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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3-31 (월) 11:3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04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 7:5-16)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근심을, 걱정을 하고 삽니다. 항상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두 종류의 근심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며, 다른 하나는 세상 근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세상 근심은 이 세상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된다고 한다면 근심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런데 세상 모든 근심의 결정적인 요인은,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모든 사람은 이 죄 때문에 근심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근심이 바로 다 세상 근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 근심은 아무리 많이 해 보아야 소용이 없고, 유익하지도 않고,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10절하). 반면에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죄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근심은 어떤 종류입니까? 그리고 근심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에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기근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위하여 구제헌금을 고린도교회에 부탁하기 위하여 서신과 함께 동역자 디도를 고린도로 보냈습니다.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날 줄 알았는데 만나지 못하자, 바울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마게도냐로 왔습니다. 거기서 디도를 만나게 되었고,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디도를 만나기 전에는 바울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면서 육체와 영혼이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5절).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고린도교인들이 자신의 책망이 담긴 편지를 받고는 잘 소화를 못 시키고 오히려 불신하고 배척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디도를 만남으로 위로의 하나님께서 위로하심을 체험했습니다(6절). 좋은 소식을 가져왔기에 기뻐하였습니다.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7절)고 하였습니다. 즉 그들이 바울이 보낸 디도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바울을 사모하고 있으며, 바울이 지적한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애통하며, 바울을 위하여 열심이, 열정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니 그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는 것은 양들이 목회자를 사모하며, 목회자를 향하여 열정이 있을 때입니다. 목회자가 죄를 지적할 때 애통해 하며, 회개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8절)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고린도교회에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책망하는 편지를 보내놓고도, 마음이 약해져서 후회하였던 것입니다. 그 편지가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고, 자신과 그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디도로부터 소식을 듣고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잠시만 근심하고, 죄에 대하여 애통하고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9-10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왜 그들을 근심하게 해 놓고, 마음을 아프게 해 놓고 기뻐한다고 합니까? 이유는 세상 근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문제, 자녀 문제, 집 문제, 건강 문제로 근심합니다. 자기들 뜻대로, 욕망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근심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때문에 근심하고,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에 근심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자꾸 솟아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근심합니다. 죄가 하나님의 은혜를 막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근심하는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막혀버린 은혜의 수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서 입니다. 결국 이 죄에 대한 근심이, 애통함이 회개하고, 죄를 버리게 할 줄 믿는다는 것입니다. 즉 본문에서 “근심”은 후회와 아픔을 뜻하는 것이며, “회개”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세상 근심은 그냥 안타까워하고,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감정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회개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가고자 하는 결단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삶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1절)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의 책망은 고린도교인들이 예사로 생각하던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되고, 합당한 회개를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를 8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이 깨우쳐 주실 때에 자신이 순종한 결과입니다. 1)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는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저 대충대충 넘어가던 죄를 정말 심각하게 의식하고 고쳐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2)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는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확실하게 인정하며, 하나님께 겸손히 탄원을 하는 것입니다. 3) “얼마나 분하게 하며”는 죄에 대하여 치를 떨며 ‘역시 죄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넘어지게 하는구나’ 생각하며, 죄에 대하여 분노를 심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4) “얼마나 두렵게 하며”는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두려워함을 말합니다. 5)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는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사도 바울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열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6)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는 회개를 실천하려는 열심, 열정을 의미합니다. 7)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는 이미 교회 안에 있는 범죄자들을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 처벌한 것을 말합니다. 8)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다”는 말은 회개하지 않는 그 범죄자를 치리함으로 교회가, 성도들이 더 이상 그 죄를 동참하거나 방관하는 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순결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아마 큰 죄를 지은 자가 교회 안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힘이 있는 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자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은데, 철저하게 권징함으로 자신들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인정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처리했던 것입니다. 설령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회복해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12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책망하는 편지를 쓴 것은 범죄자를 매장하려는 것도 아니요, 억울하게 불의를 당한 자를 위로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을 간절하게 사모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근심과는 다른 근심을 하여야 합니다. 만약 죄가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 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적인 문제로 염려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 죄 문제를 가지고 근심하기 원하십니다. 세상 문제는 다 주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죄 문제로 애통해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근심할 때 놀라운 은혜를 회복시켜 주시고, 다른 모든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라고 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팔복에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 임이요”(마 5:4)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이 염려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염려이어야 합니다.

고린도교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고, 회개한 결과 사랑의 회복이, 관계의 회복이 나타났습니다. 서로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바울과 그들과의 관계도 회복이 되었고,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전하는 디도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들의 반응을 보고 안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책망을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인격 모독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다릅니다. 책망을 받는 그 순간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키고 나면 더 큰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김을 깨닫고 주님을 향한 사랑과,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 솟아 납니다. 결국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바울은 편지를 보내놓고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었으나, 일말 성령의 역사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디도에게 고린도교회를 자랑하였는데, 이제 그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되었고, 다 진실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14절).
그리고는 이어서 칭찬과 격려를 합니다.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15-16절)! 정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사도의 죄에 대한 책망을 듣고, 두려워 떨면서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디도는 감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인하여 범사에 담대하게, 신뢰하게 되었기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애통하고 회개하여 돌이킨 사람들을 칭찬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다윗이 왜 위대합니까? 결정적인 실수를 했지만, 나단의 책망을 듣고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참고 시 51편). 이렇게 위대한 성도들은 누군가가 죄를 지적해 주면 근심하며 애통하고, 회개합니다.  
비록 바울이 개척한 교회였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 고린도교회는 죄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렸고, 유대주의자들을 비롯한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흔들려 버렸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바울이 보낸 고린도전서 혹은 또 다른 잃어버린 서신을 받고 나서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애통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교회를 순결하게 했습니다. 교인들이 죄를 두려워하며,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회복이 되고, 사랑이 회복이 되고, 관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은혜를 가로막는 그 어떤 죄를 지적받고, 책망을 받으면 근심하며, 애통하고, 회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돌이키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의 징계를, 심판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염려하고 근심해야 할 것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근심이나, 내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그런 것 때문에 근심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께 맡기고 삽니다.
다만 죄로 인한 근심,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에 대한 근심은 있어야 합니다. 왜 내가 넘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근심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근심으로만 그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후회만 하고 슬퍼만 한다면 결코 회복은 되지 않습니다. 이 근심이 우리를 더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하고 더 든든한 관계로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진실로 애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사랑이 회복이 되고, 큰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주님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남은 인생에 이런 놀라운 은혜 체험이, 성령 체험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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