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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
한태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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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4-12-05 (목) 09:17 |
ㆍ분 류 |
수요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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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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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불이 임하는 교회 (왕상 18:30-40)
갈멜 산상에서 크고도 아주 특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우상 바알의 선지자들 사이에 벌어진 1대 450명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냐 아니면 우상 바알이 진짜 신인가를 판단하는 전쟁이었습니다. 본문 40절에 기록된대로 이 전쟁에서 패하였던 바알 선지자 450명이 죽음을 당한 결과를 볼 때 실로 목숨을 내건 치열한 전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 방법이 아주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각자가 자기 신에게 드릴 희생 제물인 송아지를 제단에 올려 놓은 후, 그 제물에 불은 붙이지 않고 단지 서로 자기 신에게 기도만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그 제물 위에 불을 내려주는 신을 진짜 신으로 인정하기로 하고 목숨을 걸은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이 이 전쟁 중에 머뭇 머뭇거리면서 엘리야의 결단에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21절) 하였습니다. 갈팡질팡하며 그저 이번 전쟁으로 자신들도 한번 확인해 보자는 식으로 관망만 합니다. 참으로 고독한 엘리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먼저 엘리야의 제안대로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제단을 위하여 바알 신에게 부르짖습니다(25절). 그런데 26-29절에 보면 아침부터 정오까지 아무리 외쳐 불러도 바알 신으로부터 응답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그들의 규례를 따라 자기들의 몸을 칼과 창으로 찔러가며 불 내려 줄 것을 간구했으나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나고 맙니다. 불은커녕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29절)고 하였습니다.
이제 엘리야 선지자의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바알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호기심에 가득차 엘리야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들과 ‘어디 한번 보자’는 식의 바알 선지자들 가운데 홀로 선 엘리야에게는 그야말로 절박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만이 유일하신 참 신임을 나타내 보여주기 위하여서는 그 자리 그 순간에 여호와의 불이 엘리야의 제단에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자주 엘리야와 같은 심정을 체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불신자들 앞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증거하고 싶고, 믿는지 믿지 않는지 중간에서 갈팡질팡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우리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 싶은 증거를 보여주고 싶은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동안 이 땅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신 분임을 믿는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엘리야에게 그토록 필요했던 여호와의 불,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 계신 분임을 증거해주는 불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살아 계신 참 하나님 여호와의 불을 믿지 않는 우리 주위 사람들이나, 머뭇머뭇 거리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불을 받기에 합당한 제단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섬기고 있는 가든 제단에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시기에 합당한 준비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 불을 받을 준비가 되면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첫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중심의 제단을 쌓는 일입니다(30-32절상). 여기 30절에 엘리야가 다시 수축했던 “무너진 여호와의 단”이란 솔로몬 왕이 아름다운 대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곳곳에 예배를 드리러 모였을 때에 쌓았던 제단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후에도 계속 사용되던 제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합 왕이 바알 신을 섬기는 이방 여자 이세벨을 아내로 맞았을 때, 그녀는 이스라엘 곳곳에 바알 제단을 만들면서 대신 모든 여호와의 제단들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바로 이 이세벨 왕비의 명령에 의해 파괴되었던 여호와의 제단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이 무너진 제단입니다. 엘리야는 이 파괴된 제단을 다시 수축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하나님의 제단,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거하기 위하여서는 그 무엇보다도 이 제단 자체를 수축해야 합니다. 어디 무너진 데가 없는지 살피면서 말입니다. 주님의 피값을 지불하고 산 하나님의 교회를 흔들고 파괴하고자 하는 사탄의 역사가 있을 때마다, 아니 그로 인하여 교회가 혹 부분적으로 손상을 당했다면, 우리는 부단히 이 제단을 수축해야만 합니다. 사탄의 역사가 있다 하더라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부동의 자세와, 무너지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부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제단의 돌들이 한 개 두 개 흔들리고 빠질 때마다, 다른 돌을 사용해서라도 우리의 손으로 그것들을 다시 잡고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제단을 부단히 수축하고 쌓아 올릴 때 반드시 하나님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엘리야가 보여준 방법이었습니다. 31절에 그는 조상 야곱의 열 두 지파의 수효에 따라 열 두 돌을 취하여 단을 수축했다고 합니다. 