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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11-30 (화) 02: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667    
[11/28/04]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 1:12-14)
우리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계시지만, 그 뜻을 이루실 때에 성도들의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세월 하나님께 반복하여 범죄함으로 심판을 받아 이역만리 이방나라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본국으로 귀환하여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땅과 집을 재건하였는데, 이러한 회복을 위하여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떼 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 36:37-38)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실 것이면 왜 그 백성들로 하여금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왜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하였습니까? 우리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그 능력을 나타내 보이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할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40일을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시며 가르치시고 승천하셨습니다(행 1:3, 9). 승천하시기 전에 중요한 약속과 함께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리고는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1절).
제자들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이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에 예루살렘에 돌아와 그들이 머물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12절). 이 다락방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으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 다락방은 위층에 있는 넓은 방인데, 유대인들이 손님을 위해 예비해 두는 방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열한 사도들과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 그 외에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이미 사도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마 10:2-4; 막 3:16-19; 눅 6:14-16), 또 다시 기록해야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성격이 다릅니다. 복음서의 제자들 명단은 처음 사도로 불러 세우신 자들의 명단이라면, 오늘 본문의 명단은 3년 간의 훈련과 십자가 사건,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명단입니다. 말하지만 앞의 것은 ‘입학생 명단’ 이라면 ‘뒤의 것은 ‘졸업생 명단’ 입니다. 오늘 본문인 졸업생 명단에는 가롯 유다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입니다. 12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5절 이하에 그 한 사람을 대신하여 사도를 선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이 누굽니까? 한 때 예수를 따르겠다고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좇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는 모두 도망쳐 벼렸던 겁쟁이요, 배신자요, 무능력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확실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저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을 보고,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또 다시 오겠다고 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열한 사도를 간단히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용감하게 예수를 따르며 한 때는 물 위를 걷는 체험도 하였던 수제자였지만, 예수님께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던 그는 새벽 닭이 울자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던 자입니다.
요한은 우뢰의 아들(막 3:17)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납고 거칠었으나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로서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 십자가 앞에 유일하게 남았던 자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평범한 어부이지만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가까이서 섬기었던 제자로, 후에는 제일 먼저 순교한 자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를 예수께로 인도하고, 한 어린아이를 설득하여 그 작은 도시락으로 오천명 이상을 먹이게 한 자입니다.
빌립은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예수를 믿고 나다니엘에게 전도한 자입니다(요 1:45).
도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현장에 없었기에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였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손을 보고 손을 내밀어 주님의 옆구리에 넣어보고 난 후에 그리스도로로 참 하나님으로 고백한 자입니다(요 20:25).
바돌로매는 나다나엘이라고도 하며, 무화과 나무 아래서 빌립의 전도를 받았고(요 1:45),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처음 고백한 자입니다.
마태는 ‘레위’라고도 부르며, 세금장이였는데 예수님의 ‘나를 좇으라’는 한 마디의 부르심을 받고 단순하게 따랐으며 큰 잔치를 베풀어 자기 신앙을 보인 자입니다(눅 5장).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체구가 작아서 ‘작은 야고보’라고 불렸으며, 후에 애굽에서 전도하다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몬은 열심당(the Zealots)의 한 사람으로서 반 로마 세력을 지지하던 격한 사람으로서 온유한 예수님을 따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유다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의 형제이며 ‘다대오’라고도 부릅니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별로 그렇게 뛰어나 보이는 제자들이 아닙니다. 다들 부족한 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내 보였었구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열한 사도들 외에 예수님 살아계실 때에 열심히 따르던 여자들, 아마 마리아와 마르다,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살로메, 수산나 및 헤롯의 청지기의 아내인 요안나와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그 의붓 형제들도 전에는 믿음이 없었지만(요 7:3-5), 이제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 모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약 120명이 모였는데(15절),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하였습니다. 이들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성령강림을 준비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부르짖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들의 기도 때문에 오순절 날에 성령이 오셨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써 기도하고 애쓸지라도 오순절에 보내주시기로 예정된 성령 강림을 앞당길 수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구약시대 때부터 예언되고 약속되어 오던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맨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용되었으며, 그들의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행한 기도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여러 성도들이 모여서 한 ‘기도회’였습니다. 즉 오늘날 기도회의 형태였습니다. 이미 한국 교회에서 초창기부터 교회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기도회를 가졌는데, 바로 오늘 본문에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Q.T. (경건의 시간) 이나 개인 묵상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 성도들이 모여 함께 기도회를 통하여 부르짖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큰 일들을 이루십니다.
둘째로, 예루살렘 다락방 기도는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기도한 ‘합심기도’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교회의 권징을 가르쳐 주시면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하셨는데, 이처럼 마음을 같이 하여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즐겨 응답해 주십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동기의 순수성이 요구됩니다. 세상적인 욕심과 이기적인 생각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서로 간의 허물과 죄를 피차 용서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합하여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들을 낮추고 주님을 높이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헌신되어 있는 영적 교제의 모습입니다.
셋째로, 이들의 기도는 전혀 기도에 힘쓴 ‘전심기도’ 이었습니다. 여기 사용된 동사 ‘전혀 힘쓰다(continually devoting)’ 원어는 ‘어떤 일에 전념하다, 몰두하다, 헌신하다’ 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오직 기도에 전심전력 하였으며 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할 때에 마음이 나뉘어지면 기도에 전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마음을 다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기도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끈기있게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구하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이 있을 줄로 믿고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믿고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 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한 기도의 시작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누가 무어라고 해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주권자이십니다.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하시고자 작정하신 일은 다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이 불순종한다고 좌절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실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실 때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하나님의 자녀가 그에게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나타내게 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교회나 가정에 부흥을 주실 때에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그 백성들의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주의 일에 동역하게 하십니다. 제일 먼저 기도로 말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처럼 지극히 평범한, 연약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다만 약속의 말씀을 믿고 모였습니다.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성령강림을 사모하며, 재림을 준비하며 모였습니다. 전혀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합심하여 모였습니다. 한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모였습니다.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한 가지 목적을 놓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결국 열흘 후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초대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불길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번져나갔습니다.
개인 기도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합심기도가, 전심기도가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의 용사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영적 부흥을 원하십니까? 힘써 모여 기도하십시다. 한 마음으로 전심을 다하여 함께 기도하여 결국 응답을 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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