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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08-01 (일) 08:2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427    
[8/1/04]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느헤미야 6:1-19)
여러분들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겠다고 작정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과 동행하며 살 것이라고 선포하고 난 후에,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사탄, 마귀의 위협과 공격입니다. 그 결심한대로 살지 못하도록 여러 모양으로 괴롭힙니다. 특히 지도자들에게는 더 합니다.
이제 수십 년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지 못한 위대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거의 끝나려 하는 순간에(1절) 느헤미야에게 다시 한번 큰 시험이 찾아옵니다. 아마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하신 모양입니다.
느헤미야 4장과 5장에서의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한 시험이었습니다. 오랜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여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려는 온 백성에게 비난과 조롱, 비웃음으로, 공격해서 성벽을 무너뜨리겠다는 위협으로 시험하였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면 이스라엘 전체를 멸하겠다는 위협이었습니다. 그런데 6장에서는 지도자 느헤미야 개인에게 시험이 퍼부어 집니다. 이유는 어느 조직이든 지도자가 넘어지면 조직도 따라서 넘어지게 되어 있는 줄 사탄이 알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그만큼 많은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더욱 근신해야 합니다. 양들은 지도자를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해 주어야 하구요. 목자를 치면 양 떼가 흩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사탄이 이것을 노리고 목자를 치는 것입니다.
성벽 재건이 완성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지도자 느헤미야를 공격하는데, 세 종류로 위협합니다.

첫째는, 개인적으로 해하려는 음모입니다(1-4절).
2절에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노 평지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곳으로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있는 휴양지와 같은 장소입니다. ‘그 동안 성벽을 재건하느라 수고 많이 하였으니 이제 잠시 쉬면서 이야기나 나누자’ 하면서 꾀이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부탁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기에 거절했지만, 공식적인 이유는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는데 어찌 큰 역사를 정지하고 너희에게로 가겠느냐는 것입니다(3절). 네 번이나 요청하였지만 느헤미야의 대답은 여전하였습니다(4절). 앞에 놓인 큰 일에 집중하고 있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을 품도록 만듭니다. 다른 데에 신경을 쓰게 하고 맡은 일에 불충성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탄의 음모라는 것을 깨닫고 맡은 사명만 끝까지 붙드는 은혜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공개적으로 중상모략 하는 것입니다(5-9절).
다섯번째 사자를 보낼 때에는 일부러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5절). 다른 사람들도 보라는 것입니다.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6-7절)! 개인적으로 오노 평지에 오라고 네 번씩이나 초청하였는데 오지 않자,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나쁜 소문을 퍼뜨립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당신이 유다 사람들과 함께 성벽을 재건하고 왕이 되려고 모반을 계획한다고 하는데, 이 소문이 아닥사스다 왕에게까지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지자들까지 세워서 유다 땅에 왕은 아닥사스다 왕이 아니라 느헤미야라고 한다는데 우리가 이 일을 왕에게 알리면 네게 좋을 것이 무엇이냐? 그러니 와서 의논하자’는 것입니다. 지도자에게 나쁜 소문 만큼 큰 상처를 주는 것이 없습니다. 잘못된 소문이 퍼져 나가면 밤새 잠도 못 이루고 심지어는 사역을 중단하는 사태까지도 벌어집니다. 잠언 6장 16-19절에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6-7가지가 열거되어 있는데 그 중 두번째가 “거짓된 혀” 입니다. 과장된 말이나 정확하지 않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진실해야 하지 않습니까? 결코 거짓의 자리에, 헛된 소문의 자리에 서서는 안됩니다. 사탄은 그것을 이용합니다. 느헤미야 개인적으로 상처를 입게 하고,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입술에 파숫군을 세워두는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말에 두 가지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는 사실에 근거한 말만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덕이 되는 말만을 해야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 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고 하였습니다.
거짓 소문, 중상 모략에 느헤미야가 어떻게 대처합니까? 8절에 ‘너희들이 하는 말은 사실 무근이며 너희들이 마음대로 지어낸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9절) 합니다. 그리고는 낙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해 나갑니다. 대단하지요. 언제 아닥사스다 왕에게 오해를 사서 숙청당할지 모르는 판국에 계속 성벽 재건 사업을 한다는 게 그가 뛰어난 영적 지도자임을 다시금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념, 신앙이 확실한 것이지요.
느헤미야는 자신의 앞날보다는 하나님의 일, 즉 성벽 재건에 온 마음이 있었습니다. 설사 오해를 받아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무너진 성벽 재건 만큼은 완성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묵묵히 기도하면서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도 자존심이 상하거나 자기 명예가 더럽혀 지거나, 자신의 삶에 실제적인 피해가 오면 그 자리를 훌쩍 떠나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목숨과 명예를 내놓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충성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희생을 무릅쓰고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에게 명예를 주셨으며,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하겠지요.

셋째는, 자기 편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배신하고 속이는 것이었습니다(10-14절).
두 번의 큰 위협에도 요동하지 않는 느헤미야를 보고, 사탄은 세번째로 정말 어려운 시험을 줍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선지자인 스마야를 이용하여 위협합니다. 10절에 의하면 스마야가 며칠 새 도통 얼굴이 보이지 않자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스마야가 느헤미야를 위해 주는 척하면서 사람들이 언제 너를 죽일지 모르니 하나님의 성전 외소로 피신하라고 합니다.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무슨 성벽 재건의 완성이냐는 것입니다. 성전 외소로 피하여 거기서 같이 기도나 하자는 것입니다. 가장 큰 시험이나 유혹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위하는 척 하면서 거짓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분별력을 보십시오. 11-12절에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합니다. 그들이 무서우니 도망하라는 말에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올바로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나를 두렵게 하고, 범죄케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비방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내 목숨을 살리려고 하나님의 일을 나두고 도망하는 것은 죄 짓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3절). 공갈 협박 앞에, 위협 앞에 양보하는 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어떤 위협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굳게 서는 느헤미야였습니다. 그 때에도 오히려 또 기도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도미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14절)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15-16절을 보십시오.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지속적인 사탄의 위협과 공격 가운데서도 결국 성벽은 재건이 되고 맙니다. 성벽이 완성되고 난 후 느헤미야와 그 백성들은 얼마나 감격하였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런 경험을 한다고 하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탄의 무수한 궤계 속에서 아무리 사방을 바라보아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온갖 조롱과 비웃음, 위협 속에서도 성벽은 완성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 일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토록 중요합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주의 일을 감당할 때에 반드시 사탄의 공격이, 위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위협이 여러분을 막고, 낙담하게 하며, 주의 일을 못하게 합니까? 느헤미야처럼 굳게 서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벽 재건 완성을 거의 눈 앞에 두고 있는 느헤미야에게 찾아온 세 가지의 큰 위협에서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오히려 강하게 하셨습니다. 사탄은 그에게 개인적인 위협을 하기도 하며, 공개적으로 그의 인격과 성벽 재건에 대한 동기를 중상 모략하는 위협을 하기도 하며, 목숨을 잃을 큰 두려움에 떨어 도망하게 하려는 위협 등 아무리 그를 쓰러뜨리려 해도 실패하였습니다. 성벽은 계속 세워져 갔습니다. 성문에 문짝들이 달아집니다. 절대로 그들을 쓰러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끈질김이 결국 큰 일을 해 내었습니다. 느헤미야와 그와 함께 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명예에 금이 가더라도,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는 일이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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