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어 올해 표어, “주님 주시는 평안과 소망으로 선교적 삶을 살자” 라는 주제로 지난 세 주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다시 작년에 이어 누가복음 강해를 계속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세례 요한은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며 선교적 삶을 살았음을 살펴보며,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야 함을 말씀드렸는데, 누가복음 21장의 전체 문맥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며, 하나님을 반역하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 이 세상 땅과 하늘에서의 징조들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5-11절). 그리고 성도들이 다른 종교인들과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핍박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12-19절).
오늘 본문에서도 두 가지 징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20-24절). 물론 6절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는데,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예루살렘이 망하기 때문에 성전이 파괴가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20절)고 하였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이중적인 예언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일차적으로 가까이 주후 70년 경에 로마 디도 황제의 군대들에게 포위를 당하다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으며, 또한 나중에 일어날 아마겟돈 대 전쟁의 예언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도성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 예루살렘을 로마 군대가 에워쌀 때 멸망이 가까운 줄 알고 대처해야 하는데, 유대 땅에 있던 자들은 산으로 도망해야 하고, 예루살렘 성내에 있던 자들도 도망해야 하며, 촌에 있던 자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21절).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22절)고 하였습니다. 그 동안 예루살렘은 세례 요한과 같은 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성전을 장사하는 사람들로 더럽혀졌고,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외식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종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신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예루살렘이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살펴보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 중 가르치실 때 바리새인들이 그에게 떠나라고 했더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눅 13:34-35)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그 재앙과 고통이 임신한 여인들과 젖먹이는 어머니들에게까지 임하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23절) 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쟁의 위험에서 가장 쉽게 당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그들에게 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땅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 백성들에게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24절)고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부정한 이방인들, 우상숭배자들이 예루살렘을 다스리며 거기 남은 모든 것을 짓밟을 것입니다.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주후 70년 경 독립전쟁을 벌인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에 의해 약 110만명이 죽었고, 9만 7천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징조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권자로서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루살렘의 멸망도 예수님이 이미 30-40년 전에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다만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입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하여 설명할 때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고 한 말씀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즉 구약의 오랜 기간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펼쳐 오셨으나, 이스라엘이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끝내 완악하게 회개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되,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온 만방의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셔서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 혹은 이방인이라는 차별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7-28)고 한 것입니다.
즉 24절의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서 그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까지를 뜻하는 것입니다. 믿을 자가 다 믿게 될 때까지 재림의 징조가 있다가 결국 수가 다 채워지면 재림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행 1:8). 복음의 증인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선교적 삶입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또 다른 징조는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25-26절)고 한 것입니다. 이는 11절에서 말한 “하늘의 징조”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여기 일월 성신의 종말의 징조는 구약의 언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사 13:9-10), 또는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워 별로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우며 달로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두움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겔 32:7-8) 라고 한 것처럼, 해와 달과 별들이 경고를 줄 것입니다. 마태나 마가는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 24:29; 막 13:24-25)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다의 파도도 미친듯이 날뛸 것입니다. 마치 쓰나미가 몰려오듯이 말입니다. 한 마디로 주님의 재림 전에 수많은 천재지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2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무서워하며 기절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죽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세상 끝에 반드시 있을 징조를 알지 못하기에 준비하지도, 믿고 의지할 것도,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비참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절)! 결국 세상 끝날이 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 오십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큰 영광 가운데 말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는 것을 제자들이 쳐다 보고 있을 때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고 한 것처럼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온 땅이 볼 수 있게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탄생은 은밀하고 초라했지만, 재림은 공개적으로 영광스럽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 때 재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두려워 대경실색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재림을 준비한 자들은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28절)고 하신 것입니다. 즉, 이런 종말의 징조가 나타날 때 너희들은 어떻게 반응을 하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떨며 머리를 숙이지 말라고 합니다. 똑바로 서서 머리를 들라고 합니다. 드디어 온전한 구속의 날, 죄를 모르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는 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핍박은 끝날 것이고, 구속자이신 예수님이 충만한 영광으로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은 우리 믿는 자들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듯이 주님을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증인으로 성실하게 선교적 삶을 살은 자들에게 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제서야 왜 이 땅에 살면서 그 모든 고난을 견뎌야 했는지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과거에 신령한 약속과 은혜를, 복을 받았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심판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우리는 어떠합니까? 과거에는 신앙생활 잘 해서 은혜와 복을 받았었는데, 요즘에는 없나요? 예수님 당시의 유대종교인들처럼 선택받은 자인데, 이 정도면 괜찮지 하면서 자만하고 있지는 않나요?
또한 예수님이 재림의 징조들을 미리 알려주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재림하셔도 하나도 무섭지 않고 담대히 머리를 들고 맞이하실 수 있으십니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감격스럽게 주님을 만날 소망이 확실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13) 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재림을 준비하며, 다시 만날 주님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이라면, 소망이 확실하다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godliness)으로 그 날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구별된 삶과 믿는 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경건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곳에서 선교사의 삶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만, 우리 주위의 인생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의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혹시 너무 안이하게 우리의 친지들이나 이웃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요? ‘괜찮겠지. 과거에 그래도 예수를 믿었었는데, 택자라면 내가 전도하지 않아도 믿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나중에 주님 만나면 뭐라고 하실 것인가요?
필요할지 모릅니다만, 우리 주위의 인생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의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혹시 너무 안이하게 우리의 친지들이나 이웃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요? ‘괜찮겠지. 과거에 그래도 예수를 믿었었는데, 택자라면 내가 전도하지 않아도 믿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나중에 주님 만나면 뭐라고 하실 것인가요?
정말 우리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종말 앞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천국 소망이 확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평안과 소망으로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주님의 빛과 사랑을 나타내기 원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을 낭비하지 않기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