원래 갈멜산이 북 이스라엘에 위치해 있었기에 무너지기 전에는 북 이스라엘 10지파를 상징하는 돌 열 개로만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 옛날 얍복 강가에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 때는 열 두 지파가 하나였던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비록 지금은 불행히도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들 열 두 지파는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있는 한 민족임을 상기하면서, 돌 열 두개를 취하여 그것으로 제단을 수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32절 상반절을 보시면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았다는 말을 원문 그대로 직역하자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단을 쌓았다’는 뜻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의 제단을 수축하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쌓은 제단은 언제, 누가, 어떤 모양으로 만들든지 간에 그것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일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중심으로 제단을 바르게 수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든교회는 인간 한태일 목사의 제단도 아니고, 어느 장로의 제단도 아니고, 어느 권사나 집사의 제단도 아니고 오로지 우리 하나님의 제단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이 오로지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하나님 중심의 제단이 쌓으면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불이 우리의 제단에도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쌓아진 제단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32절하-35절). 선지자 엘리야는 희생 제물을 쌓은 제단에 특별한 한 행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제단 위에 제물을 올려 놓고는 주위에 도랑을 파고 그 제물 위에 물을 붓고 있습니다. 구약의 어디를 살펴보아도 이런 제사 방법은 없습니다. 물론 이를 금한 적도 없습니다. 왜 엘리야는 이와 같은 준비를 했을까요?
그것은 곧 엘리야의 제단은 모든 인위적인 속임수나 편법으로부터 구별되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바알 선지자들은 가끔 그들의 제단 밑에 미리 불씨를 숨겨 둔다든지 해서 사람을 속이곤 했답니다. 엘리야는 미리 세 번 물을 뿌리고 제단 주위에 파 놓았던 도랑을 물로 가득차게 해 놓음으로 어떤 부정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즉 자기가 준비한 제단이 깨끗하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제단도 마찬가지이어야 합니다. 모든 세속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부터 구별되이 지켜져 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할 때 그 제단은 하나님의 불이 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롱을 받고 그 권위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지 않은 제단은 하나님의 제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세상에서 사업하는 식으로, 정치하는 식으로 다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속한 성도들 개개인의 생활과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교회 밖의 세상적인 방식과 원리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서 볼 때에 구별된 모습으로, 성경적인 방법으로 우리 교회의 모습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불이 임하여 증거하는 제단이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제단이 되고자 하는 마지막 준비는 그러한 하나님 중심의 제단, 구별된 제단을 위하여 이제 기도하는 것입니다(36-37절). 이것이 엘리야가 했던 마지막 준비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중심으로 제단을 쌓고, 거룩히 구별되게 하였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불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요약하자면, ‘하나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하나님 스스로 이 백성에게 직접 보여주십시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참 하나님 되심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즉 ‘이제는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실 차례입니다’는 것이 엘리야 기도의 요점이었습니다.
이런 기도가 없이는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의 불이 임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우리의 입술에서 이런 기도가 나오고 있습니까? 모일 때마다, 여러분 개인이 주 앞에 엎드릴 때마다 이런 간구를 간절하게 부르짖습니까?
엘리야의 이런 준비들이 다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을 내리셨습니다. 제단에 물이 흥건히 젖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불이 제물을 태웠습니다(38절).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39절)!
즉 우리의 책임을 다한 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기적이 우리 제단에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이 성령 하나님의 불이 이 곳에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위에 머뭇머뭇 거리는 백성들에게, 갈팡질팡하는 백성들에게, 아니 조롱하는 무리들에게 성령의 불이 내려 증거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기왕에 가든교회에 몸 담게 되었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주위 사람들 보기에 ‘야! 정말 저 교회를 보니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보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이 제단에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하나님 중심으로 이 제단을 쌓아 나갈 때, 어찌하든지 세상과는 구별되게 지켜 나갈 때, 그리고 이 제단을 부여잡고 끊임없이 부르짖을 때, 오늘도 엘리야 때처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불을 내려 주실 줄,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실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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