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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
한태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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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4-10-31 (목) 07:43 |
ㆍ분 류 |
수요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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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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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시작은 기도로부터 (느 1:1-11)
우리 주위에는 남달리 뛰어나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하여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이든, 직장에서이든, 교회에서이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선한 영향을 크게 미치는 영적 지도자들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성도들, 지도자들 가운데 정말 본받을만한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 역사상 전성기였던 솔로몬 왕이 주전 931년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나뉘어졌습니다. 그 후에 왕들과 그 백성들의 계속되는 범죄로 말미암아 북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앗시리아)에게 멸망 당하였고, 남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주전 539년에 바사(페르시아)에게 멸망한 후에 고레스 왕의 은총으로 주전 537년에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본국으로 제1 차 귀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룹바벨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 선포와 함께 무너진 솔로몬 성전을 재건합니다. 제2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성전 재건을 마친 후 약 62년이 지난 주전 458년에 바사 아닥사스다 왕 때에 서기관이자 학사인 에스라의 인도로 2 차 귀환을 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약 14년이 흐른 후 주전 444년에 역시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의 인도로 3 차 귀환을 하게 됩니다. 이 아닥사스다 왕은 바로 유명한 에스더가 남편으로 섬겼던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입니다. 성경에서 밝히고 있지 않기에 왕후 에스더의 자녀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 중에서 태어난 포로민의 아들 혹은 3세이었습니다. 민족적으로 수치스러운, 아주 어려운 상황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방 나라에서 크게 성공을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왕의 술관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왕이 신뢰하는 대단히 높은 직책이었습니다. 당시 왕들 주변에는 항상 독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술관원은 왕이 마시는 술에 독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 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 경호실장과 같은 직책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에게 훌륭한 점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성공했다, 출세했다 해서 자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즉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유대 달력 기슬르월은 11월/12월 추운 겨울입니다. 바사의 수도인 수산 궁에 머물렀던 느헤미야는 자기 형제 하나니가 유다 나라, 예루살렘 성에 다녀온 그에게 안부를 물으니,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란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3절) 라는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을 듣습니다. 이유는 약 14년 전에 2차 포로 귀환을 주도했던 에스라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귀환하여 성벽 재건을 서둘러 시작하려 할 때에 르훔과 심새라는 사람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스 4:8). 에스라가 이끄는 무리에 반란의 위험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사가 즉각 중단되었습니다. 르훔과 심새는 공사만 중단시킨 것이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물건까지 파괴해 버렸습니다. 결국 성벽 재건의 사명이 주변의 방해로 좌절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벽이 없으니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주위 이방 민족들의 공격을 받아 환란을 만나고 능욕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을 느헤미야가 들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영적으로 조금 깨어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사탄 마귀들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환란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지켜져야 할 성벽들이 무너져 훼파된 것을 봅니다.
하나니의 보고를 받은 느헤미야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4절) 라고 하였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편하게 궁에서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울었습니다. 며칠 동안을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말입니다. 그들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며 말입니다.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훌륭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이기적으로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만난 현실을 바로 직시합니다. 그들의 아픔을 생각합니다. 그저 꿈만 꾸고 공상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명을 깨닫고 미루지도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시작합니까? 먼저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갑니다.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모든 성도의, 특히 지도자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간절한 기도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기도하였는지 보십시다.
