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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8-15 (월) 09:5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507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나요?(롬 13:11-14)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에 큰 영향을 줍니다. 경찰관들이 제복을 입고 있을 때에는 공직자로서 행동합니다. 그들이 누군지 밝혀주는 옷이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들을 사회의 질서를 잡아주고 범죄자들로부터 지켜주는 사람들로 대합니다. 그들이 때로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상황 속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슨 옷을 입느냐에 따라 우리의 태도와 행동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정장을, 아니면 아주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대통령을 만나면서 아무렇게나 청바지나 반바지를 입고 T shirt 로 백악관에 가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보다 더 훨씬 존귀하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찬양을 하며, 경배를 드리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존하신 하나님을 아무렇게나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장을 입고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심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우리가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12절)고 하며,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14절)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난 주일에는 이웃 사랑이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라, 율법의 완성이라고 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8-10절).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며,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니 그 사랑을 갚고 살아야 하는 데, 바로 우리의 이웃에게 아리따스의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11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말에는 맨 앞의 단어 하나가 번역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시대명사가 빠져 있습니다. NIV 영어 번역에는 ‘Do this’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다시 한번 이웃 사랑을 하라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사는 때가 종말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으면 안 되고, 깨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뜻은 시간(chronos)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 때(kairos)를 의미합니다. 즉 시간적으로 자고 깨는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고 깨는 시대(epoch), 기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하반절의 구원은 완전한 구원, 주님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이 영화롭게 변하는 구원을 가리킵니다. 종말이 와서 주님 재림하시면 우리의 몸이 죄를 모르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이 때가 벌써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은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주님의 재림은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의 때보다는 훨씬 가까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날,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막 13:32).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힌트를 주시기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급속도로 전파되는 복음이기에 아마 우리 젊은 세대들의 생전에는 반드시 오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2000여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는데 하면서, 마치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세상 쾌락에 빠져서 그냥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현실에 안주하여 자신만 생각하며 삽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으로 주저 앉으려고 합니다. 바로 영적인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재림이 늦어져서 이 세상 종말은 생각하지 않고 산다 하더라도, 우리 각자 인생의 종말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일일 수도 있고, 내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일을 장담하지 말고 오늘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깨어 준비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내일 15일은 우리나라 광복 7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민족이 36년간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 비참하게 살다가 해방을 맞이한 감격의 날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제국의 종말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악랄하게, 잔인하게 못된 짓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패권의 야망을 가지고, 일본 천황을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신격화하면서 우상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 핍박에 못 이겨서 타협을 하는 신자들이 있었지만, 결코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각오하면서 목숨 걸고 신앙을 지키던 신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참 신자들을 다 죽이고, 한국에 있는 모든 교회를 없애버리려고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1945년 8월 17일 밤을 기하여 한국 전역에 있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교회 지도자와 거기에 동조하는 신자들을 모두 몰살시키라는 지령이 내려져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문서가 해방 후 조선총독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이틀 전에 일본에 원자폭탄 투여하게 해서 그들이 항복을 하고 우리 나라는 해방되었습니다. 순교의 각오로 신앙을 지키던 참 신자들이 다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라와 민족, 아니 개인은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이, 헬라(그리스) 제국이, 로마 제국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다 무너졌습니다. 역사상 왕들도, 대통령들도 오래갈 것 같았으나 결국 허망하게 종말을 맞이한 것이 세계 역사가 아닙니까? 이 미국도, 중국도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라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인생의 종말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사실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인생은 그 끝 날이 오늘일지도 모른다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바로 종말론적 신앙생활입니다. 11절 말씀인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종말론적 삶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입니까?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2절)라고 하였습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밤은 더 깊게 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이 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고 합니다. 어두움의 일이 무엇입니까? 13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이, 대부분의 로마인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방탕과 술 취함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놀면서 흥청망청 즐기는 것입니다. 음란과 호색은 금지된 침대에서 그릇된 욕망을 채우는 삶과 해서는 안 될 짓을 해 놓고도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삶입니다. 쟁투와 시기는 말 그대로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고자 다른 사람과 싸워 짓밟고서라도 성공하고자 하기에 시기심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늘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에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4절하)고 요약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12절하). 빛의 갑옷이라 함은 어두움의 세력인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하여 입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1)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군사로서 무장하는 옷을 말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군화,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을 말합니다(엡 6:14-17). 이 무장이 안되어 있으면 마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죽지 않으면 큰 부상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내일이 내 인생의 끝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13절상) 하였습니다. 즉 자지 않고 깨어 있는 낮처럼, 빛의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하고 단정히(decently, properly) 행하라고 합니다. 마귀가 틈 탈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믿는 자답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은 밤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단정하게 행하며 낮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믿는 자라면 당연히 믿는 자답게 생각하고 말하며, 믿는 자의 자세로, 태도를 취하며 행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말합니다.
원래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말의 뜻이 그리스도를 따라 모방하는 사람, 그리스도다운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14절상) 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다는 것은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서의 새 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옛날에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입은 것입니다. 문제는 때로 내가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자꾸 그리스도의 옷을 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부추기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옷을 다시 입으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번 입은 새 옷은 벗을 수가 없습니다. 늘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이다!’외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이, 아니 내일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긴장을 풀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 느슨히 죄성을 따라, 육신을 따라 내 마음대로 사는 순간에 주님께서 부르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은 유명한 성 어거스틴의 삶을 바꾸어 놓은 성경말씀입니다. 이태리 밀란에서 영적 고민에 빠져있던 그가 이 성경 말씀의 사본이 옆에 있었으나 읽지 않고 있을 때에, 옆에서 놀던 아이들이 그에게 이 말씀을 읽으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Tolle lege! Tolle lege!’(Take up and read!) 그 때 성령이 역사해서 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깨달았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영적으로 자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지금 잘 때가 아닙니다. 어두움은 점점 깊어갑니다. 곧 해가 떠오릅니다. 언제인지 모르나 금방 다가옵니다. 깨어 있으셔야 합니다. 빛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일은 아니겠지 하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미루지 마십시오. 이런 저런 일에 상처 받고 자기 자신에게 무한히 동정하며 안일하게 있을 때가 아닙니다. 긴장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최전선에서 하나님 나라를 지키는 군사입니다. 휴가 나온 군사도 아니고, 후방에 있는 방위병도 아닙니다. 사탄 마귀은 지금도 여러분을 삼키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합니다. 공격합니다. 방어하기에만 급급해서는 인생이 힘들고 지칠 뿐입니다. 마귀를 공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빛의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들고 있는 성령의 검으로 찔러야 합니다. 지금 아무런 공격을 받고 있지 않다면 훈련을 하십시오. 훈련을 해야, 준비를 해야 공격을 받을 때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묵상하며 암송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해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잠시 후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너무 이 세상에 집착하며 많은 것을 투자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 것에 애착을 가지지 마십시오. 오히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십시오. 그 나라를 위하여 마음과 몸을, 시간과 건강과 물질을 투자하십시오. 영원히 남는 이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인격, 성품입니다. 주님의 옷을 입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로서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종말적인 신앙인의 모습은 단정히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믿는 자답게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영적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까리따스의 사랑을 하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좀 힘들고 때로 고난이 있어도 앞서 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멋진 신앙의 선배들의 걸어간 길을 기억하면서 소망 가운데 참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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