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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
한태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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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4-04-25 (목) 18:03 |
ㆍ분 류 |
수요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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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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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만 자랑하라 (빌 3:1-6)
교회(성도)가 영적으로 건강한지 진단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감사가 있는지, 기쁨이 넘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심령에 늘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다면 비록 육신은 연약해도, 노쇠해도 영혼은 건강한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모임에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다면 우리 교회는 건강한 것입니다.
만약 다른 교인들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면 소외감도 느낄 것이고, 혼자 외톨이라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왜 그런지 원인을 찾아내어 치유를 받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병이 들면 의사를 찾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고치려고 하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고난과 핍박이 찾아와도 잠시 후에 심령만큼은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의 주제인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명령을 1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라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여태껏 1장과 2장에서도 반복에서 이야기했기에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1절하)고 하였습니다. 여기 “안전하리라”는 말씀은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그들에게 안전장치(safeguard)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기쁨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닥친 것입니다. 교회를 힘들게 하는 무리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병이 들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2절)고 하였습니다. 개들, 행악하는 자들, 손할례당 모두 율법주의자들, 거짓교사들을 가리킵니다. 여기 개들은 강아지, 애완견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개라고 표현된 단어의 뜻은 모두 불신자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 15:26)고 하셨고,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저희가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그 입으로 악을 토하며 그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시 59:5-6), 그래서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5)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도 행악하는 자들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후 11:13)고 하였습니다. “손할례당”이라 함은 손으로 육체를 자르는 행위를 하는 무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에서는 “몸을 상해하는” 무리로 번역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꼭 할례를 행하여 먼저 유대교로 개종한 후에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무리들입니다. 아니면 예수를 믿었어도 꼭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즉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갈 1:7). 바울은 2절에서 이런 자들을 삼가라(Watch out), 경계하라고 3번이나 반복하여 명령합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쫓아내고, 얼씬도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육체에 할례를 받았으나 성령은 받지 못한,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전혀 내적인 변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세상적으로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들을 추켜 세웁니다. 그러면 그들은 더 그것들을 자랑합니다. 그런 것들을 더 신뢰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육체적으로,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자신이라고 반론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4-6절)고 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유대교의 핵심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 바울은 육체적으로, 세상적으로 자랑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첫째, 혈통, 가문입니다. 당시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 가운데 순수한 유대 혈통의 이스라엘인이 많이 없었습니다. 혼혈족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8일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합니다. 복음서에서 보면 ‘이스라엘 사람’과 ‘유대인’ 호칭 두 가지가 나오는데, 원래는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북 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고 나서 유대인은 자신을 꼭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유대인’이라고 할 때에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종교인들을 가리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라는 칭호가 언약의 백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유대인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한 것은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언약의 백성이었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이 진짜 엘리트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12지파 중 최초의 왕, 사울을 배출한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남과 북이 갈라져 10지파가 떨어져 나가 북왕국을 이룰 때에 남 유다를 세운, 다윗의 언약을 지킨 지파라는 것입니다. 둘째, 교육입니다. 자신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당시 유대인 중에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있었는데, 헬라파는 헬라제국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정복된 후 헬라어를 사용하며 헬라문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히브리파는 계속 고집하여 유대인의 언어와 전통을 고수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비록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는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정통인 힐렐학파에서 가장 뛰어난 석학인 가말리엘 아래서 공부했습니다. 율법에 정통했으며 바리새파에 속한 최고의 랍비로서 그 규례를 지키는 데에 탁월했기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어느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게 열심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도 핍박을 했지요.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 받은 후에는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세상 경력을 자랑하고 삽니까? 혈통이나 가문을 내세우거나, 좋은 학벌을 자랑하십니까? 부잣집에 태어나 부모 덕에 어느 누구보다도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을 자랑합니까? 부모 덕이 아니라도 자신이 실력이 있고 수단이 좋아서 크게 부자가 된 것을 자랑합니까? 사실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세상적인 자랑거리를 교회 안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장이라고 교회에서도 사장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박사라고 교회에서도 박사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그런 세상적인 경력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8절).
정말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3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할례당”으로 번역된 것은 원어에 “할례(περιτομή)”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진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할례가 아니라 영적인 할례, 즉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신 10:16; 30:6; 렘 4:4; 행 7:51; 롬 2:29).
누가 마음에 할례를 받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봉사한다(λατρεύw)’는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개역개정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찌니라”(요 4:24)고 한 것처럼,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의 영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몸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을 드려도, 기도를 해도, 말씀을 들어도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자신이 죽어져야 합니다. 성령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죄를 죽이며, 교만을 없애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예배 시간만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하였듯이, 우리의 몸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제사로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말입니다.
둘째,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사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사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갈 2:20). 과거 옛 사람은 죽은 것입니다. 오직 새 사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 의의 종이 되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그래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고 한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인간적인 자랑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남들이 그런 것으로 자랑해도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랑하는 사람이 불쌍해 보입니다. 아무리 육체를 신뢰해봐야, 그런 자랑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너무 잘 압니다. 오히려 입만 열면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우리가 이제는 입만 열면 예수님 이야기만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사라전도회원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하수인들은 ‘개들’이기 때문에 크게 짖으며 양들을 위협합니다.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양들은 두려워하며 위축됩니다. 그러므로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거짓목자들, 개들의 소리인지 목자의 음성인지 말입니다. 주님의 참된 양들은 참목자의 음성을 안다고 했습니다(요 10:4).
칼빈은 목사에게는 두 음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부드러운 음성이고, 다른 하나는 양들을 물어 뜯으려고 하는 늑대나 사나운 개들을 쫓아내는 음성입니다.
어떤 자들이 그렇다고 했습니까? 율법주의자들, 성경 위에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규례, 전통에 목을 매는 자들입니다. 거짓교사들입니다.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 외에도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도 교회를 병들게 합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쫓아내야 합니다. 육체적인, 세상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건강한지 진단해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감사와 기쁨이 있는지, 내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매일의 생활 속에 내 몸이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는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고난의 시간이 연속이라 하더라도 주 안에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있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어찌하든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살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을 내려놓고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음성을 따라 사십시오. 언제나 우리의 중심에 존귀한 예수님을 놓고, 늘 자랑하십시오. 성령님에게, 예수님에게 헌신하십시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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