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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7-07 (월) 06:2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82    
하나님 나라의 군사는(고후 10:1-6)


우리들 중에 아무하고도 싸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군인으로서 총과 칼을 가지고 실전에 참가하여 적과 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아니면 실제로 누구와 주먹 다툼을 하신 분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는 한, 죄성을 소유한 우리들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싸울 때가 있습니다. 말로 다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후회를 하지요. 만약 여러분 가운데 과거에 그런 실수를 범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모든 전쟁의 배후에는 항상 사탄, 마귀가 있다고 합니다. 태초의 인간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데 성공한 사탄은 그 이후로 계속 인간들을 괴롭혀 오고 있습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사탄의 머리는 부서졌지만, 아직 꼬리가 살아서 공격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더욱 교묘하게, 간교하게, 집요하게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고 하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군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땅에서 영적인 싸움을 해야만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아니면 주님께서 하늘나라로 부르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싸움에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엡 6:11), 뱀보다 더 지혜롭게,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마 10:16).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도 그 싸움을 하는데, 어떻게 지혜롭게, 어떻게 순결하게 하는지 우리가 배우기를 원합니다. 당시 바울의 대적은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유대주의 거짓 선지자(교사)들로, 바울의 사도성을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면서 육체대로, 세상적으로 싸우려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피하는 바울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1절에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라고 한 표현은, 그의 대적들이 사용하는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 ‘겸비하다’(timid)는 말은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소심한 겁쟁이를 뜻합니다. 즉 그들 앞에서는 아무 소리하지 않고 조용하다가, 떠나 있으면 담대하게 큰 소리를 치는 바울이 비겁하다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울이 그렇게 했겠습니까?
정말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근거 없는 말로 다른 사람을, 특히 지도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로 시기, 질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듣고는 진의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냥 그 사람과 동조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공격하는 사람은 함께 사탄, 마귀의 종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진심은 무엇입니까?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1절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동안 그들을 겁을 내서 피하거나 조용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온유함과 관용으로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온유(meekness)”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팔복 설교에서도 사용된 것으로(마 5:5), 유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유부단한 것이 아닙니다. 속은 강하지만 겉으로 부드러운 것을 뜻합니다. 능력이 있지만 절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한 태도로 공격을 참고 인내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지 못한, 온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미움, 쓴 뿌리, 분노, 복수심 등에서 자유로움을 뜻합니다.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목표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여유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에게서 그런 성품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끝까지 십자가를 잘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관용(gentleness)”이라는 단어는 친절함을 뜻합니다. 자신의 당당한 법적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장하지 않는, 은혜를 베푸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얼마든지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물리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있었지만 친절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관대하셨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사도권을 가지고 얼마든지 거짓 선지자(교사)들을 물리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관용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냥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6절에 천명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온유와 관용입니다. 그런데 온유함과 관대함을 가지고 대적들을 대하려면 속이 강해야 합니다. 넉넉해야 합니다.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의 하수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8장에서 언급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갖고 있었던 간절함, 열정(passion)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그들을 대할 때에 육체를 따라, 죄성을 따라 만용을 부리지 않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려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2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육체대로 행하는 자”는 죄성을 따라 혈기를 부리는 자, 기질을 드러내는 자라는 뜻입니다. 때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잘못된 열심을 말합니다. ‘담대하다’는 말도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성질을 부리며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온유함과 관대함이 있는 자가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군사는 주님 안에서 담력(competence),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무기로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 말입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4절)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대로 싸웁니다. 힘으로 싸웁니다. 독한 기질로 싸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런 것으로 싸우면 반드시 패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긴 것이 아니라 진 것입니다.
사탄, 마귀는 인간의 가장 센 힘으로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성질로 싸워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영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입니다. 어떤 폭탄에도, 어떤 무력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진입니다. 그러니 그런 것으로 아무리 휘둘러도 허공을 칠 뿐입니다. 오히려 더 힘이 듭니다. 지치게 만듭니다. 눈앞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사탄, 마귀의 하수인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육체로 그 사람을 이겼다고 해서 정말 이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 힘들게 합니다. 더 어렵게 합니다. 영적인 전쟁을 어떻게 육체로 싸워 이기겠습니까?
우리는 육체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병기로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워야 합니다. 악령들은 성령의 힘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탄,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는 그가 누굽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사탄의 하수인들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절대주권자이십니다. 사탄, 마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병기인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엡 6:17). 왜냐하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5절)하기 때문입니다. 진화론등 세상 모든 이론, 즉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면서 높아진, 교만해진 것들은 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장난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게 합니다. 잘 알지 못하게 합니다. 속이거나 부풀립니다. Humanism 을 비롯하여 세상 모든 철학과 종교, 이데올로기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인간이 만들어낸, 아니면 하나님 없이 살고 싶은 인간의 사상입니다. New Age Movement 나 요가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배후에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중심이요, 인간의 욕구를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생각으로 살아가고, 운영이 되는 이 사회에서는 진리가 통하지 않고, 오직 악이 득세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마귀가 배고픈 사자처럼 돌아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기려면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악한 마귀의 세력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공격하더라도 패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끝까지 싸우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들에게 승전가를 부르시게 할 것입니다. 점점 악이 성행하는 시대에 우리는 순수하게, 단순하게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마귀는 패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성령의 역사를 믿는 믿음으로 싸우는 자들을 보면 마귀는 두려워 도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미 주님에게 크게 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겁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사람이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탄이 인간에게 가장 먼저 유혹한 것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살 수 있다는 유혹이었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영혼이, 심령이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종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 마귀와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주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빌 3:19)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회심하시기 바랍니다.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는 영원히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끝까지 변하지 않고 육체대로 살고자 하는 거짓 선지자(교사)들, 율법주의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도다”(6절)라고 말입니다. 이 전에도 이미 고린도전서와 잃어버려진 서신을 그들에게 보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바울의 사도권에 도전을 하고 불복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에게 벌을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전권을 위임 받은 사도로서,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서 참는데도 한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참다가는 하나님 나라에 피해가 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고린도교회 진실한 교인들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지혜로 벌하여서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사탄,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서 계속 교회를 어지럽히고, 영적 피해를 주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으로 권징해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 안됩니다. 회개하고 더 이상 마귀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살게 하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대적의 본체는 사탄, 마귀입니다. 사람을 이기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인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하나님 나라, 십자가의 군사입니다. 영적 전쟁을 치르는 군인입니다. 마귀는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며,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동서남북에서 간교함으로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무기로 무장하고 훈련을 받아 싸우는 것입니다. 전쟁도 많이 참가해 본 군사가 잘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경험이 필요합니다. 작은 싸움들을 경험해 본 군사가 큰 싸움에도 담대히 싸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군사는 우선 주님의 성품인 온유함과 관용으로 사람들에게 대하여야 합니다. 마귀의 하수인이 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냥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싸워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이 세상의 사상이나 이론이 여러분을 주장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로 고정시키십시오. 무시로 기도하십시오. 혼자서 골방에서도 기도하시고, 힘써 모여서도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기게 하십니다.
물론 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죽기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코 사탄, 마귀가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승리의 확신을 갖고 당당하게 싸우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 15:57-58)!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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