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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3-13 (일) 02:5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559    
이 땅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눅 22:39-46)



우리의 인생 가운데 큰 괴로움과 고독을 느끼며 번뇌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때때로 그런 시간을 맞으며 슬퍼하고 힘들어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지는 않는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33년 삶 가운데 가장 힘든 시간을 맞이하여 고뇌가 가득찬 가운데 마지막으로 기도하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는 사건으로, 누가는 명시하지 않지만,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마 26: 36-44; 막 14:32-42).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William Barclay는 “진실로 우리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한다”  라고 하였으며, D. A. Carson 은 “마치 주님의 죽음이 독특하듯이, 그의 고뇌도 독특하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 앞에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 적용입니다.

지난 주일에 제자들이 이제 곧 모두 다 자신을 버리고 부인할 것을, 특히 자신만만했던 베드로도 새벽 닭 울기 전에 세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심으로 나중에 회복이 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눅 22:31-32). 그리고 그들이 당할 어려움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36-38절).
이제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준비를 하십니다. 아마 정기적으로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던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39절)라고 누가는 기록합니다. 목요일 밤 자정을 넘긴 한 밤중으로 생각됩니다.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 북쪽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러서 기도할 준비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40절)고 하십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11제자들 다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7-38)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떠나서 돌 던질 거리만큼 떠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십니다(41절). 예수님 마음이 심히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이 되어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했으면 땀이 나서 땅에 떨어지는데 피방울 같았다고 합니다(44절).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님이 기도하실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합니다(43절).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기도하시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네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리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예수님의 속성 가운데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죄는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성령의 조명이 아니면 이해하고 믿기가 어렵지요. 삼위일체 교리처럼 말입니다. 복음서를 그 동안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구세주로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그 증거를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이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서 피곤하기도 하셨고, 금식하신 후에 굶주리기도 하셨고, 슬퍼하시면서 울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도 예수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7, 38) 라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고민하고 슬퍼하며 고뇌에 가득찬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십니다. 마치 우리가 인생살이 가운데 어려움을 만나 고민하고 슬퍼하듯이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그 어떤 고난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자신은 무죄한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벌을 받으시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것을 “이 잔(this cup)”으로 표현하셨습니다(마 26:39).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는 성경적 비유입니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시 75:8)고 하였고, 이사야 51:22에서는 “나의 분노의 큰 잔”이라고 하였으며, 예레미야 25:15에서도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가지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받아야 될 진노의 잔을 대신 마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유는 기도가 중요한지 알면서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며 살고 있습니까? 알면서도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쉬지말고 기도하라”(데살전 5:16),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구하고”(엡 6:18) 하였습니다. 헌데 특별히 큰 고민과 슬픔에 있을 때에 기도해야 합니다. 평소에 정기적으로도 기도하셨는데, 예수님께서 그럴 때에 더욱 기도하셨습니다. 힘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야 더욱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도 그 어려움을, 고통을 하나님 아버지께 가지고 나아와 간구하였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강하게 하셨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도왔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1)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여” 하고 부르짖었습니다(42절). 물론 예수님께도 기도할 수 있고, 성령님께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삼위의 하나님께 다 가능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 라고 하였듯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4:36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적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부르는 ‘아빠’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충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하나님의 이름(Yahweh or Jehovah)을 함부로 부를 수도 없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들이 듣기에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이었습니까? 오늘날도 많은 신자들이 너무 하나님을 몰라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놓치고, 기도를 힘써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문제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성경 66권에 나타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에게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람이 만든 신입니다. 그런 헛된 신, 죽은 신에게 기도하고 응답이 있으리라 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지요. 물론 사탄이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형식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진솔하지 못한 형식적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지요.
(2) 효과적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에도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버림을 받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 라고 기도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 외에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길이 있으시면 그렇게 해주시되, 그것은 나의 원함이지만,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세요’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기도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우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관심을 첫째로 두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주의 기도 중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바로 우리의 관심과 초점이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 일치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삶에 구체적인 뜻을 다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삶의 원칙,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어떤 기도는 끈기있게 해야 합니다.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귀머거리도 아닌데, 한번 기도했으면 되었지 뭐 계속해야 되느냐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오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마태는 기록하기를,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마 26:44) 라고 하였습니다. 즉 똑 같은 기도를 세 번 반복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을 기도하였습니다(고후 12:8). 물론 응답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하였기에, 그것을 고린도교회에 간증하였습니다. 왜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그렇게 끈기있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신다는 말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물론 때로는 그렇게 강청하는 기도는 결국 우리가 받을 만하게 기도가 변하여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4) 그래서 응답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달라서,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이 달라서(사 55:8-9)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응답이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대하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주님께서 가실 그 십자가의 길은 정해진 것이라 마땅히 그 고통의 잔을 마셔야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모습의 주님을 생각하며 “그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7-8)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마도 11제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더 사랑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적어도 그들 만큼은 자신의 고뇌를 이해하고 함께 기도해 주기를 바라고 그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만큼에서 홀로 기도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와 보니 자고 있습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45-46절)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연약할 뿐 아니라 죄성으로 인하여 타락하였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항하는 것이 육신입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고 중생한 신자들은 변화를 받아 조금 덜 하지만, 그래도 아직 연약합니다.
무엇이 해결책입니까?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시험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제자들은 시험에 빠졌고, 실패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영적으로 실패한 그 패턴을 살펴보면 (1) 자만, (2)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었고, (3) 시험에 빠졌고, (4) 죄를 지었고, (5) 불행을 자초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그 패턴을 살펴보면 (1)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 (2) 깨어 기도하시고, (3)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시험을 이기시고, (4) 순종함으로 죄를 이기셨고, 결국 부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무엇이 영적으로 실패하게 하는지, 승리하게 하는지 잘 보여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성도 여러분!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교훈들이었습니다. ‘인간이라면 이 세상에서 누구나 만나는 고통과 슬픔 앞에 어떻게 이겨 나가는가’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들을, 연약함들을, 고민과 슬픔을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분임을 보았습니다.
솔직히 아무런 고민이,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라고 주시는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늘 기도하며 살아야 하지만 특히 괴롭고, 외롭고, 슬플 때에는 더욱 간절한 끈기있는 기도가 필요한 것을 예수님에게서 배웠습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기도였습니다. 끈기있는 기도였습니다. 응답이 있을 줄로 기대하고 드리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정말 겸손히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죄에 빠지게 되며,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구하며, 깨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이기게 하시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확실히 믿고 항상 배운대로 기도하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때 주님 예수님을 나 생각해요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주님만 섬기며 따르기로 한 나 세상이 준 이 모든 괴롬 버리고
예수님처럼 기도하기를 원해요 예수님처럼 기도하기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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