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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
한태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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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4-11-14 (목) 08:54 |
ㆍ분 류 |
수요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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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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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사람 (느 2:1-10)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급하다는 말을 부인할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도 미국에 와서 처음 배운 것이 기다림이었습니다. 또한, 무슨 일을 추진하는 것에도 그저 생각 없이,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마구 추진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도자일수록 무슨 일을 해 나갈 때에 기도하며, 기다리며, 준비하며, 잘 계획하여 추진해야 합니다. 바로 느헤미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함에 있어서 그러한 지도력을 보여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번 1장 강해 말씀을 요약해 보면, 느헤미야가 형제 하나니에게서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소화되었다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였습니다. 어떤 기도였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찬양을 드리며, 그 긍휼하심에 호소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만난 자기 백성들과 자신을 생각하면서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며, 자신의 간구, 필요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제가 뛰어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아닥사스다 왕 앞에 은헤를 입게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1:11).
이제 2장에서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쓰시기까지 느헤미야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한 마디로 그는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겠다고 결심하자마자 그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만큼만 그분의 자녀들을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출애굽의 인도자로 쓰임 받기 전에 광야에서 40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습니다. 다윗도 왕이 되기 전에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광야에서 왕 위에 오르기 전까지 준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준비되기 전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어쩌면 재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기 위하여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현재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준비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하신 뜻대로 우리를 쓰십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자 마음을 먹고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한지 약 4개월이 지난 다음에 그는 행동을 개시합니다.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2:1상)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장 1절에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소식을 들은 것이 기슬르월(11-12월)인데, 니산월(3-4월)에 드디어 일을 시작합니다. 이 4개월 동안 느헤미야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저 기도만 했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기도와 함께 용의주도한, 치밀한 계획을 하며 준비하였습니다. 닥칠 문제들을 미리 예상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말입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자 왕의 앞에 나아가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지난 4개월 동안은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가, 일부러 왕의 앞에서 수색(슬픈 기색)을 띱니다(2절). 왕 앞에서 수색(愁色)을 띠는 것은 아주 위험스러운 모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술관원 직책을 가진 그가 얼굴에 수심을 비친다든지, 떨고 있으면 누구라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왕후도 곁에 있었습니다(6절상). 그래서 만약에 아닥사스다 왕이 그를 의심하여 무슨 명이라도 내리면 그는 당장 처형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절에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으리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한 것처럼, 느헤미야가 두려워한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두려워 떨면서 느헤미야가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3절) 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도 잘 준비가 된 대답입니다. 만약의 경우 왕이 그렇게 질문을 하면 이렇게 답할 것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준비가 안 되었다면 다르게 왕께 불평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에스라의 인도로 2차 귀환 때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중단시킨 장본인이 바로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스 4:7절 이하). 그래서 ‘왜 그 때에 그렇게 자기 백성들에게 자초지종 들어보지도 않고 그 주위 총독들의 말만 듣고 성벽 재건하는 일 못하게 하였습니까?’ 했다면 왕에게서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4절에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너무나 쉽게 왕이 느헤미야에게 은혜를 베푸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준비한 결과 길이 열린 것입니다. 진솔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무너진 성벽 재건을 못하게 했던 왕이 지금 고국의 현실 앞에서 슬퍼하는 느헤미야에게는 호의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하였습니다. 저수지의 수문을 열면 물이 나가고 수문을 닫으면 나가던 물이 멈추는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혹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기도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도와주기 원하느냐는 왕의 말에 느헤미야는 대답하기 앞서 잠시 하나님께 묵도를 합니다(4절하). 아마 응답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겠지요.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오두방정 떨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 자리에서 묵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또 기도를 응답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라고 짤막하게 라도 말입니다. 느헤미야가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그리고 나서 왕에게 자신이 고국에 돌아가서 무너진 성벽을 중건하게 해달라고 소청합니다(5절). 그러자 왕이 또 묻습니다. “네가 몇 날을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6절하)? 만일 이 때에 느헤미야가 머뭇거리며 주저하면서 그제야 날짜를 계산하기 시작했다면 왕이 그를 더 신뢰하였겠습니까? 그러나 느헤미야는 4개월 동안 기도하면서 치밀하게 준비하였기에 즉각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준비한 요청을 왕께 합니다. “왕이 나를 보내시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게 하시고”(6절하-7절) 합니다. 즉 비자를 내 달라는 말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출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입국 사증을 발행해 달라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그 주위 총독들의 방해로 일을 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미리 그들의 방해를 막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조서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왕에게 은혜를 입고 흥분되어서 속히 달려 가지만, 그들에게 걸려서 다시 되돌아와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게 바로 준비하는 사람과 준비하지 않는 사람과 차이입니다.
8절에는 더 나아가 성벽 재건에 필요한 재목을, 모든 물품을 달라고 합니다.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하였습니다. 이 요청도 미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보내어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3차 귀환하여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하십니다(9절).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도왔다고 느헤미야는 고백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때에도 절대 자신의 지혜나 지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 임을 고백합니다. 철저한 하나님의 주권, 간섭하심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신앙의 수준, 척도(barometer)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 꼭 필요합니다. 기도 없이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의 미덕을 배워야 합니다. 조급하게 서둘러서 잘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도 필요할 뿐 아니라, 기다리며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식과 지혜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하고 계획을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준비하며 세우는 계획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교회가 부흥되기 원하고, 많은 영혼을 살리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부분에 대하여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무너진 가정이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구역이나 지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국의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원했던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기다리고 그렇게 잘 준비하여 결국 일을 해 내고야 말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 요약합니다. 꼭 기억하셔야 교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앞에 놓고 어떻게 준비하면 됩니까? 특히 아주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면 더욱 준비가 철저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사람을 조정하고, 유혹하고, 속이고, 교묘하게 작전을 세워서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보려고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사실 그대로 그 사람에 대하여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바꾸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심지어 그 사람에게 영적인 말도 주의해서 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알아서 해 달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둘째는,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와 기다림은 늘 함께 가는 것입니다. 만약 기다리기를 배우지 못했다면, 아직 기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는 사람 만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기다리지 못합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잘 참고 기다립니까?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기다리는 데에 익숙하지 않습니까?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을 보면 얼마나 하나님을 바라며, 기다린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까? 물론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지요. 내 자신 스스로 내린 결론이나 해답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도록 자신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기다림을 배우시면서 기도하십시오.
셋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 하면서 무질서 하게 막 산다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고 하셨듯이,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 미리 내다보고 준비합니다. 사실 일의 성취는 80%가 그 준비, 계획에 있습니다. 나머지 20%가 행동에 옮겨 실제 일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계획, 준비가 잘 된 일(Project) 일수록 그 결과가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 지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방해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할 때에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면 사탄 마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황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10절) 하였듯이 다음 번에 보게 되겠지만, 느헤미야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시작하자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는 일을 할 때에는 의례히 우리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만나게 됨을 예상하고 준비하여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물리치고 앞으로 나아가야지요. 목표가 뚜렷하고, 많은 기도와 준비로 시작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게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어떤 일이든지 우리 모두 느헤미야처럼 이렇게 준비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엡 3:20) 심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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