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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kyoowan
작성일 2006-10-22 (일) 10: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594    
[re] [10/15/06] 벌레 먹혀 죽어버린 교만

>벌레에 먹혀 죽어버린 교만 (사도행전 12:20-25)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교만으로 인하여 넘어진 사람은 너무 많습니다. 교만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Identification)을 올바로 알 지 못할 때에, 때로는 우월감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때로는 열등감으로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고 남의 허물을 잘 찾아내어 비방하거나 조롱합니다. 한편 자신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고 말할 줄 모릅니다.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남에 대하여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은 사실상 자기 자신이 상처를 자주 받되 치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힘들어 합니다. 이 모두가 다 그 원인은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뿌리가 교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에 빠진 것도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교만이었습니다. 아니 반대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원하지 않는 것도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자신의 재능, 재물, 건강, 지식, 경험, 심지어 외모를 가지고 능히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도 다른 사람보다 더 자신이 낫고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영적인 교만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교만이 죄를 낳고, 그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에게는 징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
>오늘 본문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유다 나라를 다스리는 분봉왕이었는데 교만으로 인하여 벌레에 먹혀 죽어버렸습니다. 주후 39년부터 일정 지역을 다스리다가 41년에 유다 전체를 다스리도록 로마 제국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는데, 4년을 채우지 못하고 44년에 죽고 맙니다. 그리고 헤롯 안티파스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2세가 수년 후인 약 50년 경부터 100년까지 다스리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교만하여 죽게 되었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옥에서 하나님의 천사의 인도를 받고 기적 같이 풀려난 후에, 헤롯은 베드로를 지키던 파숫군 16명을 모두 죽이고 난 후에 가이사랴로 갔습니다(19절). 그런데 20절에 보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헤롯이 노여워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거기까지 헤롯의 영향력이 미치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헤롯의 통치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기근으로 말미암아 양식이 모자랐기에 헤롯이 다스리는 유다 나라에서 나는 양식을 얻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롯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우선 왕의 침실을 맡은 실세 중의 한 사람인 블라스도에게 뇌물을 주면서 더 친하게 지내려고 애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헤롯에 대한 존경은 진실한 것이 아니었고 먹고 살기 위하여 아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헤롯을 존경하는 듯하여 겉으로는 박수를 치고 그래도 속으로는 욕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교만한 자들 주위에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가 가진 권세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겸손한 자는 어디서나 속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받으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어떤 한 날이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21-22절에 보면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한 특별한 날을 택하여 헤롯은 아주 화려한 왕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백성들에게 연설을 하였는데 사람들의 칭송이 대단합니다. 헤롯을 하나님으로까지 높입니다. 비록 백성들의 말이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빈 말이었지만 헤롯은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않고 정말 자신이 하나님이 된 양 생각하고 우쭐거렸습니다. 대단한 착각이지요. 그럴 때 헤롯의 목은 점점 굳어지고 어깨가 젖혀졌을 것입니다. 한참 젖히다 보면 어떻게 되지요?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지도자는 아부의 소리를 듣기 좋아하며, 또한 그런 간사한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이게 마련입니다.교만한 지도자와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못난 백성들이 서로 속이고 속는 모습입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께서 서실 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23절에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신의 소리라고 외치는 백성들의 칭송을 들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욱 교만에 빠진 헤롯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요세푸스를 비롯한 당시 역사가들에 의하면 그 때 헤롯은 갑자기 창자가 뒤틀리는 참기 어려운 복통을 일으켜서 급하게 왕실로 옮겨 긴급치료를 하였지만, 왕실의 의사들이 전혀 손을 못 쓰고 닷새동안 앓다가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
>사람들이 교만해지는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피상적으로만 알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앞서 언급하였듯이 자신에 대하여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착각, 혹은 곡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만이 더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교만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헤롯과 비슷한 인물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당시 국력, 군사력이 굉장했기에 자신을 건드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고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많이 괴롭혔고, 자신을 우상화하여 자기 형상을 닮은 거대한 우상을 만들게 하였는데, 결국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사람들에게 쫓겨나 들에서 소처럼 풀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손톱이 새 발톱이 되도록 비참한 인생을 살기도 했습니다(단 4:32-33). 그런데 헤롯과 달랐던 것은, 나중에 회복한 다음 자신과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깨닫고 고백하기를,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34절하),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37절) 하였습니다. 벌을 받기 전에 깨달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늦게라도 깨닫게 되었으니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닷새의 시간이 있었건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든지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기회를 주십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다음 중요한 구절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교만했던 헤롯 왕은 야고보 사도도 죽였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옥에 가두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그렇게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24절)고 누가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바울)이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작정하고 헌금한 구제비를(행 11:29-30)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25절).
>John Stott 목사님 말처럼 사도행전 12장의 시작은 헤롯이 교회 지도자들을 핍박하며 야고보 사도를 죽이며,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헤롯 왕은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듣고 의기양양하였었지만, 결국 끝은 베드로는 살아났고, 헤롯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더 넓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늘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더하여 갔습니다. 왜? 복음은, 진리의 말씀은 반대세력이 강하여도, 핍박이 있어도 그렇게 흥왕하여 더해 갑니까?
>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핵심 단어는 ‘유익하다(useful)’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다른 매개체들도 우리의 삶에 약간의 유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TV, 신문, 좋은 책, 인터넷 등이 이웃을 돕는 것이라든가 선한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 주는 영향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가르치고, 잘못된 것을 꾸짖고, 바르게 가는 길을 알려주며, 의로운 자로 교육하는 데에 이 세상 어떤 것도 성경만큼 유익하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심령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은 사람들의 말과 같지 아니하여 우리 심령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교만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며, 마음을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즉 심령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마치 몸에 종양이 생긴 것을 수술하는 의사의 수술칼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심령을 고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은 풍성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면 언젠가 반드시 열매가 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0-11) 하였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씨앗에 생명을 주고, 식물들을 자라게 하여 열매를 내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풍성한 생명을 주셔서 열매를 맺게 함으로 주위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말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그의 말씀도 영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일시적입니다. 잠시 잠간이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아무리 없애려고 하여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 성경을 다 불에 태워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말씀에 투자하면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교훈이 바로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너무 싫어하십니다. 신약 성경 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수도 없이 말씀하십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6:18-19),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23),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등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눅 18:14),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정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본을 보이셨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손수 씻겨 주셨습니다. 근본이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만을 버리기 위하여 애써야 합니다. 저는 이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이 이 교만에 있다고 믿습니다.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잘난 맛에 삽니다. 그래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납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일이나 대인관계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면, 자아를 죽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교만해 집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연습이, 훈련이 필요합니다. 만약 계속 교만하시면 오늘 본문의 헤롯 왕처럼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반드시 심판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은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신 분들도 아직 남아있는 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기억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면 겸손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높이실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래서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찔러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저 구원만 받고 마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 열매들을 맺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니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믿고, 붙잡고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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