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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6-23 (월) 09:4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27    
준비하십니까?(고후 9:1-5)



사람이 무엇인가 준비를 한다는 것은 그 일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별로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아니면 준비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합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학기말 시험 준비를 한다든지, 직장에서 맡은 일에 대하여 상사에게 보고할 분기보고서를 준비한다든지, 연애 중인 남녀가 결혼을 준비한다든지,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한다든지, 임산부가 아기의 출생을 준비한다든지, 피선거인이 선거를 준비한다든지, 집을 짓는 사람이 공사를 준비한다든지 등 등을 생각해 보면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슨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 오늘 예배를 드리러 오셨는데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오셨습니까?

짧은 다섯 구절의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준비한다’는 단어를 무려 다섯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8장과 연결되는 본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예루살렘 교회가 무척 어려우니 부유한 그들이 헌금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지 1년 가까이가 되었습니다. 이미 디도를 비롯한 믿을만한 동역자들을 그들에게 보냈습니다(8:23). 그리고 다시 서신을 쓰면서 본문에서는 헌금을 미리 준비해서 동역자들 편에 보내든지, 자신이나 마게도냐인들이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미리 준비한 헌금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전혀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가 즉시 그 자리에서 헌금한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준비된 헌금이야말로 참 연보이며, 억지가 아니고 순수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바울은 그렇게 준비하여 헌금하는 것이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합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1절) 하였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나 예루살렘 교인들이나 다 같은 성도이므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고린도교인들이 처음에 예루살렘 교인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기꺼이 돕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2절)고 하였습니다. 아가야 지방은 현재 그리스 반도인 마게도냐 남쪽 지역으로 아덴, 겐그레아, 고린도, 스파르타 등의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도시가 고린도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바울이 아가야를 말할 때에는 고린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반면 마게도냐인이라 함은 빌립보, 암비볼리, 베레아, 데살로니가 지역의 사람들을 말합니다(참고 8:1-2). 즉 이미 바울이 마게도냐 지역의 교인들에게 고린도교인들의 믿음에 대하여, 착한 마음에 대하여, 열심에 대하여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1년 전부터 고린도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같은 성도로서 당연히 도와야 됨을 깨닫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 같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로서 공동체 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열심이 많은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교인들이 교회에 무관심한 것은 아직까지 자신은 하나님 나라 손님이지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속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의식이, 아니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받기만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받기만 해서는 소속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손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섬긴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확실한 것입니다. 분명한 소속감을 갖고 주인의식,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소속감을 갖지 못할까요? 왜 주인의식,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할까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복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내가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이고, 다른 성도들도 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기에 당연히 형제, 자매를 사랑하며 돕습니다. 왜냐하면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가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대로 된 인간이면 한 부모로부터 난 핏줄로 연결된 가족들을 결코 무시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마음에 부담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고 배려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맺어진, 그 놀라운 은혜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으로 형제, 자매의 허물을 덮어주고, 수치를 덮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벗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한 가족이니까요. 그리고 잘못을 자꾸 지적하기 보다는, 비난하기 보다는 이해하며 돕는 자가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고린도교인들도 어려움을 당한 교인들을 보고 헌금을 할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 바울이 권면하는 것은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미리 디도와 동역자들을 보낸 이유도 자신이나 마게도냐인들이 도착했을 때 그 자리에서 헌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헌금을 전해줄 경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얼마나 그것이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증명하는, 그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자랑한 것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3-4절)고 하였습니다. 준비된 헌금이 아니라면, 그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서, 바울이 그 동안 고린도교인들을 자랑했던 것이 헛되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믿었다가 수치를 당하는 꼴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의 믿음조차도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까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준비를 했다가 헌금을 전해주면 그야말로 참 연보이며,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러므로 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5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연보”라고 하는 원어의 의미는 ‘찬양’, ‘축복’이란 뜻입니다. 즉 참된 축복은 의무 때문에, 체면 때문에, 또는 자랑하기 위하여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은 자기 만족을 위하여 하는 헌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의식, 하나님 나라의 주인의식을 갖고 사랑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어떤 분들은 준비를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성령님의 뜻에 더 합당하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때 그 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은 물론이고 어떤 믿음의 일을 잘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을 보고서는 그럼 성령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남겨 놓지 않았느냐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천사나 영물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제대로 하려면 정말 준비를 잘 해서 해야 합니다. 준비하는 일을 성령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서론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학생이 시험준비를 하지 않고 ‘A’ 학점을 맞으려고 한다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시험준비를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시험을 칠 때에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건축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집을 어떻게 짓겠습니까? 차 보험을 드는 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하여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주님께서도 한번은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 까지에 족할른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눅 14:28)라고 하시면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데 마땅히 준비를 하여, 앞으로 치를 대가를 생각하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즉 준비를 하는 사람이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요,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아무런 노력이 없이 하늘에서 무엇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며 주님 사랑으로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더욱이 이런 준비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도전을 받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데살전 5:2).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마 24:36; 25:13). 아니 도둑놈이 언제 어느 때 내가 도둑질하겠다고 말하고 옵니까? 설마 ‘도둑이 올까’ 라고 방심할 때 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등불에 기름을 가득 채운 슬기로운 여인들처럼 항상 깨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마 25:1-13)? 언제든지 주님께서 부르시면 떠날 준비를 해야 하고, 언제든지 주님께서 요구하시면 순종하고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준비가 잘 된 사람은 깨어있어 우선순위에 따라서 지혜롭게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압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위해서는 덜 중요한 일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대신 중요한 일은 준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잘 감당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이야 헌금에 대한 준비를 말하고 있지만, 이 원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성도로서 가장 중요한 주일에 드리는 공적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여러분은 얼마나 예배를 준비합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얼마나 준비를 하고 오십니까? 예배의 기도와 찬양과 설교와 헌금을 위하여, 혹은 성찬식이 있다고 하면 준비를 잘 하십니까? 직접 인도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동참하는 여러분들도 마음으로 준비를 잘 하십니까? 준비를 잘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만나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여러분 삶의 최우선순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절대주권자이신,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준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던지, 그 은혜를 아주 잊어버렸든지, 영적으로 밑바닥을 치고 있든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회개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 주님께서 오늘이라도 재림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 오늘 저녁에라도 여러분을 부르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소속감을,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의식을, 주인의식을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남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 받을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모든 일에 잘 준비하여 최선을 다하십시오. 참된 축복입니다.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준비하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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