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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1-28 (일) 06:49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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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26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 (막 1:14-20)



19세기 유명한 러시아 기독교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가 마지막으로 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내용 중 카라마조프 가의 둘째 아들 이반은 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한 것을 보고 사랑이 많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불만스러워 하는 그가 막내 동생 알료사에게 긴 시간 한탄하면서 인간에 대하여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인간의 존재 의의는 그냥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사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다. 삶의 목적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없다면, 인간은 먹을 것이 풍성하더라도 그냥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왜 사는지, 삶의 목적이 없이 그냥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자식을 위해서 삽니까? 아니면 어느 노래 가사처럼 못 다한 사랑 때문에 사십니까? 결국 솔로몬처럼 나중에 죽을 때가 되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12:8) 라고 말하며 허무주의자로 삶을 마치겠습니까? 아니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고 한 말씀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목적이 있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고(13절),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4-15절)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시간은 정확히 세례 요한의 사역이 끝나면서 주님을 역사의 무대에 정면으로 등장하시게 합니다. 세례 요한이 이두메인 헤롯(Herod Antipas) 왕에게 잡혀 투옥된 이유는 헤롯의 불의를 책망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마 14:1-12). 그가 배다른 형제 필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였기에 세례 요한이 그 죄를 꾸짖었다가 잡혀 감옥에 갇혔다가 나중에 헤로디아의 간교함에 목숨까지 잃게 됩니다.
14절의 ‘전파하다(κηρύσσω)’는 ‘설교하다, 선포하다(preach, proclaim)’라고 번역이 되어야 정확합니다. 그냥 전하는,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언입니다. 설교는 예수님의 사역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사역에서도 설교가 가장 중요합니다.
[Slide 1- *] 예수님이 처음 무엇을 선포하셨나요? “하나님의 복음(εὐαγγέλιον)” 이었습니다. 이 복음이라는 단어는 당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news)이나 왕자가 탄생했다는 소식(news)에 사용하였습니다. [Slide 1-1,2] 즉, “하나님의 복음”이라 함은 이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소식이며, 하나님의 관한 소식인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인한 죄 용서와 회복, 그리고 새 삶에 대한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유명한 주석가인 Lenski는 ‘설교는 지적인 증거를 가지고 진리를 증명하거나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그 선포된 진리의 말씀을 사람들이 믿든지, 믿기를 거부할 뿐이다’ 고 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지적입니다. 주님의 설교는 확실한 메시지였습니다. 또한 권세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논쟁을 하거나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즉, 설교는 가능성이 있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 만을 선포하였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 12:49)라고 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도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요 17:8)하였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마 28:18-19)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주님의 지상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이지요. 위임을 받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신실한 설교자나 전도자는 하나님의 확실한 진리의 말씀 만을 선포하게 되어 있습니다.

[Slide 2- *] 또한, 예수님의 첫 설교의 내용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5절)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찼다는 말은 하나님의 정확한 타이밍이 되어 이제 예수님을 통해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펼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의 메시아,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영역을 뜻합니다. 이는 구약에서 약속된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출 15:18; 시 29:10; 사 43:15). 이 나라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Slide 2-1]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곧 죄가 가득한 사탄의 나라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것(4절)과 마찬가지로 첫째, ‘회개하라(repent, μετανοε,w)’고 선포합니다. 회개(회심)는 단순히 지은 죄에 대한 후회나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돌이켜서 180도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임한 어두움은 너희 속에 있는 어두움 때문이다. 복음을 듣고 죄의 길에서 돌이켜 의의 길로 가겠다고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어서 방향을 돌이키라.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곧 임하면 심판이 있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Slide 2-2] 둘째는, ‘복음을 믿으라’ 였습니다. 죄로부터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신학적으로 ‘회개하라’와 ‘믿으라’는 동시에 일어나는 한 행동입니다. 따로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오늘 본문 15절과 16절 사이에는 수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이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심은 이미 저들이 메시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로의 초청을 받고(요 1:35-51; 2:11) 믿은 후입니다. 그리고 그 후  다시 어부로 돌아갔었던 그들을 부르시는 장면(눅 5:1-11)에서는, 저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채 낙심하고 있다가 주님의 명령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서 엄청난 고기를 잡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을 하자, 주님께서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고 하였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과 대면할 때에는 오직 죄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심판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에 주님이 그들을 제자로, 복음 전도자로 부르십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이 사건을 마가가 적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16절)고 하였습니다. ‘갈릴리’라는 지명은 갈릴리 호수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때로는 디베랴 바닷가로(요 6:1), 혹은 게네사렛 호숫가로(눅 5:1)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길이가 13마일, 넓이가 약 8마일 되는 길쭉한 타원형의 호수입니다. 사해와는 달리 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좋은 어장이었습니다. 