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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8-08 (월) 06:0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526    
조건없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갈 3:15-22)


어떤 사람이 변호사 앞에서 공증을 받아 유언장을 작성하면 법적으로 효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죽고 나면 남긴 유산이 유언장에 의하여 분배가 됩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갖게 되는지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유언장을 보고 놀라는 사람도, 실망하는 사람도,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유언장도 쉽게 바꿀 수가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지난 주일 살펴본 대로 갈라디아교회 교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자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는 것도 믿음으로, 자라는 것도 믿음으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이 믿는 자의 심령에 임하여 능력을 행하시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으로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이렇게 복음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아브라함의 언약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2000여년 전, 모세가 율법을 받기 500여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2-3)고 하셨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엘리에셀)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이삭)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4-6)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 곧 언약(covenant)은 무조건적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이 놀라운 약속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은 것 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없던 그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했는데 아브라함이 한 일은 그것을 믿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후에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 커서 청소년이 되었는데, 그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 22:17-18절상) 하셨습니다. 여기 씨라고 단수로 쓰여진 것이 중요합니다. 잠시 후 16절 살펴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죽고 난 후, 그의 후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창 26:3-4, 24; 28:13-15; 35:11-12). 그런데 70여년 후에 야곱의 12 아들들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거기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셔서 모세를 부르시고 애굽의 바로 왕으로부터 출애굽하게 하십니다.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들을 베푸시면서 말입니다. 출애굽한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백성들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표준(standards)을 명하십니다. 바로 율법을 주시면서 모세와 언약을 맺습니다(출 20:1-31:18). 이 언약은 조건적인 언약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이 다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죄를 사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인 희생제사 제도를 만드시고 믿음으로 희생제물을 드리며 용서를 구하면 일시적으로 사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500여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나아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시며, 복을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삼하 7:12-13, 16)! 그러므로 다윗과 맺은 언약도 무조건적인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그 후 1000년이 지난 후 다윗과 선지자들에게 약속하신(렘 31:31)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의 백성들과 새언약을 맺게 됩니다. 오래 걸렸습니다. 구약성경은 이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아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언 그대로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첫 성찬식을 하시면서 예수님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니라”(눅 22:20)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갈 3:13-14).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셔서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했습니다. 피 값을 지불하고 죄의 노예인 우리를 샀습니다. 그리고 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아브라함의 언약보다 더 높게, 위에 두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약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아브라함의 언약, 다윗의 언약처럼 무조건적인 새 언약, 아니 앞선 그 어떤 언약보다 훨신 뛰어나고 중요한 새 언약을 강조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15-16절)고 합니다. 변호사 앞에서 작성한 사람의 유언장도 한번 정해지면 쉽게 빼거나 더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의 자손 중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창 22:17-18절상)? 본문 16절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궁극적인 성취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넘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 유업을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17-18절)고 한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어진 새 언약도 아브라함의 언약처럼 무조건적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율법을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도 그렇고, 새 언약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노력을 해서 유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유업은 곧 믿음으로 전가되는 하나님의 의이며, 성령의 인침이며, 구원이며, 영원한 복입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입니까?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19-20절)고 하였습니다. 왜 율법은 주셨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범법함을 더한 것이라고 합니다. 죄성으로 말미암아 법을 어기는 것이 더해지는, 허물(transgressions)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주시기 전까지 사람들의 잘 잘못의 기준은 양심이었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고 한 첫처럼, 양심이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양심도 더럽혀졌기 때문에 필요했던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교통법규를 어기려고 하는 자에게는 그 법규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법규 때문에 양심이 있어서 자신이 법을 어겼다는 의식은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사람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유익하지만, 어기려고 하는 자에게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죄의식은 갖게 하겠지요.
즉, 율법이 명백하게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것입니다. 죄는 더 이상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이 될 때에는 율법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자의 손인 모세에게 주어진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중보(mediator)는 양쪽 다 위한 것이지, 한쪽만 위한 것이 아닙니다. 조건적인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한쪽에서 어기면 그 죄를,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언약이나 새 언약은 오직 하나님 편에서 책임을 지는 언약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편에서는 율법보다 훨씬 좋은, 탁월한 언약입니다.
그러면 율법과 하나님의 약속들 사이에 갈등이 있는가?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21절)고 하였습니다. 율법과 하나님의 약속이 상충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능히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주어졌을 것이지만, 결코 율법이 능히 살게 하지 못합니다. 성경(Torah) 곧 율법은 세상 모든 것이 심판 아래 정죄를 받게 되었음을, 죄에 매어 있음을 깨우쳐 줌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죄 용서가, 곧 정죄(심판) 혹은 형벌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게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율법이 중요합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사람들은 교묘히 합법적인 유언장을 바꾸기도 하며, 유능한 변호사를 사용하여 자기 편에 좋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언약은 아무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대로 유효합니다. 어느 누구도 폐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언약을 만드시고, 믿는 자에게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너는 죄인이야 정죄를,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용서 받기 때문에 정죄도, 심판도 받지 않고 오히려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어 영원히 그 유업을 받아 누리게 된다’ 라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면, 마땅히 정죄를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을 자임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 언약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거저 받는 선물이, 유업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진리의 복음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꼭 붙들고, 늘 감사하며, 선물을 누리며,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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