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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5-29 (목) 11:1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75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삶(롬 12:1-2)
우리 모두는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한 최소한의 기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사랑하고 희생하는 부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기대는 있습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바르게 크는 것입니다. 성장하는 것입니다. 독립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립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도움이 없이도 홀로 서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그렇게 될 때에 그만큼 부모에게 기쁨과 보람을 주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그 아들까지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데, 우리를 향한 아무런 기대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 믿고 난 후에 영적으로 건강하게 잘 성장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독립, 자립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그 아들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변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목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유년기를 지나, 방황하는 청소년기까지 부모의 우산 아래 보호를 받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청년이 되면어떻게 됩니까? 부모를 떠나 자기 길을 걷게 됩니다. 부모에게 돈을 타서 생활하다가, 직장 생활을 하고 돈을 벌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게 됩니다. 행동의 자립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남의 손을 빌려서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일 내가 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합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줄을 압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아직도 청년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비록 나이는 먹어도 말입니다.  
참 믿음은 깨달음, 신뢰, 행함으로 연결됩니다. 내 자신이 죄인인 것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그 은혜를 깨닫는 것으로 시작된 믿음은 곧 주님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그 신뢰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으로 자립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립하려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이 세상 문화와 관습입니다. 예를 들면, 그릇된 결혼 문화, 성(sex) 문화 등 말입니다.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 풍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말씀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으려면 사고방식, 의식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로마서는 어쩌면 신약성경 가운데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기록했는데,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해 주신 것들을, 성취하신 것들을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주 중요하고도 가장 기초적인 가르침 즉 교리들, 구원론, 신론, 인론, 죄론, 성령론, 성화론에 이르기까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모두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구원을 얻었으며, 내주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거룩하여 질 수 있고 영화롭게 될 것까지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 교리를 아는 것만으로 그치면 아무 소용이 없기에 이제 그것을 실제로 삶에 적용할 것을 12장 이후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3장 17절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고 하셨듯이, 진리를 알고 행하지 않으면 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론은 이미 많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성도의 삶은 더 이상 무엇을 자꾸 하나님께 받으려고 하기보다 이제 영적으로 자립하여, 영적 청년이 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온 몸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또, 그 이름을 인하여 다른 성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실 영원한 삶, 영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더 받을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지 못하다면, 삶의 평안이나 만족이 없다면, 그래서 삶에 대한 불평,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다 드리지 못하여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다 드리려면 의식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를 받아 달라져 가는 모습을, 성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본문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절)고 하십니다. 성경에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나오면 그 전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 드렸듯이 바울은 로마서 1-11장까지 전체의 교훈을 통틀어 결론을 맺으면서, 그 귀한 교리를 잘 깨달았으면 이제 삶에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형제들아’ 라고 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된 신자를 가리킵니다. 여기 ‘너희 몸을’ 이라는 뜻은 몸 전체를, 전 인격(the whole person)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지, 정, 의, 모두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새로 창조함을 받은 새 피조물로서 말입니다(고후 5:7).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몸을 말합니다(고전 6:19).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죄성을 버린 몸은 아닙니다.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몸이지만 그 가능성까지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드립니까? ‘거룩한 산 제사’(a living and holy sacrifice) 로 드리라고 합니다. 옛날 구약에서 드렸던 제물, 깨끗하고 순전한 동물들을 구별하여 드렸던 것처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구별된 거룩한 삶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산 제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사는 것처럼, 죄에 대하여는 죽었다가 의에 대하여는 산 자로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도로서 당연히 드려야 할 ‘영적(spiritual) 예배’라고 합니다. 여기 영적으로라는 단어는 원어에 의미에 의하면 합리적인, 합당한 예배라는 의미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다른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의 삶이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냥 무작정 그러한 삶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살 수 이는 근거를, 자원(resources)을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1절 처음에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하였습니다. 여기 ‘자비하심(mercies)’은 원어에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자비하심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무엇입니까? 