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요한계시록 서론에서 말씀드렸듯이, 계시록은 세상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성경책입니다. 사도 요한이 4절에서 언급한 소아시아(지금의 튀르기에) 지방의 일곱 교회는 이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들을 대표하는 교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전 27년부터 주후 180년까지 전 세계 평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Pax Romana’ 라고 하는 라틴어가 유행하였는데, 그 뜻이 Roman Peace, 즉 로마제국이 실현한 세계의 평화를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로마 황제는 절대자였기에 모든 사람이 그를 절대복종 했어야 하며, 로마 원로원에서 로마 황제를 신으로 받들게 됨으로 전 국민에게 그를 신으로 숭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신으로 섬길 수 없는 당시 교회들에게 핍박이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1세기 초대교회들의 대적은 로마제국이었다기 보다는 주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이후에 교회들이 점점 부흥하게 되고 그 세력이 커지다 보니, 로마제국이 교회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로마 황제의 유일한 적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콘스탄틴 대제가 주후 313년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기 전까지 200여 년 넘게 교회를 엄청 핍박을 함으로 많은 순교자들이 생기게 되고, 아니면 그들을 피해 숨어 카타콤과 같은 지하 무덤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 밧모 섬에 유배를 당한 사도 요한에게 천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임한 것입니다. 그는 삼위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소아시아 지역 일곱 교회에 서두에 인사를 하며,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비록 세상은 악하고, 핍박이 심해도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계시는 분은 여전히 삼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 그들이 위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4-5절상)고 하였습니다. 먼저 성부 하나님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제도 계시고” 라는 말은 아무리 세상이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다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짓는 죄를 다 보고 계시며, 어느 한도까지 허용하다가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전에도 계시고” 라는 말은 이 전의 세상 역사도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미 과거에 모세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르쳐 주셨었습니다.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출 3:14). 누가 만들어서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God)입니다. 다른 신(god)들은 다 피조물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로마 황제도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허락하셨기에 황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장차 오실 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예수님이 장차 오실 이로 알고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성부 하나님은 앞으로도 역사를 주관하실 것이며, 예수님을 통하여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계속 간섭하시고 주관하셔서 결국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심판하실 분입니다.
그 다음, 요한은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짤막하게 표현합니다.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고 말입니다. 일곱 영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일곱 교회를 염두에 두어서 그렇습니다. 성령이 일곱이란 뜻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입니다(고전 12:13; 엡 4:4). 하늘의 환상 속에 성령이 그렇게 보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잠시 후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을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4: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상은 구약에서도 나타납니다(슥 4:2-7; 사 11:2-3). 특히 이사야는 성령의 본질을 일곱 가지로 설명하였습니다.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 11:2)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일곱 이란 숫자가 완전한 숫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성도)가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것은 성령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교회(성도)가 믿음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황제 숭배를 비롯한 모든 우상숭배나 세상 철학과 사상, 이단은 모두 악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은 이 악령의 역사를 능히 물리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 있기만 하면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악령을 절대 못 이깁니다. 그래서 매순간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하여 우리의 심령을 말씀의 은혜로 새롭게 하도록 애쓰고 간구해야 합니다.
이제 5절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을 살펴봅시다. 우선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약속을 신실하게 죽기까지 지키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가족들이나 제자들조차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약속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이 언약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신 것처럼, 비록 잠시 지옥의 비참한 자리까지 낮아지셨으나, 하나님께서 영원한 보좌의 영광을 누리시도록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게 하여 높이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위하여 죽기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편안한 삶이 아니라,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통과 환란은 잠깐이지만 존귀와 영광은 영원한 것이기에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고 하였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곧 주권자이시기에 심지어 이 세상 나라들의 임금들조차도 주님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성도)가 지금 로마 황제에게 반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반역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황제라도 하늘 위에서 권세를 주지 않으면 받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 임금들의 머리이니, 임금(위정자)의 신하(백성)들에게는 머리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아 멘!
사도 요한은 이런 삼위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인사를 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무슨 뜻인지는 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아론과 그 아들들 제사장들에게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고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쓰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교회들에게 있기를 원하는 인사를 하고, 마지막 끝을 맺을 때에도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1) 하고 마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심령 가운데 주님의 평강이 있으면 아무리 세상이 힘들게 해도 기쁘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5절하-6절)!
요한의 찬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자유)하게 하신 것을 찬양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암과 같은 무서운 질병에 걸린 것은 두려워하고, 사업이 실패하거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마음껏 죄를 지어도 여전히 해는 동쪽에서 뜨고, 여전히 장사도 잘 되고, 직장 생활도 괜찮고, 자녀들도 잘 자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을 때 뿐만 아니라, 신앙이 아주 어릴 때에도 죄 용서를 받은 것이 그렇게 큰 은혜인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좀 있으면, 심령에 성령님의 감동이 비추어지면 이 죄 사함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내가 과거에 얼마나 무지한 죄에 빠져 살았는지 생각을 하면서 이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여기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는 과거 시제인데, “우리를 사랑하사”는 현재 시제입니다. 즉 오늘도 우리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그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바로 은혜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 사랑을 느끼지 못할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찬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씀을 붙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겸손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해야 묶인 것이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내 신앙양심을 속이고 고집대로 살면 결코 은혜의 주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를 그 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것을 찬양합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지위입니다. 마치 사도 베드로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절상)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나라를 삼으셨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별하여 하나님 나라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기에 1) 직접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2)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소유한 자로서 그 마땅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3)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가 되었다는 뜻도 됩니다(고후 5:20). 즉 권리만 아니라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Slide 4] 유명한 칼빈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뜻을 세 가지로 해석했습니다. 1)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많아지는 것, 2) 하나님의 진리를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 3) 말씀의 다스림을 받지 않던 부분들이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곧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았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은혜의 통로로, 축복의 통로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성도)는 복의 근원으로서 이 세상을 축복할 권한이 있습니다(창 12:2-3). 물론 저주할 권한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성도)가 이 세상을 축복해야 이 세상이 복을 받습니다. 저주하면 그들이 복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의 죄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 삼위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그 분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성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으로 어제는 물론 오늘도 살아 계셔서 모든 일을 다 보고, 알고 계시며, 내일도 여전히 그렇게 역사하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기억하게 하시고, 지혜와 총명을 주시며, 얼마든지 악한 영들을 물리치시는 능하신 분임을 믿으십니까?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충성된 증인의 사명을 죽기까지 감당하시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주권자로 모든 인간을 다스리시는 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을 묶고 있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삼위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넘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평강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찬양하며 그 높으신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찬양하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자유하게 하심을 찬양하십시오. 우리를 그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을 찬양하십시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무리 핍박이 심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삼위의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며, 허락하신 은혜와 평강으로 이겨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