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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5:0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537    
[6/25/06] 성도의 역사의식
성도의 역사의식 (사사기 20:46-21:4)

오늘은 공교롭게도 6.25 동란, 즉 한국전쟁(Korean War)이 발발한지 꼭 56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사실 제가 저희 교회에서 이런 설교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성령께서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가운데, 이런 사건에 분명한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성도로서 올바로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의식으로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고 실천해야 합니다.
1950년 6월 25일(주일) 새벽을 기해 김 일성은 구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북한 공산군을 일으켜 불법으로 남침하게 되었고, 우리 한반도는 만 3년 1개월 동안 전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독실한 신자였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게 함으로 만 3개월 만에 남한을 거의 짓밟았던 공산군을 물러가게 하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이 동란으로 인하여 입은 전쟁의 피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믿을만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 국군은 58,809 명이 사망하였고, 부상이 178,632명, 실종 및 포로 82,310명으로 합계 319,759명의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피해는 36,991명 사망, 부상 115,648명, 실종 및 포로 6,944명으로 합계 159,583명이었습니다. 공산군의 피해는 정확하지 않지만 북한군의 경우 320,000명, 중공군의 경우 900,000명 정도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군인들의 피해 뿐 아니라 민간인의 경우도 학살을 포함한 사망 370,599명, 부상 229,625명, 납치 84,532명, 행방불명이 303,212명, 피난민 2,400,000명, 전쟁 미망인이 약 200,000명, 전쟁 고아가 약 100,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이외에 파괴된 기관과 건물의 피해를 추정하기를 당시 화폐 단위로 410,589,759,000환, 즉 $2,281,054,214 였다고 합니다. 약 50여년 전의 가치로 따지면 정말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이에 따른 우리 민족 백성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부모와 자식이 헤어지고, 형제, 자매가 헤어진 그 고통은 어디다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 전사한 장병들의 충성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현충일이 제정되어 매년 6월 6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미국도 제 1차, 2차 세계전쟁과 한국전쟁, 월남전쟁을 비롯하여 나라를 위하여 싸운 장병들을 위하여 현충탑도 만들고, 현충일(Memorial Day)도 제정하여 5월 마지막 월요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고 한국의 모 대학 교수는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그 때에 북한 공산군이 통일을 하였어야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기에 역사를 잘 모르고 올바르게 배우지 않아서 이 논리에 수긍하는 젊은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염려가 되는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 전쟁이었습니다. 이데올로기(사상 혹은 이념)의 차이 때문에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었고, 결국 이긴 쪽도 진 쪽도 없이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국민은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도대체 이데올로기가 무엇이기에 같은 민족끼리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서로 적대시 하여야 합니까? 북한 이데올로기는 아직까지도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미국과 서방 나라들의 최대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전에는 ‘북한’하면 무조건 나쁜 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소도 보내고, 쌀도 보내고, 비료도 보내고, 돈도 가져다 주고 보니 휴전선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도대체 누가 적인지 정신 교육을 시키기가 어려워 졌다고 합니다. 사실 북한 전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총을 들고 우리를 대적하는 공산군들 만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북한 전체를 적으로 규정한다면 쌀이나 먹을 것을 갖다 주어서는 안되지요.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사생 결단을 하고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김 정일을 비롯하여 총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공산당, 공산군들만 적으로 생각하면 싸워야 할 대상의 범위가 좁아집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라고 볼 수 있는 사사시대의 마지막 부분으로 이스라엘이 왕국이 되기 전에 일어난 내전에 대한 기사입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지파와 다른 나머지 지파들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서,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도 40,000명 이상이 죽는 피해를 입었지만, 베냐민 지파는 거의 멸종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원인은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데에, 신앙적인 데에 있었습니다. 레위인 제사장의 첩을 욕보이고 죽인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내 놓으라는 이스라엘 총회의 결정을 베냐민 지파가 거부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전쟁할 때에는 명분이 중요합니다. 명분이 없이 그렇게 많은 물자를 동원하고 사람들을 죽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나 민족이든지 자신들의 안전에 치명적인 위험이 없는 한 절대로 전쟁을 벌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레위인 첩이 죽은 문제로 인해 내전을 벌여서 서로 간 큰 피해를 입었고, 특히 베냐민 지파는 남자 600명을 제외한 모든 여자와 어린아이, 심지어 가축들까지 무차별로 학살을 당했습니다(삿 20:47-48). 과연 이것이 정당한 일입니까? 아무리 죄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여자와 아이와 짐승들까지 무차별로 죽인 것이 옳은 일입니까?
이미 한국전쟁을 치르고, 전 세계적으로는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시점에서, 정말 우리가 피 흘리며 싸워야 할 적이 누구냐 하는 문제를 새롭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죄는 볼 줄 모르고, 드러난 기브아의 불량배들의 죄 때문에 흥분하고, 베냐민 지파는 그 자들을 감싸는 바람에 내전이 발발한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30,000명도 채 되지 않는 군사들이었고,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의 연합군은 400,000명이 넘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수적인 우세를 믿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처음 두 번은 대패하게 되어 40,000 명이나 죽는 큰 손실을 입고 나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께 전쟁에 대하여 물었던 그들이었습니다(삿 20:26-27). 그러자 베냐민 지파는 교만하여졌고 방심하다가 연합군의 매복 작전에 넘어가 거의 다 죽고 림몬 바위로 도망친 남자 600명만 남은 것이었습니다(삿 20:47). 그리고는 성읍마다 불사르며 만나는 사람마다 다 죽였던 것입니다. 이 일이 옳지 못했기에 승리하고 나서도 그들은 벧엘에 모여 대성통곡을 합니다(21:2). 그리고는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어즈러졌나이까”(21:3) 합니다. 죄가 불러온 참혹한 결과를 보고 애통해 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장난 삼아  자기 마을에 들어온 레위인을 희롱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 결과는 한 지파의 전멸로 나타났습니다. 그제서야 죄라는 것이 절대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들 안에는 죄가 없습니까? 베냐민 지파나 자신들이나 오십보 백보였습니다.