우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간구합니다.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5절) 합니다. 그가 세상적으로 섬기고 있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보다 훨씬 크고 두려워할만한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 주를 사랑하는 자,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먼저 찬양합니까? 기도를 시작하기만 하면 어린아이들처럼 그저 이것, 저것 달라고만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문제를 만난 자기 백성들과 자신을 생각하면서 죄를 고백합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6-7절) 라고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에 자신 만을 생각하고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공동체적인 죄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생각하면 멀리 있던 자기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본국에 있는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는가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안고 있는 고통이, 문제가 자신 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과 내 나라가 지은 죄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교회적으로 짓고 있는 죄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하여 내 형제, 자매들이 죄까지 하나님께 자복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적어도 지도자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내 형제, 자매들과, 내 교회와 내 나라가 짓는 죄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죄의 고백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데 기억하옵소서”(8-9절) 라고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알고 있었던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 26:33절)는 말씀을 인용하며, 또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0:3) 등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니 그 약속을 지켜 달라고 합니다. ‘말씀대로 저희들이 범죄하여 열국 중에 흩어져 포로생활을 하고 고통을 당하였던 것처럼, 이제 돌아와 회개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오니 약속하신대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서라도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 안전하게 살게 하옵소서’ 라고 하면서, 범죄하였더라도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10절)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약속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모르면 자신에게 손해입니다. 아버지가 한 말을 잘 알고 있는 아들이 그 하신 말씀대로 요구하는데 들어주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우리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자신의 간구, 필요를 구합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11절) 라고 말입니다. 이 사람이란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킵니다. 얼마나 담대한 간구입니까? ‘나를 형통하게 하셔서 왕 앞에 은혜를 입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나를 사용하옵소서!’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기도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를 형통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중심에 두시옵소서. 하나님 보시기에 나의 최대의 능력이 나타나 내 위에 있는 어떤 사람들로부터도 은혜를 입게 해 주옵소서. 귀하게 쓰임 받기 원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 기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계속 꾸준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2장 1절에 보면 니산월에 드디어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됩니다. 니산월은 3월/4월을 가리키는데, 즉 기슬르월(11월/12월)에서부터 3개월 이상을 꾸준히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도 그렇게 끈질기고, 꾸준합니까? 며칠 기도해 보고 그만 두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성도들에게 있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늘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왜 기도가 중요합니까? 성도에게 꼭 필요한 것이며, 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무슨 일을 시작하기 원합니까? 기도가 먼저입니다. 기도로 출발하셔야 합니다. 기도가 어떤 유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까?
기도는 1) 우리로 하여금 일을 서두르지 않게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서두르다가 실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분별력을 주십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게 합니다. 내 뜻대로 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3) 우리의 비전을 분명하게 합니다. 자욱한 안개 속에 있는 물체가 햇빛이 나면서 안개가 거두어지고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기도를 하면 할수록 점점 우리의 비전이 분명해 집니다. 또한 기도는 4)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합니다. 걱정도 하면서 동시에 기도를 할 수는 없습니다. 걱정을 하고 있던지, 아니면 기도를 하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 집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되니까요. 또, 기도는 5) 우리의 믿음이 역사하게 합니다. 기도한 후에 우리는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부정적이고, 불평하고, 비판하며, 하찮을 일로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이지, 기도하면 믿음이 역사하여 긍정적이고, 감사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밤중에 여행 중인 친구가 찾아와서 먹을 떡을 빌려달라 하면서 문을 두드리면 저가 안에서 답하기를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이미 아이들도 다 자고 문은 굳게 닫혔으며 나는 침대에 누웠으니 일어나 줄 수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이기 때문에는 일어나 주지 않을지라도 자꾸 강청함을 인하여는 일어나서 귀찮아서라도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3)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주위를 돌아보다가 무엇인가 참으로 안타까워 고통 중에 주를 위하여 무슨 일을 시작하시기 원하십니까?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며,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돌아보며 슬퍼하며 애통하는 일들을 보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보여주신다면 그것이 곧 사명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하여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금식하는 마음으로, 기도로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의 위대하심, 그 주권, 그 거룩함, 전지전능하심, 그 사랑과 긍휼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는 죄를 고백하여야 합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나의 죄 뿐 아니라, 내 가족이 짓는 죄, 내 형제 자매들이 짓는 죄, 내 이웃이, 내 교회가, 내 나라가 짓는 죄까지 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붙들어야 합니다. 주장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누구에게든지 은혜를, 은총을 입게 해 달라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내게 필요한 것들을 허락해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처럼 말입니다. 물론 꾸준히, 끈기있게, 포기하지 말고 간구하여야 합니다. 한번, 두번 기도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면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그 이름을 위하여 영광을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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