그 큰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을 입은 자요,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롬 1:6-7). 또 하나님의 자비에는 그의 능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의 구원의 능력입니다(롬 1:16). 그의 죄에 대한 용서와 구속입니다(롬 3:25; 4:7-8). 죄로부터의 자유, 해방입니다(롬 6:18; 7:6). 또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의 양자로 삼으시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롬 8:14-17). 우리의 믿음, 소망, 사랑, 이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가 아닙니까? 이 모든 자비하심으로 우리는 거룩한 산 제사의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자비하심을 의지하여 우리 몸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날마다 영적 예배로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드리려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절) 고 합니다. 즉 몸 전체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려면 우리의 마음이, 의식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매일 우리 마음이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한번 변화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변화입니다. 이유는 이 세상은 계속적으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천국을 이루시기 전까지 이 세대의 풍토는, 이 세상의 패턴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풍토와, 패턴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J. B. Phillips 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를 “세상이 당신을 그 틀에 끼어 넣지 않게”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 세대의 풍토는, 이 세상의 풍조는 어떠합니까?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하지요. 기회주의자들이 판을 치지요. 처세술,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득세하지요. 정욕적이요, 감각적이지요. 질투와 시기로 가득차 있지요. 경쟁이 치열하여 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누르려고 하지요.
이러한 것들에 물들지 말아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be transformed)고 합니다. 원어는 현재진행, 수동태로 되어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의 힘으로 변화된 삶을 보여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변화를 받습니까? 성령의 힘이 아니면 안되기에 성령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말입니다. 다윗은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 119:11, 133)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찬양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을 돌이켜 보면 어디에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합니까? 아니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습니까?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줍니까? 여러분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물드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은, 특히 청년들은 아직도 변화를 받아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고쳐져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새롭게 되지 아니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면 변할 수가 없습니다. 개혁주의자들, 즉 자신의 삶을 개혁하며 사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삶의 변화를 꾀하지 못하는, 개혁이 없는 사람은 죽은 연못입니다. 돌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완고한 사람, 아집과 고집으로 늘 자아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대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은 새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말씀 가운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자신을 바꾸는 개혁을 단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그의 삶에 계속적인 변화를 보지 못한다면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이유는 생명이 있는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울이 바울로 변한 것입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지요. 저들은 끝까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또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할 큰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2절하) 입니다.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궁극적인 기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범입니다. 그는 40일간 금식 중에 사탄의 시험을 당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쳐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갈보리 산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에도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히 행하셨고, 끝내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요 6:38).  
만약 여러분의 삶이 무의미하고, 열매가 없다면, 만족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청년 여러분!
영적으로 자립하셨습니까? 현재 여러분의 모습에 만족하십니까? 더 변화를 받아야 할 부분은 없습니까?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서면 부끄러울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그대로 주님 만나시겠습니까?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쁘게 변할 수도 있고, 좋게 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누군가에 의하여, 무엇에 의하여 영향을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변해 갑니다.
10년 전의 여러분 모습과 오늘의 모습이 하나도 바뀐 것이 없이 똑 같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이 한 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고, 10년, 20년, 30년 그렇게 지나가면서 어딘가 변하여 갑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1년 후, 아니 10년, 20년, 30년 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기를 원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삶,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든지 아니면 계속 여러분의 뜻대로 사시든지 여러분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자비하심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매일 매일의 영적 예배로 드리지 않겠습니까? 거룩한 산 제사로 여러분의 몸을 드리지 않겠습니까? 헌신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우리 몸을 드리기 위하여 이 세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우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열려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도로 성령을 힘입어 새롭게 됨으로 변화를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실제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변화를 받읍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삽시다. 그 분의 뜻은 항상 선하고 기뻐하고 온전하심을 믿으십시다. 내가 변하면 내 가정이 변하게 되고, 내 교회가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데,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축복하십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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