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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10-18 (월) 21:5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348    
[10/17/04] 그가 너로 인하여
그가 너로 인하여 (스바냐 3:14-20)
이 세상 삶이 때때로 곤고하고 힘든 일이 많아도 만약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주께서 우리를 어여쁘게 보고 계시고,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진리를 알면 정말 힘있고, 기쁘게 감사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이러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어려움, 힘든 것 자체만을 보고 사니 감사가 없고, 인생이 마치 고난의 연속으로만 여기고 비관적으로 살게 됩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이라 불리우는 교포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선조는 한때 대단히 고통스러운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북간도 일대에 제법 잘 정착해서 살고 있는 선조들은 스탈린의 난데없는 이주명령으로 살던 집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나 허허벌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다가 쫓겨가 멀리 이방 나라에서 모든 권한을 빼앗긴 채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스바냐 선지자 당시 북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을 했고, 이제 곧 유다도 잠시 후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 당할 즈음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택 받은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우선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촉구하며, 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그들을 심판할 수 밖에 없는지를 선포합니다(1-2장). 그리고는 3장에 와서 그래도 선하신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그 벌을 거두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스바냐의 마지막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한 때가 되면 유다 백성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다 멸하고, 그들 가운데 계셔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회복이 되어서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조용히 지켜보시는 그런 행복한 때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당시 대 제국 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거나 노예가 된 민족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쁜 소식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14절)! 다른 나라 민족들은 몰라도 너희들은 회복이 될 것이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에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 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15절) 하였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그들이 포로생활하게 된 것은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합니다. 그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노예가 되어 전세계에 흩어진 것 또한 형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형벌을 다 받으면 감옥에서 나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 유다 백성들은 형벌이 끝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백성들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셔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모든 기반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런 비참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함께 하려고 하는데 우리 편에서 거절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모셔 오면 됩니다. 그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주인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세상에서 신앙양심을 가지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을 의지하면 절대로 하나님께서 멀리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15절에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라고 하시는 것은 너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무슨 일을 만나도 화를 당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16절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손을 늘어뜨린다’ 라는 말은 낙심되어 자포자기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데, 그렇게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며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17절에서 그 이유를 밝힙니다.
이제 문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 그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의 통치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변해가는 것입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타락해져 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그 악한 영향을 받지 않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으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백성들입니다. 아이러니칼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았을 때에 뭔가 신선함을 느낍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순수함과 신선함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은 부패하지만 너희들 만큼은 변질되지 말고 끝까지 순수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무형적인 힘입니다. 부패하지 않는 순수함입니다. 아니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온 세상이 다 부패하여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맛나게 합니다. 금번 부흥사경회도 성령의 은혜로 말씀을 붙잡고 다시 한번 새로워지기 위하여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제 17절을 보십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오늘날 이 세상에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가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빛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다 비추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는 말은 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능히 건지실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구원이 단순히 영적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에서의 구원을 뜻합니다. 사실 이 세상 어두움의 권세가 우리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몰아내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친한 친구로부터, 가족들로부터 미움 받고, 직장에서도 쫓겨나기 쉽고, 사업도 제대로 안되어서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없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어려움에서 건질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은 나의 어려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어려움이며 하나님이 싸워야 할 싸움입니다.
여호사밧 왕 시대에 주위에 있는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유다 백성들의 씨를 말리기 위하여 쳐들어 왔습니다. 그 때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나에게 속한 것이라”(대하 20:15)고 하였습니다. 그 싸움은 생존을 위한 그들의 투쟁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믿음 위에서 말씀을 붙들었고 그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두말할 필요가 없구요.
우리의 고난은 나의 고난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고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개인적인,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생기는 고난은 나의 고난입니다. 불신자가 겪는 고난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게 하고,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는,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내가 겪는 고난은 하나님의 고난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고난에서 이김을 주시는 전능자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자이실 뿐 아니라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라고 스바냐 선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서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자녀로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한없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조용하게 사랑하십니다. 요란하고 떠들썩하게 사랑한다 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강도로 그 사랑을 표현하시면 우리는 그 사랑을 다 감당하지 못해서 모두 미치거나 죽을 것 같아서 그러신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지만 우리를 조용히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시고 때로는 성경 말씀을 유추하여 스스로 이해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어려움에서 건지시면서도 하나님은 뒤에서 숨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려움 가운데서 도우시면서도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서 하십니다. 우리가 성숙하여지고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가 너무 좋아서 노래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도 모자랄 판인데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좋아하셔서 노래를 부르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서는 조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더군다나 부족하고 연약한, 정말 세상에서 쓸모없어 버림받은 것 같은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18절에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희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하였습니다. 여기 대회란 말은 특별한 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날에 그 모임을 인하여 근심한다니 무슨 말입니까? 정통 유대인이 아닌 자들입니다. 그들의 기준에서 볼 때에 전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죄인들입니다. 이방인들입니다.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은 심한 죄의식과 정죄감에 빠져 있습니다. 도저히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그런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자들을 모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예배하기 원하는 자들의 예배를 받기 원하시고, 그 눈물을 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죄인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눈물로 발을 닦고 귀한 향유 옥합을 깨어 그 발에 부었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그렇게 심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자격 없는 자들을 모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정한 감사가 있는 예배, 사랑의 눈물이 있는 예배를 너무나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잘난 사람들만 모인 교만한 예배, 형식적인 예배에 하나님께서도 신물이 나셨던 것입니다.
19-20절에도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던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저는 자’라고 하였을까요? 포로나 노예로 잡혀가는 데에 가장 서러운 사람은 저는 자나 팔을 쓰지 못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전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자들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괴롭게 하는 자들을 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부족한 자들을 성령으로 새롭게 하셔서 온전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치와 수욕 대신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많이 힘드십니까? 어떤 어려움을 통과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미 기쁜 소식, 복음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 치유와 회복의 좋은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 편에서,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즐거워하신다고 합니다. 어떤 고난도 이기게 하신다고 합니다. 아무리 부족하여도 그 백성, 자기 자녀들로 인하여 노래하신다고 합니다. 형벌을 다 제하였다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우리 편에서 성령을 의지하여 날마다 새로워지면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해도 정결함, 순수함을 지켜가면 됩니다. 때때로 당하는 고난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자신이나 내 가정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고자 하기 때문에 만나는 고난입니다. 겸손히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감격하며 예배를 드리는 자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수치와 수욕 대신에 결국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누가 자기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지 아십니다. 주님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그만큼 주님을 많이 알고 주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합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누구보다 주님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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