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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6-12 (일) 05:59
ㆍ조회: 572    
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 1:1-10)


사람들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라는 진리를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특히 유교나 불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가 착한 일을 하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주교나 어떤 교단에서는 구원이 100%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 아니고, 자신이 무엇인가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천주교인들이나 어떤 교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선행을 많이 합니다. 사회사업에 열심을 냅니다. 초대교회 당시 많은 유대인들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설명하면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고 무엇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만큼 착한 일을 해야, 얼만큼 도덕적으로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얼만큼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까? 열 가지 하다가 한 가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말입니까?

오늘서부터 살펴볼 갈라디아서는 ‘복음은, 진리는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주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 8:32)고 하신 것처럼, 특히 율법의 행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복음,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주후 50년경에 2-3년 전 1차 전도여행에서 갈라디아 지역인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등에 개척한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것으로 그 지역 유대 교인들이 자꾸 율법의 행위, 특히 할례를 강조하며 복음을 혼동하고 있음을 듣고 쓴 서신입니다.
우선 서론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도라는 것을 강조합니다(1절). 아마도 그들 가운데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이방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도라고 먼저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동역자들과 함께 갈라디아 교회에 안부를 전합니다(2-3절). 그러면서 왜 자신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되었는지, 복음의 핵심을 지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4-5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드렸다고 합니다. 바로 이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하였습니다(1절). 그렇기 때문에 영광이 예수님에게 세세토록 있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진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선하신 뜻 가운데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살아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이 복음, 진리의 핵심을 따르지 않고 다른 복음을 좇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6절)고 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불러 주셨는데, 어찌하여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이 이상하다고, 자신이 복음을 전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금방 그렇게 다른 복음을 따라가니 놀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도대체 너희가 어떻게 해서 은혜로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상한 다른 복음을 따라가느냐는 말입니다. 여기 “다른(e[teroj, different) 복음”은 종류가 다른 복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 복음인데, 은혜라는 말 자체가 아무 대가 없이 거저 선물로 주신 것이 구원인데, 왜 그것을 버리고 마치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구원을 이야기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지적하는 다른 복음은 바로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복음을 말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된 도리로서 지켜야 할 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이 이 율법을 모두 다 완전히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알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연약하고 죄악된 자들인지를 깨닫고 항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롬 4장). 율법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눈에 보이게 달라진 것이, 구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유일한 증거라면 사람이 인격적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마음이, 생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7절)고 합니다. 여기 “다른(a;lloj, other) 복음”은 같은 종류의 다른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말하는 것은 복음은 오직 하나이다. 또 다른 복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이 따로 있고,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이 혼동을 겪었던 것은 자신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유대인의 경건한 모습을 따라가기는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더 잘 믿는 것 같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거짓 교사들이 그들을 요란하게 혼동시켜서 복음을 변질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난 후 변화받은 사람은 차츰 경건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예배나 경건의 훈련 등을 통하여 성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성도들을 요란하게 하여 복음을 변하게 하려는 자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바울은 선포합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8-9절)! 아주 강한 어조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이 전한 복음에 다른 내용이 들어가는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나온 것이며, 사람이 그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면 결코 안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사람의 뜻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절대 불가합니다. 여기 “저주(avna,qema, curse)”는 하나님의 작정된 것을 건드릴 때 영원히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처럼 말입니다.
인간의 구원에 대한 것만큼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 영광으로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는 진리를 건드리는 사람은 살아남을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을 8절에서 하였는데, 9절에서 똑같이 반복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바울이 이를 강조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비본질적인 것에 대하여는 얼마든지 양보가 가능합니다. 바울도 고기를 먹는 문제라든가 유대절기를 지키는 문제를 가지고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원관에 대하여서는 아주 단호합니다. 복음에 다른 것을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0절)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좋게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들게 하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도 당시 바울을 비난하는 유대주의자들이 구원에 율법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값싼 믿음만’을 가르쳤다고 고소하는 듯합니다. 바울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려고 율법을 빼놓음으로 너무 쉽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너무 쉬운 구원입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이, 부활이 쉬운 것입니까? 믿고 난 후에 신앙생활이 쉬운 것입니까? 너무 몰라서 그렇게 예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아니면 “하나님에게 좋게 하랴”라는 두 가지 수사학적 질문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동기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려는 데 관심이 있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사람들의 종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위 사람들 가운데 어리석게 변덕스러운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다가 낭패를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지난 주일에 언급한 인본주의 적인 말과 태도를 말합니다. 당장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서 좋지만, 그게 얼마가 갑니까?
사실 복음은, 진리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이름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인정은, 칭찬은 하나님에게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받는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만족을 주려는 영적 지도자가 가장 타락했다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 가든교회 목사들은, 장로들은, 모든 지도자들은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들이어야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종들이 아니기를 위하여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입니까? 아니면 다른 복음입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죄 사함을, 영생을 받으셨습니까? 그래서 정말 그 은혜에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는데 누구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그 복음으로만 안되고, 내가 착한 일도 해야 하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일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탄 마귀는 오늘도 복음을 변질시켜서 거짓으로 위장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합니다.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사탄 마귀에게 사로잡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마귀와 함께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은 것 뿐이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 저것을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여러분 스스로가 구원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내 노력이 그칠 때에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예수님께 온전히 맡길 때에, 십자가의 구속하심으로 내 모든 죄가 용서받았음을 믿을 때에 은혜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는 우리의 삶에 어떤 승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올바른 복음을, 진리를 믿는 자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서 선한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고, 찬양과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고,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종으로서 말씀을 붙들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결코 복음을, 구원을 내가 한 일 아무것도 없이 거저 받았다고 해서 싸구려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주어진 것을 알기에 그 은혜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암송합니다.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사탄 마귀의 시도를 알아내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될 무서운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마귀의 종들에게 넘어가지 마십시오. 아니 바울이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고 한 것처럼, 우리는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들이 되기를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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