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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4-17 (일) 05:3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62    
부활 신앙 (눅 24:1-12)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가운데 그 생각이나 삶의 방식을 살펴보면,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 만을 믿고 있는 것처럼 삽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지 않는 것처럼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교회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때면 지난 시간까지 지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늘 육신이 연약해서 죄를 범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자신에게 관대합니다. 또 잘못하면 언제나 주님께 나아와 회개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삽니다. 회개에 대한 의미도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죄를 이기는 부활의 능력, 사탄 마귀를 이기는 부활의 능력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기독교 신앙은 부활 신앙입니다.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리요, 역사적인 사실인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라고 외쳤습니다(고전 15:17). 즉 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뿐만 아니라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 역사하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을 목격하였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하여, 어머니 마리아, 헤롯 안티바스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 등이었습니다(10절; 막 16:1). 그들은 안식일에는 무덤을 찾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안식일이 끝나고 난 다음, 가장 첫 시간인 새벽에 무덤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려고 왔습니다. 아마 그들은 전날밤 한잠도 자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밤새 안식일 끝나기를 기다리는 열정이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먼저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주님께 받은 은혜 때문에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이렇게 열정적인 신앙의 여인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열심에만 초점을 맞추면 칭찬해 줄만 하지만,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을 만나러 무덤에 갔습니다. 이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이 부활할 것을 자주 말씀하셨음에도 불고하고 그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여러 차례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보러 갔습니다. 혹시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점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떤 분을 만나러 옵니까?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러 옵니까? 아니면 죽은 시신을 만나러 옵니까?
예배는 2천년 전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추억하는 모임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그 부활의 능력이 내 속에서 역사한다는 것을 믿고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예배하는 자리에 예수님이 계심을 믿고 경험하는 것이 살아있는 부활 신앙입니다.

성도들에게 이 부활신앙이 없으면 항상 과거에 매여 삽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조금만 무슨 일에 부딪히면 금방 낙심하고, 후회하고, 두려워하고, 도피하며, 절망합니다. 그저 자신의 연약함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의 예수님만 찾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과거에 매인 사람은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낙심하며, 연약한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기에 예수님께서 살아있더라도 보지 못합니다. 사랑했던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고 나자 낙심하며 돌아갔던 제자들이나, 오늘 본문의 여인들도 살아계신 주님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야 완전히 변화를 받아, 죽는 순간까지 부활의 주님을 증거했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한지 10년, 20년, 30년 되었는데도 부활의 주님을 마음 가운데 모시지 못하면 그저 과거에 매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이 살아계신지, 부활의 능력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면 늘 죄의 세력에 넘어지는 연약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을 진정으로 믿는 자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수 있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탄 마귀를 멸할 수 있는 능력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시신을 찾으러 왔지만 보이지 않자 근심하고 있을 때에 찬란한 흰옷 입은 천사들이 곁에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5절하-6절)고 합니다.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기억해 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7절; 눅 9:22, 44; 마 17:22-23; 막 9:30-31)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그저 말씀을 이성적으로, 피상적으로 냉냉하게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면 잘 기억을 못하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천사의 음성을 들은 여인들은 그제야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사실을 열 한 사도와 다른 이들에게 전하였습니다(8-9절). 그러나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11-12절)고 하였습니다. 아직 부활한 주님을 체험하지 못하여 믿지 못하는 사도들의 모습입니다. 다만 베드로는 그들의 말을 쉽게 허탄한 말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삼일 전 예수를 세 차례나 부인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초자연적인 지식과 말씀의 힘을 경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그들의 증언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대한 믿음이 부활 신앙의 기초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그 속에서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으로 우리 속에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낙심이 되면 낙심을 변화시켜 소망으로 만들고, 부정적인 생각이 있으면 그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적극적인 생각으로 변화시키고, 과거에 얽매어 있는 사람들은 미래를 바라보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열등감,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자신감, 비전있는 사람들로 변화시키는 것이 부활의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유는 부활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강림하신 후 베드로는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욜 2:28)고 선포하였습니다. 어리고 젊은 이들이 꿈과 비전을 갖고 사는 것은 이해가 쉬운데 늙은이들까지 꿈을 꾼다고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꿈을 꿀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자꾸만 현실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부어지면 그들도 꿈을 갖게 됩니다. 미래를 향해서 살아갑니다.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갈렙은 84세에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 14:12) 라고 요구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하지 못한 땅이 거대한 아낙 자손이 차지하고 있었던 헤브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85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청년의 기개로 그 땅을 차지하고 맙니다.
반면에 한창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늙은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방황 속에 마치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무엇이라고 충고하면 ‘어차피 죽으면 그만인데요 뭐 상관없어요’ 라고 말합니다. 꿈이 없습니다. 전혀 희망이 없기에 절망 가운데 자포자기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이 늙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부활의 신앙이 들어가면 바뀔 수 있습니다.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는 인생이 됩니다. 결국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이 관건입니다.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은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꿈이 있기에,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기에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망 권세를 깨는 능력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는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모든 장벽을 다 허물어 버립니다. 주님의 부활을 막기 위하여 로마 군병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았습니다. 그렇게 해 놓으면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여도 무덤에 갇힐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인봉하였습니다(마 27:66). 인봉하였다는 것은 ‘이 인봉을 떼는 자는 불법이므로 처형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군사들로 하여금 무덤 주위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때로는 우리 앞에 큰 돌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도저히 못 빠져나갈 것 같습니다. 어떤 때에는 인봉으로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합니다. 세상 법칙과 원리, 환경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능력이 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큰 돌을 굴려버립니다. 인봉을 찢어버립니다. 세상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 앞에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군사들이 지킨다고요? 나중에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부활 신앙으로 나아가면 도리어 사탄, 마귀가 겁을 내고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큰 돌로 막거나 인봉해 놓고, 군사들이 지키고 있어서 숨이 막힐 정도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 것들 때문에 캄캄한 무덤 속에서 그대로 웅크리고 있습니까? ‘큰 돌 때문에, 인봉 때문에, 군사들 때문에 못 나가요’, ‘무장한 군사들이 막고 있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라고 변명하기에, 하소연하기에 바쁘십니까?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기만 하면 큰 돌도 굴려버리고, 인봉도 뜯어 버리고, 군사도 물리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권능이 우리 모두에게 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가운데 이 부활의 능력이 강력하게 임하기 바랍니다. 온갖 것으로 방해를 하며 막았음에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오히려 큰 돌, 인봉, 군사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방해까지, 장애물까지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주위의 장벽, 방해 때문에 넘어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시기만 하면, 부활 신앙으로 무장하면 그러한 장애와 어려움은 하나님의 일들을 더 크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그런 장애들이 간증거리가 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고 하였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한, 부활신앙을 소유한 성도의 자세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탄 마귀 앞에서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는 인생으로, 마귀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고 항상 전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어떻게 믿으십니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으로만 믿으십니까? 아니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으로도 믿습니까?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으로 믿으십니까?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사하여 주심을 믿을 뿐 아니라, 죄와 싸워 이기게 해 주시는 분으로 믿습니까? 사탄 마귀의 권세를 깨뜨려 버리시는 주님의 권세를 믿으십니까? 나도 죄의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부활 신앙이 확실하시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실제로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는 부활신앙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듯이, 과거에 얽매이지 마시고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꾸며, 비전을 갖고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사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돌도, 인봉도, 군사들도 부활을 막을 수 없었듯이 이 세상의 어떠한 장애물도, 방해도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막을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러 올 때마다 승전가를 부르며, 승리의 전리품을 하나님에게 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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