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2,456,359
오늘방문 : 51
어제방문 : 89
전체글등록 : 3,055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1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09-27 (월) 06:5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85    
[9/26/04]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봉사자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봉사자 (느헤미야 11:1-34)
이 미국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몸 바쳐 싸우다가 죽은 무명의 용사들이 많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머리 속에 전혀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 입니다. 국립묘지에 가면 많은 사람이 묻혀 있지요. 아니 국립묘지에 조차 묻히지 못한 용사들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곳곳에 현충탑을 세워 그들을 기립니다. 나라를 위하여, 나라의 지도자들를 위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쓰임 받다가 잊혀진 영웅들입니다. 이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를 위하여, 자유와 인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하나님 나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께 쓰임을 받다가 먼저 가버린 믿음의 영웅들이 많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찬양하기도 하며 기리기도 하지만, 당대에 만큼은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충성했던 봉사자들입니다.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많은 상급을 받는 분들입니다.
Charles Swindoll 목사님은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 속내에 남아있는 두 가지 위험은 1)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일하기를 꺼려하는 위험과, 2)그렇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기를 실패하는 위험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되 남에게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명예를 나타내려는 위험과 자신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봉사에 대하여 인정해 주며 격려해 주지 않는 위험을 말합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사람이 정말 자기 영광 받는 것을 개의치 않고 일하는 자들을 축복해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정말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처럼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봉사자들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1장에서는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되었지만 아직도 황폐한 성 안에 들어와 살게 된 거주자들의 명단이 읽기에도 지루할 정도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애써 기록한 데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성 밖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그래도 비교적 살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성 안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성벽은 재건되었지만 아직 성 안은 폐허인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7장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동안 70년 포로생활에다가, 또 약 90년이 지난 후에야 느헤미야가 나서서 성벽을 재건하였으니 황폐한 채로 160년이 지났다면 그 성 안은 그야말로 쓰레기 장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성 안에 들어가서 살려고 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의무적으로 사람들을 그 곳에 살게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돌보며, 그 곳에도 집을 짓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추진합니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1절에 보면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구분(九分)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라고 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의무적으로 성 안에 살도록 하고, 백성들 가운데 10%를 제비를 뽑아서 살게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2절이 우리에게 큰 관심을 끕니다.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절에서는 자원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성 안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원하여 그 성 안에 살면서 시온 성 예루살렘을 돌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 자원했다는 단어와 똑 같은 단어가 출애굽기 35장에 모세가 성막을 짓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그 때에도 이렇게 이름도 없이 자원하여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출 35:21)! 사실 우리가 모세나 아론을 기억하지 이런 사람들을 기억합니까?
그래서 백성들이 자원하여 성 안에 거하기로 한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며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에 이렇게 자원하는 심령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정말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들과 비슷한 무리가 또 나오는 데 “또 전에서 일하는 그 형제니 도합이 팔백 이십 이명이요”(12절상) 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에서 자원하여 일하는 사람 822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은사와 재능으로 여러 모양으로 충성스럽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도왔습니다. 각종 기술자와 공장(工匠)들과 성전 곳곳에 필요한 일들을 맡아서 봉사하는 자들입니다. 궂은 일을 마다하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이름도 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16절에도 나오는데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십브대와 요사밧이니 저희는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하였는데, 우리 말에는 그 의미가 잘 전달이 되지 않는데 더 정확한 번역은 그 두 사람이 성전 바깥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감독하였다는 말입니다. 즉 성전 바깥 일을 하는 일군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깥 일이라는 것이 잔디를 깎고, 주변 정리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백성들을 재판하고, 상담하고, 각종 민사상의 일들을 처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또한 이름은 나와있지만 우리들의 눈을 끄는 사람이 있는데 17절의 맛다냐입니다.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니 저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되었고”(17절상) 하였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른, 즉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기도 팀의 지도자였다는 말입니다. 무엇으로? 무릎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중요하였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전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그와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일은 잘 못하는 지 몰라도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증거해 주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영광 받지 못하는 영웅(unsung hero)은 무릎 꿇는 성도들입니다. 없어서는 안될 봉사자들입니다.
