).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의 시간을 통과할 때에 하나님의 주권 하에 선한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훈련과 연단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점점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늘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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