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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11-11 (월) 00:53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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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92    
점점 자라가는 신앙 (막 8:22-26)




지난 주일에 바리새인들은 물론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직도 진리를 깨닫지 못함을 꾸짖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너무 연약하여 반복해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는 존재입니다만, 성령님이 진리를 깨우쳐 주시면 잊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세 가지 권면하였습니다. 1) 기억하십시오. 2) 계속 그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십시오. 3) 그대로 믿고 순진하고 순수하게 사십시오.

오늘 본문도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또 하나의 기적을 베푸시는 것을 기록하면서 아직도 미숙한 제자들에게 영적인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데가볼리 지역에서 달마누다(마가단 혹은 막달라) 지역을 거쳐 벳세다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사복음서에서 유일하게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22절)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만나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침 받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대시면, 만지기만 하면 눈이 떠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아마 이전에 12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와서 고침을 받은 것을 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막 5:28, 34). 그런데 문맥을 살펴보면 이 소경은 예수님이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그냥 사람들에게 이끌려 나온 것입니다. 10장에 나오는 소경 바디매오와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 누군가 지금 지나가는 사람이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라고 부르짖으며, 주위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해도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였으며, 예수님이 부르며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51절) 간절히 간구하니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52절)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소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별로 기대도 하지 않는 듯합니다. 오히려 그를 데려온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 사람을 예수님이 손으로 만져 주시면 나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입니다. 전에 목격한 것을 기초로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경험으로 주님 앞으로 나오는 경우를 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고쳐 주십니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23절)고 물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베푸시지 않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개인적으로 고쳐 주셨을까요? 그것도 소경의 손을 붙드시면서 천천히 인도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사람의 손을 붙드는 것은 매우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 아니라 긴 시간을 말입니다. 깊고도 진한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요? 그를 민망히 여기시며 긍휼과 자비의 충만한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두고 그 사람만 따로 손을 붙들고 넘어지지 않게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며, 눈을 고쳐 주기 원하는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눈을 보지 못하는 그에게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이렇게 자신의 손을 붙잡고 만져 주심에 더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눈에 침을 뱉으시며 안수하십니다. 아마 실제로는 손에 침을 묻혀서 두 눈에 발라 주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쳐 주실 때에도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요 9:6)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당시에는 침을 바르는 것이 일반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점이 예수님이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단순함을 파악하는 분이셨습니다.  
물론 침 자체가 치료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눈을 뜨게 하고자 침을 사용하시면서 안수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안수하심으로 예수님의 권능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제야 고침을 받을 수 있겠다는 소망과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에게 무엇이 보이냐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24절)라고 합니다. 왜 이전처럼 단번에 고쳐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의 능력이 약해져서 그랬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비유적인 행동입니다.
즉,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단번에 완전히 보이게 하지 않으시고, 처음에 희미하게 보이도록 부분적으로 고치신 것입니다. 단번에 완전히 모든 것이 잘 보였다면 눈이 부셔서 너무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언제부터 소경으로 지냈는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빛과 색상들이 보였고, 희미하게 사람들이 보였는데 마치 나무가 걸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 나도 무언가 보이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드디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의 육신의 눈을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25절)고 하였습니다. 다시 안수하셨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또 반복의 교훈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과 같이 진리를 단번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시 깨우쳐 주심으로 확실하게 알고 믿으라는 말씀을 마가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니 제자들에게 믿음이 점점 자라갈 것을 가르치기 원하신 것입니다. 처음에 희미하게 알던 것들이 점점 분명하게 알게 되어 확실한 믿음으로 설 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이 소경은, 제자들은 이제야 예수님을 확실히 알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더욱더 알아가야 합니다. 자라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26절)고 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 앞으로 나왔고, 그 마을 밖으로 예수님을 따라 나온 것을 볼 때에 그 마을에 살던 사람이었을 텐데 눈을 뜬 후에 자신의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이전에도 몇 번 그랬듯이 자신이 기적을 행한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참고 – 마 8:4; 9:30, 막 1:34; 5:43; 7:36). 또 이 소문이 퍼지면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것이라, 아직은 십자가를 지실 때가 아니기에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말하지 않았을까요? 기적을 경험했는데 당연히 간증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가 다른 병든 자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아니 영적인 눈이 열려 믿음이 생겼으니 주위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주님은 여러분이 처음에 잘 못 깨닫는다고 해서 포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주님께 나아오면 깨달을 수 있도록 아주 섬세하고 자상하게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인격적으로 만나 주십니다. 누구를 통해서든 주님의 그 큰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도 누구를 예수님에게 인도하려면 예수님처럼 온유와 겸손으로, 부드럽고 자상한 사랑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시며,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 하였습니다.
다만 우리 편에서 과거의 세상 지식이나 경험으로 인한 인간적인 생각이나 신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부터 늘 함께 하였지만, 약 2년 가까이 되었으나 영적으로 여전히 소경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많은 기적들을 경험했고, 주옥 같은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소경을 고쳐 주시는 권능을 보여주셨듯이, 이제 초자연적인 은혜로 제자들의 영적인 눈을 밝혀 주실 것을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제 곧 이어 나타날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29절하) 놀라운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신 주권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비록 여전히 초신자에 지나지 않는 신앙이지만 이제 영적인 눈이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때와 달리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단계를 거쳐 소경의 눈을 온전히 밝히셨듯이, 우리는 점진적으로 신앙이 자란다는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이 소경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 앞으로 나올 때에 그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냥 눈을 고칠 수는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주 자상하고 섬세하게 그를 붙들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그를 데려가 개인적으로 만져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침을 발라 눈을 만지시고 안수하셨습니다. 한번에 다 온전히 보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배려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소경은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살펴보았듯이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희미하게 알고 있기에 확실히 깨달으라고 점진적으로 역사하십니다. 또한, 그들이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이제 깨닫게 되더라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로 과거 어느 순간에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믿음의 길에 첫발을 딛는 것이었습니다. 영생의 길에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언제든 죽어도 천국에 가는 것은 확실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 후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기 위해, 더욱더 예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배워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라”(엡 4:13)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한 마음이 되어 온전한 사람으로 주님을 닮는 장성한 어른이 되라고 합니다. 초신자 어린아이에 머무르지 말고,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어르신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듯이, 영적으로도 그러한 믿음의 단계를 거쳐 신앙생활을 오래한 후에는 거의 예수님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을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하루 아침에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냥 어린아이에만 머물러 있으면 큰 문제입니다. 부모님에게 걱정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벧후 3:18)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평생 주님의 은혜와 그 분을 아는 참된 지식이 자라가야 합니다. 지난 주일보다 오늘이, 지난 달보다 이번 달이, 올해보다 내년이 더욱 성숙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성장하려는 데에 방해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병 들었다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 먹어야 합니다. 영의 양식을 잘 먹고, 소화를 잘 시켜야 합니다. 가르쳐 주신대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예수 더 알기 원하네’ 가 생각납니다. 우리 모두의 진솔한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 되도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예수가 계신 보좌는 영광에 둘려 있도다 평화의 왕이 오시니 그 나라 왕성하도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우리 가든교회 성도들은 모두 다 평생 예수님을 더 알아 감으로, 점점 신앙이 자라 가기를, 더욱 성숙해 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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