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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12-20 (일) 05:0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51    
성찬을 위한 성탄 (막 10:45)


코로나바이러스로 얼룩진 2020년이지만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오늘 성탄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또한, 정말 오랜만에 성찬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찬은 성탄이 없었으면 안 될 일이었고, 예수님의 성탄은 이 땅에서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기에 둘은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성찬을 위한 성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을 살펴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들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35절).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37절) 합니다. 즉 주님이 이제 왕이 되시면 하나는 좌의정, 하나는 우의정으로 세워주어서 권력을 누리게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 권력을 요구하는 그들을 꾸짖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지금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38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그들이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받으셔야 할 고난의 잔과 십자가 죽음의 세례를 너희가 받겠느냐고 물으니,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면서 그들이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앞으로 그렇게 될 날이 오겠지만, 자신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일이라고 하십니다(40절). 누구의 것이 되든지 예비된 자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다른 10제자들이 듣고 화를 내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아래 사람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그들이 잘 알지만(42절)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43-44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는 자들의 경건은 밑바닥에서 섬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기 원하면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는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절)고 하셨습니다. 여기 ‘섬기다(διακονεώ, serve)’는 여러분이 잘 아는 단어 집사(διάκονος, deacon)의 동사형입니다. 즉 우리 예수님의 성탄의 목적은 많은 사람을 섬기되, 자기 목숨까지 드리는 대속물, 희생제물이 되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살기 위해서 태어나지만, 예수님은 죽기 위하여 태어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로마 병정들에게 잡히시던 밤에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마 26:26-28; 막 14:22-24; 눅 22:19-20, 고전 11:23) 우리에게 동참하라고 하셨습니다.
잡히시던 그 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어린 양을 잡아 먹으며 출애굽의 구속을 기념하는 밤이었습니다. 장소는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이었습니다.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렇게 서로 섬기라고 교훈하신 후였습니다(요 13:1-15).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고전 11:23-24) 하였습니다. 이 떡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하신, 자신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으며 성찬의 떡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주님과 영적으로 하나되어 교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수이신 예수님을 마시는 것이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요 4:10; 7:37-39).
계속하여 포도주 잔을 부어 나누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하셨습니다. 즉 포도주 잔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의 의미는 첫째,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 전하기 위함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내 죄 때문에 죽어준 사람이 없습니다. 부모도, 남편이나 아내도, 사랑하는 친구도,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죽어준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의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랑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사랑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기 위하여 성찬예식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성찬식을 행함으로 이 고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다시금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여도 이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할 때 죄를 깨닫게 됩니다. 겸손하게 됩니다. 감사가 일어납니다. 헌신할 마음이 생깁니다. 주를 위하여 교회와 이웃을 섬기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 귀한 십자가 죽음의 사랑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합니다. 예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된 부부가 따로 따로 고통을 당할 수 없고, 함께 고통을 당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 10:16)고 바울은 역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에 동참한다는 뜻입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예함을 뜻합니다. 잔을 대하는 것이 새 언약의 표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피의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언약(약속)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목숨을 걸고 이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죄인 중에 괴수와도 같은 우리들을, 사탄의 종으로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 중에 거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기에 그 당하신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자녀답게, ‘그리스도인’  답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일 세상 욕심이나 다른 유혹 때문에 이 믿음을 버리면 저주를 자초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 피의 언약을 저버려서는 안됩니다. 아니 성령을 받은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생명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으로 훗날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신부들이 신랑되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언약을 맺었는데 저버릴 수 없습니다.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탄과 성찬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성찬식에 참여하면, 마치 영적 양식처럼 은혜가 넘쳐서 우리의 영혼에 힘과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삶의 의미를 잘 깨닫게 해 줍니다. 더욱 하늘나라 소망을, 주님 다시 만날 날에 대한 소망을 새롭게 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7-29)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선 성탄과 성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셨는지, 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만 했는지의 의미를 깨닫는 자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은 입교를 한 자만 성찬에 참여하도록 합니다. 물론 세례를 받지 않고서도, 입교를 하지 않고서도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만, 기준(guideline)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잘 아는 사람 같으면 세례를 받거나, 입교를 했어야지요.
그리고 마음에 준비를 하고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다가 누구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화해하고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3-24). 초대교회 당시에는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을 앞두고 누구와 원한 관계가 있거나 사소한 생각의 차이로 갈라지게 되었다면 화해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원한과 미움이 가득차 있는 채로 성찬을 대한다면 이것이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뿐이니라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전에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또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실수나 죄가 있다면 주님 앞에 용서를 확신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임하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내가 믿음으로 성찬에 임함으로 이런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한 예식을 행하기에 앞서 참맘으로, 겸손함과 경외심으로 준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자신을 살피며, 참회와 겸손한 고백과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함으로 정결케 하여야 할 것입니다. 혹시 너무 우리들이 세상적이거나, 정욕적이어서 잘못한 일들이 있었으면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회개하십시다. 또 세상 일에는 쉽게 관계하고 열심을 내면서도 신령한 일들에는 무관심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열심을 내지 못했다면 그것도 회개합시다. 세상적인 축복은 악착같이 받으려고 부르짖으면서도 신령한 축복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구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회개합시다. 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으로, 말로 남을 아프게 한 일이 있거든 그것까지도 회개합시다. 그리고 세례 받을 때의 서약, 교회에서 직분 받을 때의 서약을 할 때에 각오에 비하여 우리의 현실과 실상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면,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도 회개합시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로서, 형제 자매로서 부족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를 구합시다.
사실 성찬에 임하는 것은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형편이나 처지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 하나님 입장이 되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정죄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기쁨을 빼앗아 가십니다. 몸의 건강까지 빼앗아 가시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댈지언정 미워하거나 복수하지 마십시오.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잊어 버리십시오. 성찬을 대하면서 나도 허물이 많은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다 용서해 버리십시오. 그래야 나도 영적, 육적으로 건강하고 삶이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또 나의 부족한 부분도 용서하십시오. 너무 완벽주의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성탄주일에 동참할 성찬예식을 앞두고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는,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죽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하나가 되었기에 그 십자가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고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정결한 신부로서, 자녀로서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 죽음을 기억합시다. 그 죽음을 기념합시다. 그 십자가를 전합시다. 다시금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결심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준비하십시다. 우리 자신을 살펴봅시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여 아직도 원한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합시다. 용서할 마음을 달라고 합시다. 세상적인 것, 정욕적인 것, 교만한 것,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 실수한 것까지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임합시다.
올해도 다 지나갑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마음과 생각들을 다 쓸어버리고 새해를 맞기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큰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실 것입니다. 다시금 우리 주님 성탄이 우리를 위한 십자가 구속과 부활의 전주(prelude)였음을 생각하면 힘을 내고 일어서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면서 세상을 이길 능력과 기쁨을 주시고,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의미’ 있는 성탄절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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