우리나라는 56년전에 동족상잔의 비참한 내전을 겪었습니다. 그 때 북쪽에 있던 교회들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였다가 해방을 맞이 했을 때 가장 먼저 복음화가 되었던 곳이 이북이었습니다. 평안도에는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기독교인이라고 할 정도로 복음화가 된 곳도 있었습니다. 평양 시내 같은 경우 주일에는 물건을 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상인들이 다 문을 닫고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갔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공산당이 들어오면서 이북에 있던 교회들은 다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를 놓고 보면 교회의 절반이 사라진 셈입니다. 요즘 남한의 교회들이 이북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북 공산당의 통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민족 간의 내전도 레위인 제사장의 죄, 기브아의 불량배들의 죄가 그 원인이었듯이, 우리 한국전쟁의 원인도 죄 였습니다.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우리 나라를 통째 삼키려 했던 김 일성의 죄도 있지만, 영적으로는 일제 식민생활에서 8.15 해방을 맞은 한국 교회가 신앙의 자유, 예배의 자유, 선교의 자유를 얻고도, 일제 신사참배에 대한 죄를 공적으로 회개하지 않고, 교권 쟁탈에 혈안이 되었던 한국 교회에 회개를 촉구한 하나님의 징계였다고 보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입니다. 소수의 신자들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내려오던 우상 숭배가 일본의 천황에게 절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교회가 순결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해방을 맞고도 회개하지 않음으로 결국 한국 교회의 절반을 이지러뜨리는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 나라는 안전합니까?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로 살고 있습니까? 교회는 죄를 치료하는 곳이어야 하고, 도덕성을 회복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죄를 회개하여 사함을 얻고, 치유함을 받고 거룩한 성도로서 경건하게 살고자 애쓰는 신앙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마치 교회에 놀러 다니듯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아주 진지하여야 합니다. 농담하듯이, 구경하듯이 신앙생활하시면 안됩니다.
우리의 적은 누구입니까?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사탄 마귀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다 죽여 버렸습니까? 그들 전체를 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상식이 있었더라면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가축까지 그렇게 몰살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집단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죄를 두둔한 베냐민 지파가 분명히 잘못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전부를 몰살시킬 이유는 없었습니다.
우리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즉 잘못된 사상, 이념과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진리를 밝히고 사람의 건전한 상식을 되살려서, 다시는 공산주의와 같은 공격적이며 마귀적인 사상이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작은 죄 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치른 것은 진리를 밝히지 않은 대가였습니다. 진리를 밝히지 않으면 작은 불씨 하나가 가정 전체, 교회 전체, 나라 전체를 태우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비상식적일수록 흑백논리에 빠지는 법입니다. 이 현상은 이단들처럼 종교를 이데올로기로 믿는 사람들에게 심하게 나타납니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을 무조건 마귀로 규정해 버립니다. 우리는 이런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다른 지파와 베냐민의 내전은 명분은 죄를 심판하겠다는 데에 있었지만 자존심의 대결이었을 것입니다.
성도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잃지 않도록 애써야 하며, 분노의 감정에 지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용서의 영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하십시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고도 자기가 마냥 옳은 줄 압니다. 자기 의를 나타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라 하더라도 일정한 때가 되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악한 자들에게도 햇빛과 비를 주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기 전까지는 가라지를 뽑지 못하게 하십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을 해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구분이 안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완전히 가라지처럼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변화되어 눈물흘리며 참된 신앙생활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라지를 뽑는다고 나서서 알곡까지 다 뽑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른 사람에 대해 결정적인 정죄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내 눈에는 가라지로 보여도 실제로는 알곡인 경우도 많고, 내 눈에는 알곡으로 보여도 가라지인 경우도 있습니다. 악한 자가 잘될 때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악하고 교만한 자가 성공하는 것을 보면 심판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고 얼른 피해야 합니다. 그들이 잘되는 것을 조금도 부러워하지 말고 속히 그들을 떠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내가 옳다’는 명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을 잘못 규정하는 바람에 대항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까지 다 죽이고 나서 하나님 앞에 대성통곡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모습입니다. 이데올로기가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 되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이런 이데올로기, 잘못된 사상이나 가치관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휴전 이후 지난 53년간 우리 한국은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혼란과 비극을 겪는 중에도, 남한의 교회들과 성도들의 열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많이 하셨습니다. 세계 복음화에 앞장 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년 간은 햇볕정책으로 인하여, 즉 좌경 사상으로 인하여 교육과 국방, 온 사회에 어두움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정말 염려가 됩니다. 위하여 기도하기 원합니다. 참으로 교회들이 깨어서 진리의 빛을 바로 비추며, 더욱 복음의 함성을 외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이, 특히 젊은 이들이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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