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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11-26 (금) 06:06
분 류 수요설교
Link#2 신명기 5.16-21
ㆍ조회: 2158    
말씀의 멍에
말씀의 멍에 (신명기 5:16-21)
    옛날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교육을 시킵니다. 예절교육부터 비롯해서 상식과 지식교육까지 말입니다. 가능하면 좋은 환경에서,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에게 자녀를 교육시키고자 애쓰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교육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 속에 들어있는 본성, 죄성입니다. 근본적인 욕망이나 정욕 같은 것은 교육을 많이 받으면 더 고상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본성으로 말미암은 욕망과 정욕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그들을 건져내셔서 노예의 멍에를 풀어주셨습니다.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말씀의 멍에를 매어 주셨습니다. 사실 멍에라고 이야기 할 수도 없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첫 네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했습니다. 오늘 살펴볼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로 사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부모요 자식이요 형제요 자매였습니다. 누가 자기 부모나 형이나 동생이 잘 되기를 바라지 죽이려고 하겠으며, 음란의 대상으로 삼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지만, 그들이 이 말씀의 멍에를 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멍에를 즐겨 매면 계속 하나님의 백성으로 축복의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멍에를 싫어하고 자기 욕망을 따라, 죄성을 따라 살 때에는 다시 노예의 멍에를 매어야 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십계명 전반부 네 계명을 말씀드리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존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체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 그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그렇게 위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잘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혼자 그렇게 잘 믿는다고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도록 이웃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인 윤리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즉 그렇게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한다면 옆으로 우리의 이웃들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윤리 계명들 가운데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16절) 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부모의 보호와 양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혼자 잘 믿는다고 하면서 부모를 멸시하고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말씀을 청종하며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면 엄청난 복을 받는데,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16절하)고 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오래 복을 누리고 잘 살 수 있는 길은 스스로 더 똑똑해지고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불이 있습니다. 하나는 분노의 불이고, 하나는 정욕의 불입니다. 분노의 불과 정욕의 불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해서든지 원하는 것, 탐하는 것을 하도록 만듭니다. 이런 불은 마치 벽난로처럼 그 안에서만 타야 유익한 것이지, 바깥으로 그 불이 튀어나오면 온 집을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분노의 불이 무엇입니까?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미워하고 싫어하며 결국 그 사람을 죽이는 자리까지 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너무나도 밉고 싫게 되면 그 사람과는 도저히 함께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싫어지기 때문에 죽기를 바라게 되고 어떤 때에는 실제로 그것을 행동에 옮겨서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6 계명은 “살인하지 말지니라”(17절)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분노의 말을 하는 것조차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1-22). 왜냐하면 누군가로부터 분노의 불을 내뿜은 말을 들은 사람은 그때부터 속이 병들기 시작합니다. 그 말이 그 사람의 심령을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화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죽거나 불행해지기 바라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이성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고 육체적인 정욕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감정이나 욕망 자체가 죄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사랑의 감정이 중요하듯이 다른 사람의 정조나 사랑의 감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일어나거나,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혼 안에서, 부부 관계에서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육체가 자기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짐승 같이 욕망을 채우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제 7 계명, “간음하지도 말지니라”(18절) 말씀의 멍에를 매고 절제해야 합니다.
    제 8 계명은 “도적질하지도 말지니라”(19절)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소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행복만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기 행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망가뜨리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행복이, 자기 소유가 중요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행복도, 소유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은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귀하게 여기며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위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0절). 이것은 단순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을 떠나서 법정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정직한 증언을 해야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진실을 왜곡하여 증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내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무론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서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서론에도 언급했지만 이 윤리계명들은 다 탐욕과 관계가 있기에 마지막 제 10 계명은 결론과 같은 계명입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도 말지니라”(21절)!  즉 모든 죄의 원인은 이미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감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고 차지하려는 탐욕에 있습니다. 이 탐욕을 절제하는 방법은 법으로 구속하여 강제적으로 지키게 하든지 아니면 진실한 이웃 사랑으로 탐욕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셔서 탐욕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귀하게 생각하게 하십니다. 사실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두 형제요 자매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이 든 사람은 자기 부모요 형이요 누이이며 나이 적은 사람은 친 동생이라면 어떻게 동생이나 형이나 부모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시면서 그들이 이방 우상의 길을 걷지 않는 것 외에 자기 욕심을 위해서 이웃의 행복을 다치지 않게 하는 사랑의 책임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하나님 말씀의 멍에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고 하셨습니다. 말씀의 멍에는 노예의 멍에에 비하여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며 그저 내 욕심대로 살지 않는 멍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두 멍에 중에 하나는 반드시 져야 했습니다. 즉 말씀의 멍에가 아니면 노예의 멍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결국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걸음걸이에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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