기도의 용사들을 만나 보셨습니까? 만나보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은 신앙 생활의 가장 큰 기쁨을 맛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심령을 하나님께 붓는, 토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십시오. 오늘날의 맛다냐가 되십시오. 정말 교회가 필요한 영웅들 입니다.
또 한 사람을 눈 여겨 보십시다. 22절에 “노래하는 자 아삽 자손 곧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하였습니다. 웃시 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마 낯설 것입니다. 무명의 봉사자입니다. 아삽 자손들은 하나님의 전에서 찬양을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웃시는 찬양하는 사람들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 전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 지휘자로 섬겼다는 말씀입니다. 무명의 성가대원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겼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느헤미야가 인정하려 했던 다섯 부류의 사람들,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충성스럽게 봉사했던 무리들을 기억하십니까? 첫째, 자원하여 황폐한 성 안에 살려고 했던 사람들; 둘째, 성전 안에서 일했던 822명; 셋째, 성전 바깥 일을 하였던 사람들; 넷째,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기도했던 사람들; 다섯째,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가 자기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의지적으로 충성했던 봉사자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러한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자원하여 감당하려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서 여러 일들을 맡아서 하실 분들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 바깥에서 성도들의 아픔과 문제를 같이 나누고,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분들의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무릎 꿇는 용사들이 필요합니다. 목사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영혼들을 위하여, 주의 일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분들의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누가 밀지 않아도 주를 찬양하는 일에 자원하여 묵묵히 노래하는 분들도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 몸 담고 있는 성도님들이라면 한 분도 빠짐없이 이렇게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사람에게 인정 받지 못해도 신실하게 충성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첫째는, 여러분들이 유명해지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은사나 재능은, 어떤 봉사든 가치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잘 사용하십시오. 주의 일에 쓰임 받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맛다냐나 웃시처럼 귀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줄 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오히려 겸손히 자신을 나타내지 마시고 신실하게 봉사하십시오.
둘째는, 여러분들이 주님 사랑 안에서 하는 모든 수고를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이 말씀을 기억하고 누가 여러분을 알아주지 아니하고 인정해 주지 않을 때에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 다 아시는 하나님을 상대하고 신앙생활 하십시오.
셋째는, 우리의 마지막 상급은 내게 주어진 것으로 얼마나 신실하게, 충성했느냐가 결정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공적(公的)으로 인정 받는 것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주위 사람들이나, 교회 전체가 여러분의 섬김과 봉사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실 상급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치는 박수 소리를 가지고 상급을 결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어느 무명 용사처럼 산다고 할지라도 만약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봉사하고 사신다면 큰 상급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가 아니면 하늘나라에서 말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010 주일설교 [6/18/06] 아버지의 가르침 한 태일 목사 2006-08-12 3620
1009 주일설교 [9/26/04]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봉사자 한 태일 목사 2004-09-27 2585
1008 주일설교 [10/15/06] 벌레 먹혀 죽어버린 교만 한 태일 목사 2006-10-18 2534
1007 주일설교 [11/28/04]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한 태일 목사 2004-11-30 2522
1006 주일설교 [6/13/04]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한 태일 목사 2004-06-15 2406
1005 주일설교 [8/1/04]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한 태일 목사 2004-08-01 2379
1004 주일설교 [10/17/04] 그가 너로 인하여 한 태일 목사 2004-10-18 2347
1003 주일설교 [9/19/04] 기록한 언약의 내용 한 태일 목사 2004-09-21 2315
1002 주일설교 [7/18/04] 청렴한 지도자 한 태일 목사 2004-07-20 2315
1001 주일설교 [6/25/06] 성도의 역사의식 한 태일 목사 2006-08-12 2305
1000 주일설교 [7/25/04] 가든지 보내든지 한 태일 목사 2004-07-27 2287
999 주일설교 [7/9/06] 쓰임받는 그릇 한 태일 목사 2006-08-12 2142
998 주일설교 [9/30/07] 사랑이 없으면 한 태일 2007-10-02 2139
997 주일설교 [7/4/04] 전투하는 성도 한 태일 목사 2004-07-05 2139
996 주일설교 [8/22/04] 사람을 세우는 사람 한 태일 목사 2004-08-25 2057
995 주일설교 [re] [10/15/06] 벌레 먹혀 죽어버린 교만 kim kyoowan 2006-10-22 2056
1234567891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