이 호수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부로 살았는데, 거기 기거하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중심한 유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보다 천한 계급으로, 별로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하였습니다(마 4:15; 사 9:1).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시는 내용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7절)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사람들을 택하여 그 나라를 위한 동역자를 삼으십니다. 구약의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선지자들도 늘 주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였습니다. 즉 복음 전도를 통한 열매를 맺도록 부르심은 모든 성도에게 다 해당하는 것입니다. 주를 따르는 모든 성도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사실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은 심판을 위해 사람을 모으던 구약의 선지자들이 사용했던 비유입니다(렘 16:16; 암 4:2). 즉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박하였으니 다가올 심판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야 하는 긴박한 사명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대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의 반응은 즉각적인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18절)고 했습니다. 즉시 주를 따른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신 후에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19-20절)고 하였습니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제자들은 교육수준도 낮고, 영적으로도 갓난아이 같고, 무슨 영적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교훈을 말씀하셔도 이해를 하지 못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던, 연약하면서도 자존심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과거 믿기 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은 제자로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유용하게 쓰임 받기에는 원 재료인 진흙 밖에는 되지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사두개인, 혹은 제사장이나 랍비들을 택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과 멸시 받은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이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즉 순종하고 좇아가면 주님이 영혼을 살리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다 내려놓고 주께 순종하고 따라 가느냐는 것이지요. 그럴 때 전도의 능력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들도 3년 넘게 주님과 동거동락하며 배웠습니다. 나중에 주님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이 임한 후에야 제대로 사람 낚는 어부들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야고보와 요한도 즉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좇았습니다. 그물을 깁던 일도 중단한 채, 아버지도 그냥 버려둔 채 말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하던 일 다 제쳐 놓고, 가족도 다 버리고 신학교 가라는 말씀 아닙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냐는 것이지요.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영혼이 살고,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서론에 언급했듯이 삶의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낚시해 보셨나요? 좋은, 유능한 어부가 되려면 자질이 필요합니다. 토기장이이신 주님께서는 진흙 덩이와 같은 우리를 가지고 그 자질들을 개발하도록 훈련을 시키십니다. 어떤 자질입니까? 첫째, 인내가 필요합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정말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고기가 미끼를 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잡히지 않으면 다른 장소로 옮겨서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 직감이 좋아야 합니다. 어느 장소에, 어느 시간에, 어떤 순간에 낚아채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기회를 잘 포착해야, 선용해야 합니다. 셋째,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배를 타고 나가서 어떤 풍랑을 만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담력이 있어야 합니다. 겁이 많으면 좋은 어부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미끼도 잘 써야 하겠지요. 고기에 따라서 먹는 것이 다르니 그것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어부는 가능하면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야 합니다. 물고기가 사람이 있는 것을 알면 미끼를 물지 않습니다.
[Slide 3-1] 사람 낚는 어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서 오랜 기다림, 참고 인내함이 필요합니다. [Slide 3-2]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영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적당한 때에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을 전하며 복음으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Slide 3-3] 물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두려워 말고 담대히 부끄럼 없이 전해야 합니다. [Slide 3-4] 그리고 자신은 감추어져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려면 우리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하신 주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줌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즉 한 생명을 구원하려면 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며 구원코자 애쓰되 자신(자아)를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열매를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를, 영감을, 용기를, 희생을 배우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자질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낚으셨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자질들을 다 갖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라면 아무리 바빠도 자신을 비어 두었습니다. 결코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과 온유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느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주님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그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셨습니까? 어떤 통계에 의하면 모든 신자의 90% 이상은 한번도 복음을 전해본 일이 없는, 한 사람도 주께로 인도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사람 낚는 어부로서 빛을 비취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그 열정이 있어 그 사랑을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빛을, 등불을 숨겨 두거나, 소금을 창고에 감추어 두지 않습니다. 비추게 되어 있습니다. 짠맛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빛을 보고, 그 맛을 보고 그들도 주님 앞으로 나아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유명한 John Knox 는 하나님께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Give me Scotland or I die)’라고 기도하였고, John Wesley 는 ‘전세계가 나의 교구다’ 라고 외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위대한 전도자는 못되더라도, 모두 부족하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주님에게 즉각 순종하고 따라가는 이 시대의 참된 제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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